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전통혼례
풀꽃 내음 감도는 결혼 전야, 새벽까지 이어진 폐백상 준비로 어둠이 내려앉은 한옥에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버지는 툴툴대며 밤을 깎고 있던 과도를 내던졌고 어머니는 마당에 신문지를 펴고 가스버너에 불을 올렸다. 아무래도 단출한 폐백상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선선한 미풍이 불어오는 여름밤, 쪽빛 하늘 사이로 콩기름 유증이 퍼졌다. 그 사이 푸른 별이 반짝였던가 싶고 나는 군침을 삼키며 선잠에 들었다.
세 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 맞이한 혼례 당일, 나는 반 수면 상태로 동네 미용실에 들렀다. 몇 시간 뒤 결혼을 치른다는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았다. 곱게 단장한 얼굴과 쪽진 머리를 하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늘 익숙했던 거리가 그때만큼 낯설게 느껴졌던 적은 없다.
집에 돌아오니 신랑은 보라색 예복을 갖춰 입는 중이었다. 쌍호흉배가 달린 장색 단령의 혼례복은 과연 아름다웠다.
나는 녹원삼으로 갈아입고 족두리를 썼다. 도투락댕기와 앞댕기도 달았다.
고양이 미셸과 꼬망은 새벽녘부터 마당 너머의 건넌방으로 옮겨 간 뒤였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다섯 살 조카의 고양이 타령이 마치 혼례 축가처럼 시작되었고, 그 응석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 할아버지는 건넌방 문을 열고야 말았다. 문이 열리자 미셸이 방에서 튀어나왔다. 미셸은 단지 자신의 충직한 일상성을 되찾으려 할 뿐이었다. 터줏대감에 빙의한 미셸은 대례상을 휘젓고 남편 손에 목덜미를 잡힌 채 건넌방으로 되돌아갔다. 그 순간은 마치 엘리엇 어윗의 사진처럼 기록으로 남았다.
혼례의 풍경은 미셸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진 속에서 되살아 나곤 한다. 그 옛날 옛적 초례청에서 울려 퍼지던 수탉의 공명처럼 말이다. 전통 혼례에서는 수탉과 암탉 한 쌍을 대례상 위에 올린다. 부부의 ‘밝고 신성한 출발’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닭 쫓던 고양이였을까. 미셸의 외마디 울음을 뒤로, 기러기 한 쌍을 든 신랑의 등장과 함께 손수 고친 작은 한옥에서 혼례가 시작되었다.
전통 혼례는 크게 세 가지 의식을 치른다. 신랑이 신부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드리는 '전안례' , 신랑과 신부가 맞절하는 '교배례' , 신랑 신부가 한 쌍의 표주박에 술을 나눠 마시는 '합근례'.
대례상을 사이에 두고 혼례를 치르는 동안 꼬마 손님들이 프레임 안에 수시로 난입했고, 사방의 문을 열어젖혔음에도 뙤약볕만 내리쬘 뿐 미풍조차 불어오지 않아 무더위가 엄습했다. 완연한 여름이 내려 앉기 전인 하지 무렵이었으나 이례적으로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초여름이었다. 머릿속에 되뇌던 혼례 절차는 뒤섞인 채 어느 순간 백지상태가 되어버렸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기억 속엔 그날의 기억이 없다.
별 탈 없이 그저 잘 살라는 시부모님의 덕담과 친정아버지와 어머니의 두 손 꼭 맞잡은 온기만이 남아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