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클릭
여느 때와 다름없던 2019년의 봄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지만 새벽녘을 헤매던 꿈속 산책이 아쉬워 침대맡을 비비적거리는 습관은 여전하고, 발끝으로 전해오는 고양이의 보드라운 온기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준다. 나의 영원한 안식처, 이 요람을 박차고 부엌으로 나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전 달콤한 시간을 조금 더 유예하기 위해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감싼다. 인터넷을 켜고 오늘의 날씨와 운세 검색으로 하루를 연다. SNS 접속도 잊지 않는다.
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했다. 겐트에 사는' Aejin Huys' 님으로부터. 한국에 곧 올 텐데, 요리책 작업을 위해 미팅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호기심 반 기대반으로 타이핑한다. "Yes".
사실 책 작업보다 한국말이 서툰 '애진'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그녀의 SNS에 펼쳐진 낯선 배경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권태로운 잿빛 하늘 아래 서늘한 북녘 공기로 들풀이 나부끼는 이미지였으니까. 그녀와 만나는 것만으로도 아직 닿지 못한 세계에 대한 갈증이 채워질 것만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겐트의 존재를 몰랐다. 얼마 뒤, 겐트가 눈앞에 펼쳐질 줄은 더더욱.
두어 달이 흘렀을까.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나날이 이어지던 이른 봄, 나는 한국에 도착한 애진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 들르겠다고 흔쾌히 답을 주었다. 나는 4인 상에 걸맞은 식사를 위해 약속 전날부터 소란을 떨었고, 봄나물과 해산물 몇 가지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음날 아침, 애진은 남자 친구가 함께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경복궁역으로 애진을 마중 나갔다. 한국인의 혈통을 타고 난 그녀는 어쩐지 낯선 피부톤과 어딘가 다른 몸짓으로 군중 속에 섞여 있었다. 나는 직관적으로 애진을 알아차리고 그녀에게 다가섰다. 단순한 영어로 의사소통을 이어가는 사이 우리의 작은 한옥에 들어선 애진은 "이토록 아늑한 공간"이라며 소회를 풀었다. 짧고 간결한 한마디에는 그녀의 심연에 깃든 근원적 향수가 담겨 있었다.
완연히 피지 않은 봄, 겨우내 웅크린 동토를 뚫고 소생한 소박한 달래 된장국과 들깨와 꿀에 버무린 연근, 새우 파래 전, 양념장을 끼얹은 꼬막이 펼쳐진 식탁을 사이에 두고 애진은 가지런히 놓인 놋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작고 수줍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스마클릭 "smakelijk"
식탁 너머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섰고 프로젝트 작업은 기정 사실화 되는 듯했다. 다만 책 작업을 위해 다가오는 6월 겐트로 떠나야 한다. 그날 저녁부터였다. 신경성 위염에 무기력하게 노출된 것이. 그 후 간헐적으로 도지던 위염이 계약서에 사인한 날부터 고질적으로 내 속을 파고들었다. 6월 초라면, 소만과 망종 사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펼쳐지는 한때다. 농사일이 가장 바쁜 시절에 남녘 부모님의 포도밭으로 내려가 일손을 보태지 못할 것이다. 지붕 위에 새끼를 낳은 고양이는 누가 돌봐 줄 것이며 어느 시절보다 아름답게 화할 옥상 정원은 누가 돌 볼 것인가.
온갖 잡념이 교차하며 마음이 어수선해지려 할 때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애진이 챙겨 온 두꺼운 요리책 서너 권과 나의 요리책이 더해져 그녀의 가방은 사과 한 박스 무게만큼이나 두둑해졌다. 이대로 떠나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콩물 한 병을 애진에게 건넸다. 나는 애진의 가방을 남편에게 들게 하고서 마당으로 나와 신발을 챙겨 신었다. 그녀의 가방이 무거워 보이기도 했고 고국의 향수에 젖은 그녀와 짧은 순간 정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 길로 지하철 역까지 함께 걸었다. 헤어질 때가 다 되어 책 이야기가 아닌 사소한 만담이 오갔다. 대화는 오늘 그녀와 함께 오기로 했던 남자 친구로 자연스럽게 넘어갔고 애진은 그를 뮤지션이라 소개했다. 한 때는 벨기에 보다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았다며 그의 이름을 얘기했다. Frederick Sioen. 남편은 시오엔을 안다고 했다. 2호선을 타고 당산 철교를 오가던 대학 시절, 한강을 지날 때마다 시오엔의 <Crusin’>을 수도 없이 들었다 했다. 우리는 애진을 배웅하고서 집으로 돌아와 음악을 켰다. 익숙한 멜로디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아직 꽃도 피지 않은 춘삼월. 겐트로 떠나기까지 두 달 남짓 시간이 남아 있다. 옥상 정원엔 차가운 흙을 뚫고 새싹이 겨우 고개를 내밀었고 남녘 과수원의 포도나무엔 아직 꽃도 피지 않았다. 지붕 배수로 끄트머리에 옹기종기 숨은 아기 고양이는 어미의 철벽 같은 경계로 눈인사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할 만큼 작고 귀엽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발목을 잡아채기 시작한다. 그때부터였을까. 일상을 충직하게 돌보며 때로는 한 발짝 물러서 멀찌감치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 왜냐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벌써부터 그리웠으니까. 왜냐하면 관성처럼 작용해 오던 나의 일상에 머지않아 공백이 드리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