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주거형 개량한옥의 어느 세입자 2
주춧돌로 집터를 돋운 한옥은 으레 마당에 디딤돌을 놓는다. 이 집에는 이전에 살던 사람이 손수 만들었을 법한 큼지막하한 나무 디딤판이 놓여 있었다. 짜임새도 모양도 꽤 탄탄했으므로 거리낌 없이 사용해왔다. 두 번의 여름을 보내며 장마철의 빗물 세례를 몇 차례 겪고 난 뒤 칠이 벗겨지고 나뭇결이 갈라져 버렸다. 군데군데 쩍 갈라진 나뭇결 사이로 잔가시들이 발바닥을 간지럽히던 차에 마루 밑 창고에서 발견한 나무 궤짝을 활용하기로 했다. 세라픽스와 목공용 본드 그리고 드레멜을 동원해 디딤목에 깔려 있던 웃판을 뜯어내고 나무 조각을 덧붙여 새로운 디딤판을 만들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두 평 남짓한 거실 공간이 나온다. 기존 한옥의 골조와는 확연히 다른 벽체며, 걸을 때마다 삐걱 소리 나는 합판 조각의 정체는 바로 마당을 확장해 실내로 만든 결과물. 어렴풋이 보아도 묵직해 보이는 핸드메이드 사다리 또한 입주 전부터 물려오던 것으로 개량공사를 할 때, 옥상을 올라가기 위한 통로로 제작된 듯하다. 덕분에 바지런히 옥상을 들락날락한다만, 것보다 야옹이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
정오가 넘어선 오후가 되면, 슬며시 잦아 드는 햇볕은 거실 공간의 끝 쪽 모서리를 돌아 사다리 위로 나 있는 창가로 빠져 나간다. 빛이 들어올 때 즈음 자리를 점하고 낮잠을 청하는 고양이. 거울 속에 비친 다른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다시 거실을 돌아 나와 주방을 스쳐 자리를 옮겨
생활 공간으로. 침대와 소파가 걸친 한옥의 한 칸 반이다.
서까래와 기둥이 보이지 않는데 한옥이라 한다면 과연 누가 믿겠는가. 도배지로 수십 겹 덧칠이 되어 있던 벽체 일부를 깠더니 한옥 벌레가 갉아 먹어 손상된 기둥이 등장했다. 내친김에 과연 서까래가 살아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천장 조명이 설치되어 있던 작은 구멍에다가 손전등을 밀어 넣고 확인해 본 결과, 방수에 칠까지 완벽한 두툼한 서까래가 손상 없이 잘 버티는 중.
반대 쪽의 나머지 한 칸 반을 합치면 한옥의 세 칸.
여름이 한창이라 늘 마당으로 난 문이 열려 있다. 한옥의 이러한 개방감에 하루가 다른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며 지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