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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Nov 04. 2019

신입사원의 일확천금

나의 베를린 연수기(1)

기관 연수의 일환으로 독일에 다녀온지도 퍽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학부에서부터 상담을 공부하고 관련 분야에서 봉사활동부터 시작한 경력을 쌓아 온 나로서는 국내 상담 관련 기관에서 해외 연수를 보내준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네 사이에서 이른바 '한청원'이라 불리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의 경우는 왕왕 있다지만 그것도 거진 박사급 및 팀장급 이상 인력이 아니고서야 먼 이야기라고 들었다. 그런데 웬걸, 입사한 지 갓 한 달 차였던 나에게도 독일 연수의 기회가 주어졌다. 


나를 포함해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대학원 동기들, 선배들, 박사 선생님들, 지도 교수님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기회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라는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노예 계약이라도 했냐는 것이었다. '1년 안 채우면 소송 당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라는 주위의 농담 반 염려 반 섞인 질문에 집 가서 계약서도 다시 읽어봤지만 그런 조항은 없었다. 


물론 이 해외 연수는 내가 입사하기 한참 전부터 우리 팀 전체를 대상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사 시기가 늦었으니 연수 대상자도 아니었다. 그래서 팀원들이 베를린에 다녀오는 동안 사무실을 지키는 걸로 정해져 있었고, 나 또한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수긍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수를 몇 주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일개 신입인 나 또한 다녀오라는 하해와 같은 기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갓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신입에게 이 바닥에서 전례 없는 해외 연수의 기회가 주어진 건 우리 팀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우리는 청소년 중에서도 특히 사회의 '소수자'로 분류되는 이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나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지원하는 팀이었다. 더군다나 올해 막 시작된 시범사업 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 팀에서 집중하고자 하는 이들 중 하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로서, 국내 공공기관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여러 선례를 공부하고 현장의 고충과 이야기를 듣는 일이 필요했다. 


어쨌든 나는 개인적으로 여전히 '정말 나도 가도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과 기대를 품은 채 독일로 출발했다. 5일 일정이었는데 오고 가는데만 이틀을 잡아야 했으니 실제 독일 현지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연수에서 기관과 팀의 목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나의 개인적 목표를 세웠다. 내가 매일매일 머리를 쥐어뜯으며 상담자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중임을 고려하였을 때 나는 현지 종사자들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외국의 상담자나 소셜 워커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들을 할까?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일할까? 나만 이런 고민을 할까? 현장의 고달픔 속에서 나만 이렇게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이 모든 일들을 때려치우고 싶다 염불을 외우며 다닐까? 


갑작스러운 기회였고, 나는 여전히 인생을 고민하느라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었고, 기관에서는 신입사원으로서 아직 적응 과정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출발하는 당일 비행기를 타서도 마음이 혼란하여 영 얼떨떨하고 현실감이 도통 없었다. 물론 기내식만큼은 먹어 본 중 정말 가장 맛없어서 아주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인천 발 베를린행 항공편은 직항이 없기에 뮌헨이 우리의 중간 경유지였다. 그런데 환승에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이었다. 예? 사실 이건 예약 때부터 우리 모두가 걱정하던 바이기도 했다. 과연 우리 모두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환승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내리기 전부터 우리 모두는 전투적으로 달려 나갈 태세를 취했고 정말 온 힘을 다해 환승 게이트 앞까지 도달했다. 중간에 거친 입국 수속은 고압적이고 불친절했으며, 중간에 길도 못 찾아서 공항 경찰에게 길 물어보려고 다가갔다가 엉뚱하게 고압적인 소지품 검색이나 당했지만 그래도 낙오자 없이 모두 환승 게이트 앞에 섰다. 하지만 그 모든 뜀박질은 소용이 없었다. 


환승 비행 편이 기술 결함을 이유로 취소됐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쁜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다시 티켓 발권을 위해 키오스크로 달려야 했다. 어쨌든 새 비행 편을 구하긴 했고, 베를린에 도착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다 갔다. 


 첫 날 베를린에서의 첫 저녁.

무언가 뿌듯하고 동시에 허망한 느낌이 드는 하루였다. 호텔 근처 식당에서 피로하고 상기된 얼굴의 팀원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내일의 일정을 점검했다. 와중에 독일에 왔으니 커리부어스트는 먹어줘야지! 하는 마음에 커리 부어스트를 주문했지만 썩 맛있진 않았다. 연수였기에 알콜을 주문할 수도, 마실 수도 없어서 맥주도 없이 먹어서 그런 걸까. 하여간 짰다는 기억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가 간 곳이 그냥 맛이 없는 집이었을 수도……. 


여하간 짜디 짠 커리부어스트를 먹으며 다시 복기한 우리의 독일 연수 다음 날 일정은 이러했다. 오전에는 점심 겸 기관 방문 시 현지 통역을 담당해주실 통역가 선생님을 만나 아이스 브레이킹 겸 우리 사업에 대한 소개와 통역을 위한 배경 지식을 설명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에 첫 기관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가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방문할 기관은 람다(Lambda), 베를린에 위치한 성소수자 청소년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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