당연하게 주어져야 할 우리의 저녁은 어디로 사라졌었나
내 기억 속에 자리한 우리 가족의 따뜻한 순간은 저녁밥을 먹을 때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퇴근하고 집에 바로 오셔서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드셨다. 7시쯤 저녁을 준비하시던 엄마, 저녁 시간에 맞춰 들어오시던 아버지, TV를 보고 놀다가 아버지가 누른 초인종에 달려나가던 나와 여동생,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서 먹었던 저녁 밥상.... 밥을 먹으며 특별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매일매일 저녁밥상에서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진 않았다. 그냥 다른 집들처럼 밥 먹으면서 티비도 보고 고기반찬이 없다고 투정을 하면서 저녁밥을 먹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평범했던 일상은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아 지금까지 소중한 시간들로 떠오른다. 따뜻한 저녁밥과 식구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평범한 소중함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과 우리 식구의 저녁 식사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내가 '식구들이 같이 저녁을 먹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평범했던 일상이 참 소중했던 것 같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버지께서는 당시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것들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돈을 버려야 가족과의 시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식구들과 매일 함께 먹던 저녁 밥상, 저녁 일찍 집에 오시던 아버지. 그때는 이 사소한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소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모르던 희생과 선택이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종종 수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저녁에 식구들이 모두 모여 밥 먹는 사람 손들어 볼래?'라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한 까닭은 아마 아이들이 '학원 때문에 너무 바빠서 저녁도 제때 못 먹어요.'라고 아우성을 치길래 그게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였던 것 같다. 나는 당연히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반 정도의 아이들만 손을 들었다. 손을 안 든 아이들은 학원 시간 때문에 혼자 일찍 저녁을 먹거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운다고 했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보통 엄마와 둘이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형은 학원 때문에 따로 밥을 먹고 아빠도 밤늦게 퇴근을 해서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은 드물다고 했다. 내가 보고 겪었던 가족과의 저녁 식사가 이렇게 어렵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일상 안에서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 공부라는 의무와 직장 생활이라는 생계의 책임은 우리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누릴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족과의 저녁밥상, 저녁이 있는 삶은 사소해 보이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정치인이 내걸었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슬로건은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문구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처음 스웨덴에 와서 적응이 안 됐던 건 가게들의 영업시간이었다. 가게들의 영업시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평일 6~8시 사이에 문을 닫는다.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 가게가 대부분이고 토요일은 오후 4~5시까지만 영업을 한다. 한국에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 역시 룬드에선 영업시간이 존재한다.(재미있는 것은 룬드 중심에 있는 세븐일레븐의 영업시간이 그 이름처럼 7-11이라는 것이다.)
저녁 8시가 되면 룬드는 유령 도시처럼 조용하다.
시내 중심가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사라지고 가게들은 문을 닫기 때문이다. 저녁과 밤은 도시 전체가 고요하게 가라앉는 시간이다. 내가 한국에서 살아왔던 삶의 방식처럼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뒹굴거리다 저녁 즈음 쇼핑을 하거나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것,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것도 여기선 흔한 일은 아니다. 몇몇 친구들은 룬드의 이런 점이 불편하다고 이야기한다. '밤에 즐길 거리가 많지 않다' '가게가 문을 일찍 닫아서 불편하다' 와 같이 말이다. 도시의 편리함에 익숙한 우리에게 새벽에도 들러서 먹을거리를 살 수 있는 편의점, 밤 9시에 가도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다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서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룬드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지나고 곰곰 생각해보니 가게가 문을 일찍 닫고 주말에도 쉬어야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저녁과 주말에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저녁과 주말에 쉴 수 있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이곳에선 주말과 평일 저녁 시간을 사람들이 일과를 마치고 누리는 자신만의 시간 혹은 가족과의 시간으로 생각한다. 내 시간을 희생해가며 쉬지 않고 일해야,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며 일해야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우리의 상황과는 너무 다른 이곳 사회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그들이 그냥 부러웠다.
이곳에서는 가게의 영업시간뿐 아니라 근로자들의 퇴근 시간도 우리보다 이르다. 대개 4~5시에 퇴근을 하고 늦어도 6시까지는 퇴근을 한다. 그래서 4~5시쯤 집 앞 마트에 가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들이 가득 차 꽤나 붐빈다. 많은 사람들이 장바구니 가득 저녁거리를 사가기 때문에 계산대의 줄도 길고 몇몇 물건들은 금세 동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슈퍼에 들러서 산 재료들로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식사 이후엔 개인 혹은 가족들과 온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저녁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외식도, 직장동료들과의 회식도, 지독한 야근도 흔치 않은 일들이 된다.
밤늦게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가족들과 둘러앉아 함께 저녁밥을 먹기 싫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들은 모두 '저녁이 있는 삶'을 간절히 바란다. 단지 아직 우리 사회가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생존과 경쟁, 의무와 책임이라는 무거운 돌덩이 아래에서 어깨를 짓눌리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등 떠밀리며 저녁이 없는 삶을 강요받는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한 개인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살 것인지의 여부는 단순한 선택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회와 조직, 상사는 더 빨리, 더 열심히를 외치고 항상 더 긴 근로 시간을 의무로 여긴다. 거기에 더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불안감, 남보다 느리면 뒤처진다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우리는 오늘의 저녁 시간을 다른 것들에 내어주면서 미래의 해 뜰 날을 기다린다. 그렇게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건만 여전히 우리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먼 나라, 스웨덴만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미덕 중 하나는 '근면'이다. 파이팅 넘치게 적극적으로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건 좋지만 그건 정해진 시간 동안 열심일 때, 더욱 빛나지 않을까? 내가 온전히 누려야 할, 가족들과 함께 가져야 할 저녁 밥상까지도 빼앗기면서 사회적인 의무와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하도록 강요하는 사회는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가족과 개인의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한 것은 사회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모아 정치를 압박하고 제도를 바꿔가며 사회적 진보를 이뤄내야한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있는 만큼 게으름과 여유에 대해서도 너무 두려움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이곳에서 지내보니 일찍 퇴근한다고, 일처리가 조금 느리다고, 마트가 주말에 문을 빨리 닫는다고, 편의점이 24시간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부지런한 아시아 국가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이렇게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사회가 잘 움직인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효율과 속도만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도 삶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경쟁과 근면이라는 단어 외에도 소중한 다른 가치들이 세상에 있다는 걸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소하게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밥을 같이 먹고 수다를 떠는 일상의 경험들이 훗날 내 경우처럼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따뜻한 기억을 쌓아야 할 어린 시절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대신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서글프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에게는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