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전통혼례
혼례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대례상을 차리는 일이었다. 대례상은 시대와 지역 별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띤다. 한없이 호화스러울 수도, 반대로 소박한 여백을 그릴 수도 있다. 다만 음양오행에 따른 방위의 색 배치는 예외 없이 따라야 할 규율이다. 비과학적인 인식으로 가득한 한낮 속설이나 미신 따위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오랜 시간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해 온 미의식인 까닭이다. 청실과 홍실을 교차해 화려하게 수놓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해 두자.
나는 대례상에 소박한 여백을 그리기로 했다. 먼저 고족상을 청홍 보자기 감싸고 소나무와 대나무 한 쌍 그리고 대추 밤 쌀 팥이 담긴 백자를 놓았다. 송죽은 절개를, 알알의 곡물은 장수와 복, 다산을 의미했다. 팥은 부정을 막는 일종의 결계 같은 것. 그리고 합근례를 위한 작은 상을 대례상 곁에 두었다. 합근례란 대례의 마지막 절차로 신랑과 신부가 표주박에 따라 부은 술을 나눠 마시는 의식이다. 반으로 쪼개진 표주박 한 쌍을 다시 합침으로써 온전한 하나가 됨을 선언하는 일종의 결혼 서약이다.
혼례 전날 어렵사리 구한 표주박은 사실 제 짝이 아니었다. 급한 대로 남대문을 찾았는데, 상인 말로는 요즘엔 찾는 사람이 없기에 제 짝의 표주박을 갖춰 놓을 일이 없다며 그중 모양이 얼추 비슷한 한 쌍을 찾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심 제짝의 표주박을 찾지 못한 아쉬움이 앞섰다. 집에 다다를 무렵, 스치듯 읽은 알랭드 보통의 문장이 떠올랐다. '결혼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나가는 과정'. 결혼에 관한 퍽 현실적인 메시지였다. 어긋난 표주박 한 쌍은 타자성을 이해하는 필연적인 오브제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정말 다 왔다. 혼례 준비의 피날레는 음양오행 사상에 입각한 방위 배치였다. 동양 사상 체계는 음양과 오행(木火土金水)의 법칙에 따른다. 쉽게 말해 음양이 결합해 오행을 낳은 구조다. 이 틀 안에서 모든 것이 음과 양으로 나뉘고, 오행에 의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전통 혼례에서는 오행에 따른 색과 방위 개념을 신랑과 신부, 의식물(衣食物) 배치에 대입시켜 상징성을 드러냈다. 이를테면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르므로 양의 기운에 해당하는 신랑이 자리하고 그 반대인 서쪽에 신부가 서는 식이다. 그런데 대례상의 청홍 보자기는 그 반대에 놓인다(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보아하니 음과 양의 중심축을 두고 나머지를 조화롭게 배치하는 것이 관건인 듯했다.
결혼 준비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작은 한옥에서 펼쳐질 전통 혼례의 미장센은 어느 순간 머릿속에 그려오던 모습과 어긋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전통과 현대, 우연과 필연이 얽히고설킨 시행착오와도 같았다. 현대식 전통 혼례를 이끈건 충동과 무지 無知였다. 덕분에 과감히 삶의 다른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대례상을 다시 재현하라고 한다면 꼭 같이 차릴 수나 있을까. 음과 양, 동쪽과 서쪽, 청과 홍, 대나무와 소나무 등 조화를 이룬다는 한쌍의 사물들이 어디에 어떻게 놓이는가는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니다. 결혼은 이미 형식을 넘어 일상을 파고들었고, 전통 혼례를 손수 준비하는 동안 정성 가득한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갔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은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던 '전통'을 비로소 일상에 끌어들인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는 손때 묻은 작은 한옥으로 수렴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