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백을 위한 서사

현대식 전통혼례

by 장보현






순항 중이던 결혼 준비에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매일같이 쌓인 피로도 한몫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와 동떨어진 과거에 함몰된 건 아닌지, 다산과 기개와 절개 따위가 과연 동시대 결혼관에 들어맞기나 하는지, 산더미처럼 쌓인 대추와 밤을 마주하자 불현듯 현기증이 일었다. 그도 잠시, 혼례 전 상경한 친정 부모님과 폐백 상차림을 위해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포근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 또한 추억의 등불로 앞날을 밝혀 줄 것이다.


익숙한 듯하지만 친숙하지 않은 것이 바로 폐백상이다. 만들기는 까다로우며 재료는 귀하고 값지다. 전통 사회에서 혼례가 일상을 뒤흔들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폐백幣帛이란 공경의 대상에게 바치는 비단을 일컬었다. 이후 예물로 올리는 물품을 두루 가리키는 말로 쓰였는데, 조선 시대에는 제례와 가례의 주요 절차 중 하나였다. 혼례의 폐백은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는 대례가 끝나면 시댁으로 건너 간 신부가 시부모에게 절을 하고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치러졌다. 고서에는 현구고례見舅姑禮 라 명시되어 있다. 폐백 의식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현대식 결혼에서 희미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폐백을 치르기 위해서는 상차림이 따랐다. 시집을 오기 전 친정에서 준비한 정성 가득한 음식이었다. 폐백상은 정해진 규율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달랐지만 고서에 기록된 대표적인 음식으로 시아버지께 올리는 조율반(棗栗盤), 시어머니께 드리는 단수포반(腶脩脯盤)이 있다.






1. 조율반 棗栗盤 : 대추와 밤을 쌓아 올린 태양과 달



대추와 밤은 조선시대 의례에 있어 중요한 과실이었다. 유교 이념이 팽배했던 조선 사회에서는 대추와 밤을 상서롭게 여겼다. 대추나무는 암수가 한 몸이며 생육이 느리다. 꽃 하나에 하나의 열매를 맺으며 붉게 익은 열매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다. 이는 '양'의 기운에 부합했다. 과실 중앙 깊숙이 박힌 커다란 하나의 씨앗은 유일무이하다. 반면 밤은 열매 속이 희다는 이유로 '음'을 상징했다. 특이할 만한 점은 땅 속에서 발아할 때 밤껍데기를 뚫고 뿌리와 줄기가 나오는 데, 밤나무가 성체가 될 때까지 뿌리 아래 잔존하고 있다가 열매를 맺으면 비로소 썩어 없어진다는 것이다. 생과 사의 애틋한 연결 고리를 친족 공동체의 미덕으로 삼은 우리 겨레의 철학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대추와 밤이 짝을 이루어 음과 양을 상징하며 조선을 대표하는 과실의 대명사가 된 데에는 세상의 이치를 음양오행의 원리에 맞추려 했던 굳건한 유교적 세계관이 있었다. 현대적인 시선으로 보면 이념에 따른 속설에 불과하지만 한반도 전역에 깊은 뿌리를 내린 대추와 밤은 언제고 뭇사람들의 입맛을 달래 주었기에 그만큼 친숙하다는 뜻이 아닐까.






2. 단수 腶脩 : 한결같은 마음을 담은 정성의 인사


단수(腶脩)란 신부가 시어머니에게 폐백으로 올리는 육포(말린 육고기)를 일컫는다. 육포를 뜻하는 '단腶' 자와 말린 고기를 뜻하는 '수脩'자의 조합이다. 조선시대 왕실의 가례부터 사가(私家)의 혼례까지 공통적으로 쓰였던 폐백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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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앞둔 초여름, 육포를 말리기 위한 여정이 이어졌다. 저민 홍두깨살을 찬물에 담가 해가 떠 있는 반나절 소고기 핏물을 빼고 어둑한 밤사이 양념에 재운다. 핏물 제거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고깃결을 따라 양념장이 부드럽게 스민다. 밤새 검붉게 변한 고기는 건조 단계를 거친다. 앞뒤로 뒤집어가며 건조기에서 말리다 보면 육포가 반짝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럼 다 된 것이다. 완성된 육포를 켜켜이 포개 청실과 홍실로 묶는다. 마지막으로 꿀 바른 잣을 벚꽃 모양으로 장식한다.





3. 구절판 : 유서 깊은 행운

근현대 전통 혼례의 풍습에 폐백과 이바지 음식으로 '구절판'이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구절판이란 아홉 칸으로 나뉜 목기에 여러 음식을 조화롭게 담은 것으로, 미각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음미하는 아름다운 음식이다. 중국에서 '아홉 구'는 '오랜 구'와 같은 발음으로 영원과 장수를 상징했기에 중화 문화권인 우리 또한 아홉을 상서로운 숫자로 여겼다. 다만 그 연원에 대해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기에 1930년대 이후 민간에서 재창조된 음식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구절판은 밀전병에 갖은 나물과 육류를 싸 먹는 진구절판과 마른안주를 담은 건구절판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까지도 결혼 이바지와 폐백 음식, 나아가 일상식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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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백상에는 맑은술이 올라가는데 이때 술과 함께 곁들이는 '안주'의 개념으로 마른 구절판을 함께 올린다. 육포, 곶감, 잣솔, 은행, 율란(밤), 강란(생강), 조란(대추), 정과, 다식 등을 나누어 담는다.


구절판은 찬합 모양에 따라 칠절판, 오절판 등으로 간소화되기도 한다. 찬합 형태의 그릇은 고려의 청자 구절판, 통일 신라의 칠절판, 삼국 시대의 오절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서 깊은 전통 식문화의 변주를 상상하며, 혼례를 앞둔 초여름 칠절판에 마른안주를 담았다.




토종 소나무 잎사귀 끝에 잣을 꿴 잣솔, 아버지가 손수 깎은 밤, 어머니가 보자기에 담아 온 고향집 은행 열매, 정성껏 말린 육포와 호두로 속을 채운 곶감까지. 추억과 정성을 담은 칠절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