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감성 권하는 사회

현실과 가상의 주객전도

by Dike

얼마 전 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하나의 연애를 끝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끝냄을 당했다.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내가 듣기에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원래 연애라는 게 그런 것이겠지만 납득되지 않는 이유가 섞여 있을 때 밀려오는 아픔은 더 큰 법이다.

그녀와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둘 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었고 글을 사랑했지만 예술과 글을 대하는 태도는 극명하게 달랐다. 그녀는 말 그대로 감성적이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나는 매우 이성적이고 학문적으로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정서 차이는 예술을 대하는 태도 외에도 일상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녀는 내게 우린 정서의 결이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가 얘기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이유였다.

"왜 나랑 만나고부터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안 해?"


나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난 원래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익숙하지도 않고 흥미를 느껴본 적도 없다. 남자들은 대게 20대 중반이 넘어가면 sns를 잘 하지 않는다. 내 친구들도 자신의 그런 모습이 한심해 보인다고 하며 sns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그녀를 의도적으로 숨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심과 불안은 점점 몸집을 키워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전 직장에서 sns를 강제로 사용하도록 지시받았었다. 전 직장이 sns를 이용한 바이럴 마케팅으로 성장한 곳이었기에 사장님은 개개인의 sns 활동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한때는 과제로 일주일에 몇 개 이상 업로드하라는 숙제를 받을 정도로 sns를 사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직장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녀를 만났으니 그녀에게는 그렇게 보일 법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왜 그랬던 건지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한 번의 대화만으로 오해가 풀릴 수 있는 이 간단한 상황이 이렇게까지 발전하게 될 거라고는 난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연인 사이에 이런 대화조차도 하지 못할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한 게 더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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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봤던 TV 프로그램 중 말하는 대로에서 화가 정중원이 나와 하이퍼 리얼리즘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 가상과 실재가 주객이 전도된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번에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한 셈이다.




어릴 때부터 난 유행이나 신기술, 새로운 아이템, 최근의 패션 등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는 친하지 않았다. 컴퓨터도 컴맹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만 내가 필요한 것만은 그 기능만 배워서 잘 썼기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휴대폰도 전화와 메신저, 시계만 잘 보이면 OK였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완전한 오프라인 주의자였다. 나와 관련 없고 거의 볼 일도 없는 사이버 상의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눈 앞에서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선이었다.


작년 여름 오사카에 여행을 다녀오고 친구와 사진을 같이 보고 있을 때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넌 사진을 왜 이렇게 찍었어?"

나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친구. 그 친구와 우리 둘의 사진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그 친구가 말하기를 "넌 네가 보고 싶은 걸 사진으로 찍었구나. 근데 보통은 나처럼 보여주고 싶은 걸 찍는 게 일반적이지"라고 했다.

나는 지나가다가 발견한 쓰레기통을 찍었고 오사카성에서도 천수각이 아니라 성벽의 한 쪽 벽면을 찍곤 했다. 이유는 쓰레기통의 개수가 우리나라보다 많은 편인 것이 분리수거를 꽤나 세세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일본의 섬세함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벽면은 성벽의 축조 방식이 고구려의 축조 기술과 유사한 점이 보였다고 생각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정말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찍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진정으로 내가 느끼고 사유한 것들을 감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가 지금 흔히 말하는 #감성스타그램은 정말 감성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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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시절, 채연의 눈물 셀카 게시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조롱의 의미도 있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게시물들을 올리곤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지금의 인스타그램은 이 싸이월드 감성의 성숙한 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쁜 사진 한 장과 짧은 글귀로 감성적이고 세련되어 보이게 피드를 업로드하지만 사실을 싸이월드 시절과 본질은 같은 게 아닐까?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고 사유한 감성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때로는 무언가를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 어쩌면 우리는 지금 그것을 감성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예전부터 독서모임에 종종 나가곤 했다. 지금도 독서모임 하나를 출석하는 중이다.

최근의 독서모임은 그동안의 모임들보다 맘에 들어서 출석하는 중인데 내가 경험한 바, 대부분의 독서모임은 강제로 책을 읽게 만들어 준다는 것 외의 기능을 느낄 수 없었다.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에 각자의 생각이 아니라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말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책의 내용,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생각해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심지어 모임에 임하는 태도가 꾸준히 출석하긴 하지만 열심히 책을 읽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너무 많았다.

단지 내가 이런 모임에 나오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위해서 라는 느낌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에세이가 인기 있는 이유는 어쩌면 책을 읽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있어 보이기 위해 읽기 쉽고 얇은 에세이를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에서의 감성, 생각할 것들은 에세이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책에서도 수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유독 에세이에서만 그런 감성을 찾는 것은 어쩌면 실제로는 감성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책을 읽는다, 난 교양 있다, 난 감성적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감성은 오프라인에서 시작해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온라인에만 존재하거나 온라인에서 시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몸과 뇌가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애를 끝내며 내가 경험한 충격은 이런 종류였다.

그녀는 온라인 상에 자신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에게 가진 신뢰의 감정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나에게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유로 오프라인에서의 나에게 서운한 감정을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관련해 그냥 아무 생각도 없었던 상태였다.


어쩌면 그녀는 연인으로서 옆에 있는 실재의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피드를 꾸며 줄 부속품으로서의 내가 더 중요했던 것은 아닐까?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글쓰기.

음악과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

Insta : sanghoonoh_d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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