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전통혼례
혼례를 보름 앞둔 6월 초순. 혼례식 대례상 뒷면을 장식할 병풍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전통 혼례식에 자주 등장하는 10폭짜리 궁중모란도 병풍에 마음이 한껏 기울었지만 작은 한옥에 10폭의 병풍을 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심 끝에 사진 작업을 통한 모란도를 구상했을 땐 시기상 늦어버린 기운이 맴돌았다. 들판을 수놓은 모란 밭에는 김영랑의 시와 꼭 같이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와 같이 그저 짙푸른 잎사귀 사이로 단단한 씨방이 맺혀있던 것이다. 그야말로 ‘찬란한 슬픔의 봄’이 될 줄은, 아니 초여름이었던가. 그렇다고 모란이 그 아름다운 고개를 치켜들 다음 해를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운 대로 꽃이 진 모란 줄기와 잎사귀만 촬영하고선 꽃시장으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시장 귀퉁에서 모란의 화려한 찬란함을 발견한 줄 알았는데 상인은 그 꽃이 모란이 아니라 작약이라 했다. 모란과 작약은 헷갈리기 십상이며 모란이 꽃시장에 나오는 일은 없다는 귀띰도 함께. 모란은 나무가 우거진 꽃이며, 작약은 들풀처럼 피어난 꽃에 가깝다는 팁 또한. 이상, 모란 잎사귀와 작약꽃을 콜라주한 모란 작약도의 탄생 배경이다.
다음은 소스 촬영본을 조합해 모란도를 재해석하는 일.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80년 만에 공개한 10폭 모란도 병풍을 참고해 꽃과 잎사귀를 평면적으로 배치했다. 한지에 프린팅 한 뒤 표구사에 족자 형태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넣고 결과물을 받았을 때가 혼례식 이틀 전이다.
대들보 아래 늘어트린 청홍 나비매듭 사이로 모란 작약도 병풍을 걸어 본다. 봄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금새 피고 지는 화려하고도 찬란하며 아름다운 꽃, 부귀와 영화, 풍요와 고귀함, 태평성대의 어리석은 꿈을 뭇사람에게 심어주었을, 클리셰라도 좋다. 모란도가 걸린 작은 한옥과 새로이 시작하는 앞날에 상서로운 기운이 깃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