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꿈을 누가 평가하면 귀담아듣지 마렴.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다수의 거품 같은 사람들'보다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껴주는 '소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 법이다.
세상의 모든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믿음 중 하나는 세상 사람 중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은 내 재능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김진영, 고영건 지음 <이만하면 괜찮은 부모> 중에서
고3이었다.
대학 진학과 진로 고민을 심각하게 하는 그 시절, 나는 그것에서 꽤 자유로웠다.
고등학교 내내 신문반 동아리 생활에 흠뻑 빠져 취재하고, 글 쓰고, 신문 교정하는 일에 몰두했다. 한 학기에 한 부 발행되는 신문이 큰 즐거움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인생에서 꽤나 큰 성취감을 맛보고 있었다.
공부는 잘했느냐? 그러지 못했다.
이상한 심보일 수 있는데, 오지선다형의 정답이 있는 그 공부가 그렇게도 재미가 없었다. 그 답 하나를 찾기 위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을 인내심이 내겐 없었다. 세상에는 재밌는 것이 너무나 많아 보였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 이야기들, 결과물들이 너무 많았다. 그냥 그런 것들을 찾아보고, 혼자 공상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의무감에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전교생 진로 상담을 위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부모님의 장래희망과 본인의 장래희망을 적어오란 설문지였다. 집에 돌아와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니 큰 고민 없이 '선생님'을 적어주셨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나를 상상하니 꽤 멋있어 보여 나 또한 '선생님'을 적어 갔다.
다음날 선생님은 1번부터 차례로 교무실로 불러 상담을 시작하셨다.
나의 차례가 되어 교무실에 갔다.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런데 선생님께서 내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너 부모님께 성적표 보여드리니?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부모님이 나의 성적표를 봤다면, 교대를 진학해야 가능한 직업인 '선생님'을 적어서 낼 수 없었으리라 판단하신 것 같다. 뭐, 틀린 생각은 아니다. 뻘쭘함과 무안함이 밀려왔다. 숨김없이 보여드린다고 대답하고, 교대에 진학하는 건 어려운 것을 알고 있다고 답변드렸다. 뭔가 고백도 하기 전에 차인 느낌이었달까? 원서를 낸 것도 아닌데 광탈한 기분이었다. (냈어도 광탈 했을 성적이긴 함)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이런 상담을 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나 교대 못 가서 선생님 못한데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장이 꼬여 학교에 가지 못했다. 저 상담 때문인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의 스트레스가 올라왔던 것 같다.
엄마는 선생님께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 한다고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이 타이밍이다! 생각하셨는지, 장래희망으로 '선생님'을 적어 보낸 이야기를 꺼내셨다. 뭐라 말씀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엄마의 대답은 정확히 기억난다.
교대는 못 가는 거 압니다.
그런데 장래희망은 '꿈'이지요?
꿈을 적어 내라 하셔서 꿈을 적어 보냈어요.
꿈은 뭐든 꿀 수 있지요.
그리고 교대를 가지 않아도
선생님이 될 수도 있지요.
(호호호)
누워있던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래희망=장래에 하고 싶은 직업' 이라고만 생각했던 나다. 장래희망에 '꿈'을 적는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그 꿈이 대학을 어디에 가느냐로 이뤄지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 놀라웠다. 형식적인 진로 상담이라 생각했을 뿐인데, 엄마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난 직업, 대학교, 학과, 자격증 등에 얽매이며 내 삶을 가두지 않았다. 나의 삶을 놓고, 인생을 놓고 꿈을 그렸다.
20대에는 외국 10개 나라를 다니며 경험을 쌓고, 30대에는 나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40대에는 부자가 되고, 50대에는 책을 쓰고, 60대에는 경험과 지식을 나눠주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인생 계획을 이때 세웠다.
실제로 20대의 꿈은 26살에 이루었고, 30대의 꿈은 이뤄가고 있다.
엄마는 아주 지혜롭고 현명하게 나의 기를 살려주었다. '장래희망' 빈칸을 채워 타인에게 평가받는 삶이 아니라, '꿈'을 담아 나 스스로 걸어갈 힘을 길러주셨다. 언제나 날 믿어주셨고, 지금 상황에서 터무니없는 꿈을 꿔도 언제나 한결같이 대답하셨다.
그래, 한번 해봐.
나도 우리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어떤 꿈을 꿔도 지지해 주는 사람. 그 꿈을 평가하지 않는 사람. 언제나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
엄마에게서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지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