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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변 Oct 15. 2024

10월엔 방콕이지

3인 가족이 방콕 가서 먹고 또 먹은 이야기

미뤄둔 휴가를 다녀왔다. 태국도 10월은 좀 덜 덥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항공권 예약부터 해뒀는데 웬걸. 낮기온은 32°C까지 오르고 7~8월과 큰 차이가 없다(Weather Spark 방콕 날씨 참조). 한국에서 긴 늦더위가 마침내 끝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둘째주, 나와 남편, 아들 세 식구는 다시 여름옷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 방콕으로 떠났다.


실내형 인간들은 쇼핑몰에 간다

태국은 큰 나라고, 수도인 방콕 또한 서울 면적의 2.6배에 이르는 대도시다. 여기저기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 우리 가족은 쇼핑을 즐기지 않지만 해외여행 가면 쇼핑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몇 년 전까진 ‘저희 애가 아직 어려서’라고 말하곤 했지만, 이제 애가 만 9세다 보니 그런 변명도 민망하다. 우린 그냥 냉난방 잘되는 실내를 좋아하는 실내형 인간들이다.

아속역 근처 대형 쇼핑몰 ‘터미널21’ 내•외부 모습. 여기서 3km 떨어진 시암역 근처엔 ‘시암 파라곤’, ‘시암 디스커버리’, ‘센트럴월드’ 등 더 큰 쇼핑몰들이 밀집해 있다.


여기서 쇼핑을 안 하고 뭘 했냐고 묻는다면..우린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쏨분 씨푸드’ 같은 비싼 음식점도 당연히 맛있었지만, 푸드코트에서 먹은 안 비싼 음식들도 맛있었다. 시암 파라곤 푸드코트에서 별생각 없이 주문한 똠얌라면이 얼마나 맛있던지 셋이 아주 코 박고 싹싹 긁어먹었다.

‘쏨분 씨푸드(Somboon Seafood)'의 푸팟퐁커리와 모닝글로리볶음
시암 파라곤 G1층 푸드코트에서 먹은 똠얌라면과 해물오믈렛


모든 날이 맛있었다

물론 쇼핑몰 식당만 간 것은 아니었다. 다른 식당을 물색할 때는 주로 네이버에서 ‘왓포 맛집 에어컨’, ‘아속역 맛집 에어컨’ 등으로 검색하여 현 위치에서 가깝고 시원한 식당들을 찾았는데, 신기할 정도로 모두 다 맛있었다. (일단 시원하면 음식 맛에 약간 덜 까다로워지는 효과도 없지 않다)

가는 곳마다 땡모반(수박 주스/슬러시) 하나씩 들이키면서 팟타이도 먹고, 똠얌꿍도 먹은 뒤 흡족한 기분으로 일어섰다.

왕궁 근처 에어컨 맛집 '크루아 쿤 쿵(Khrua khun kung)', 바삭한 새우요리와 팟타이.
(왼)어딜 가든 일단 땡모반 주문. (오)카오산로드 근처 '나이 쏘이(Nai Soie)'의 갈비국수. 여긴 에어컨 없이 맛으로 승부하는 맛집인 점 주의.


야시장에도 가보고 길거리 음식도 먹어보고 싶은데 너무 덥고 위생이 걱정된다면? 다 방법 있다. '아이콘시암‘이라는 대형 쇼핑몰 G층에 ’쑥 시암(Sook Siam)'이라고, 야시장 느낌을 잘 살린 ‘실내‘ 시장이 엄청 큰 규모로 조성돼 있다. 수상시장 분위기를 내기 위해 군데군데 수로 비슷한 것도 깔고 배 모형도 갖다 놓은 것이, 관광객들의 취향을 잘 아는구나 싶다.

‘쑥 시암’ 내 점포들. 오른쪽 사진은 설마 악어인가? 라고 생각하셨다면 악어가 맞습니다. 악어고기 꼬치 판매중.


크고 화려한 왕궁과 사원들

정말로 일주일 내내 먹기만 한 것은 아니고, 틈틈이 관광도 했다. 차오프라야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붙어있는 왕궁(Grand Palace), 왓 포(Wat Pho) , 왓 아룬(Wat Arun)은 할 말을 잃게 하는 화려함으로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하늘을 찌르는 뾰족한 지붕과 탑들이 즐비한데, 그 표면은 여백 하나 없이 빼곡하게 정교한 문양들로 덮여있다. 심지어 그 문양들은 알록달록하거나 번쩍거린다. 왓포 사원에는 무려 46m 길이의 거대한 와불상도 있다. 규모와 화려함에 대한 집착을 끝까지 밀어붙였을 때 도달하는 어떤 경지라고 해야 할까.

왕궁(왼쪽)과 왕실 사원인 왓 프라깨우(오른쪽). 왕궁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들어가면 왓 프라깨우부터 돌아보고 왕궁으로 이동하게 된다.
왓 포(왼쪽)와 왓 아룬(오른쪽). 왓 아룬은 특히 밤에 불 켜진 모습이 장관이다.


방콕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아유타야(Ayutthaya)’의 사원들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몰락한 아유타야 왕국의 수도. 이곳은 한때 크고 화려했던 그 무엇의 흔적에 가깝다. 풍파에 허물어진 와중에도 그 규모와 아름다움이 과거의 영광을 짐작케 하고, 침략자들에게 목 잘린 불상들이 역사를 상기시킨다.

아유타야에 있는 ’왓 야이차이 몽콜(Wat Yai Chai Monkohl)‘ 전경(왼쪽)과 ‘왓 마하탓(Wat Mahathat)’의 보리수나무 불상(오른쪽).


아유타야는 한국인 대상 가이드 투어 상품으로 다녀왔는데, 투어에 야시장이 포함돼 있는 바람에 결국 진짜 야시장도 잠깐 구경했다. 여기서 또 닭꼬치도 먹고 돼지고기튀김도 먹고..배부른 여행이었다.

아유타야 야시장에서 파는 먹거리들. 오른쪽 쌀과자(?)인지 뻥튀기인지가 정말 맛있었다.


인상적인 풍경과 맛들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와 보니 제법 쌀쌀했다. 아무래도 10월이라 더 좋았던 것 같다. 여름 성수기보다 관광지 인파도 덜하고, 날씨도 (미세하게나마) 덜 덥고, 아들은 학교 빠져서 신나고. 건기가 시작되는 11월이 더 쾌적하다고는 하던데, 역시 휴일 많은 10월이 딱 좋다.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방콕에 남아 미적거리는 상태에서 각자 학교로, 회사로 흩어진 우리 가족. 한동안 불쑥불쑥 여행의 기억을 꺼내 함께 곱씹으며 '아 그때 참 좋았는데' 하며 지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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