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화와 생화의 기로에서

현대식 전통 혼례

by 장보현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머릿속에 막연히 그리던 미장센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작약이 가득한 한옥에서 모란도와 매듭장식 그리고 대례상을 사이에 두고 소박한 듯 화려하게 혼례를 치르는 모습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해 봄 옥상 정원에 작약 구근을 심었다. 초여름, 개화기가 다가왔으나 귀여운 새싹이 농익어 갈 뿐, 꽃은 봉오리조차 맺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약은 3년 이상의 구근에서 꽃이 핀다나. 급한 대로 부랴부랴 꽃시장을 찾았지만 이미 철이 지난 뒤였다. 전통 회례에서 생화 대신 지화를 썼다는 단초를 들어 사진 작업으로 영생을 얻은 모란작약도로 아쉬움을 달랠 뿐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이틀 전, 불현듯 꽃을 든 은인이 나타났다. 너무 극적인 전개인가?


작은 한옥을 우리에게 이어준 인연의 손 선생님은 화초에 조예가 깊은 숨은 장인이었다. 혼례가 치러지기 이틀 전, 그녀는 꽃다발 꾸러미를 마당에 한가득 펼치고 숙련된 손짓으로 꽃장식을 만들어갔다. 널브러진 볼품없는 꽃다발이 그녀의 손 끝을 거치며 새로운 얼굴로 태어나고 있었다. 일필휘지로 화폭의 여백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거장의 손길은 마냥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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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백합은 모란도 양 옆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새로 시작하는 부부의 ‘변함없는 사랑’을 기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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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수반을 활용해 조형미를 구사한 이케바나식 꽃꽂이는 묘하게 한옥과 어우러졌다.



둥근 항아리가 제 짝인 듯한 꽃다발은 동양과 서양의 아름다움을 넘나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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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를 종지에 띄운 귀여운 꽃꽂이는 자칫 밋밋할 뻔한 전통 혼례의 여백을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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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꽃을 화병에 꽂았을 뿐인데,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이 축제의 탄생을 예고했다. 초여름 싱그러운 들녘을 집안으로 옮겨온 듯 혼례의 설렘을 은은하게 증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