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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쟁이 내 친구!
by
수다쟁이
Sep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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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등학교 친구 중에는 사주를 봐주는 친구가 있다.
신내림을 받은 게 아니라
그냥 심심풀이 삼아 공부를 시작했던 게
10년을 하다 보니 직업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친구가 되게 심심한가 보다 했다.
할 일이 없으니 별걸 다하는구나!
사주는 아무나 보니? 하고 내심 우습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공부할 적 주된 대상은 바로 나
내 사주였다.
나도 집에서 엄마 병간호를 하고 있었고
그 친구도 나보다 먼저 엄마의 병간호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다.
그 친구는 나를 마루타로 삼았다.
나도 흔쾌히 마루타가 되어줬다. 집에서 엄마만 바라보며 사는 20대의 하루는 팔십 노인의 뒤를 따라 걷는 것처럼 지루하고 답답했다.
○○아! 너는 을목이야
을목이 뭔데?
관목이 아니란 말이지..
관목은 부러질 수 있지만 을목은 절대로 부러지지 않아.
이를테면 갈대 같은 존재지..
넌 그렇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잘 견뎌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런 사주를 갖기도 쉽지 않아..
넌 비교적 오행을 다 가지고 있는 사주이기 때문에
충이
좀 있어도 괜찮아~~^^
화가 없지만 숨어있으니
나쁘지 않을 거야!
결혼은 하니?
결혼을 하긴 할 거 같아 관은 직업이나 남편으로 쓰이는 거거든 넌 지금 직업이 없으니 아마 관이 남편으로 쓰일 거야.
그리고 넌 남편이랑 합이 들어서
절대 못 헤어져.ㅎㅎ
근데 민서야 우린 왜 이렇게 사니?
그건 말이야 니 사주에 충이 좀 있어서
아마 네가 좀 힘든 걸 거야.
근데 30대부터 대운이 찾아오니
걱정하지 마.. 40대 50대까지도 그 대운이 받쳐줄 테니까..ㅋㅋ
친구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면서도
나는 그 답답한 시절에 친구랑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그리고 운명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던 거 같다
운명이란 그리고 팔자라는 건 때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삶의 그림자 같았다.
믿거나 말거나의 사주 얘기로
친구와 나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통화를 했고,
답답한 그 시절의 하루하루의 시간들은 위로가 됐고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나에게 진지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
○아! 사주 보는 카페에 구인광고가 났는데
내가 집에서 혼자 독학으로 사주 공부하고
친구들 봐준 게 전부인데
그런데 가서 면접을 봐도 될까?
그럼 뭐 어때 우리가 어렸을 때
재미 삼아 보던 사주쟁이들도
내가 볼 땐 너보다도 못 보더라
넌 얘기를 굉장히 자세하게 풀어주고
상담 역할도 잘해줘서
아마 보는 사람들이 엄청 좋아할걸..
내 말 한번 믿어봐
그리고 가서 한 번 깨져봐야 너한테 발전이 있는 거야~
걱정하지 말고 처음인 것처럼만 안 하면 돼..
그리고 약간 도인처럼 하고 가는 건 어때?
너무 어려 보이면 그렇잖아? 네가 나름 동안이잖아? ㅎㅎ
그리고 요즘에는 사주 보는 게 신내림한 사람만 보는 게 아니라 명리학이라는 학문으로 자리 잡아서 직업으로 삼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노후 걱정 없잖아 ㅋㅋ
고등학교 학창 시절 법조인을 꿈꾸던 나의 친구 민서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가지 못했다.
꿈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꿈을 펼칠 기회가 그 친구에겐 오지 않았다.
대기업에 입사를 해서 회사생활을 하던 친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엄마가 갑자기 횡단보도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셨어
의식이 없으셔..
의사가 그만 산소호흡기를 빼자 했지만
가족들은 젊은 엄마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걸 아셨는지 친구의 어머님은
2주 만에 의식을 찾으셨다.
그 이후로 친구는 다시 아기가 된 엄마와
엄마가 된 딸로 역할을 바꾸어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스물다섯의 한창 이쁠나이에..
그리고
나의 그 적극적인 말 한마디에 힘입어 아주 쿨한 사주쟁이가 되었다.
몇 년의 그런 시간들로
나는 삼십 대 중반쯤에 엄마에 대한 숙제를 끝냈을
때
그 친구는 아직도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친구의 엄마는 이십 년을 넘게 누워서 떼를 쓰는 아기인 채로
친구는 도를 닦지 않아도 도를 닦는 도인처럼
그리고
삶은 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민서야 너는 니 사주도 볼 수 있니?
넌 왜 그렇게 힘들어?
글쎄 내 팔자지.. 뭐..
엄마가 돌아가시고 매년 친구 엄마를 찾아가겠다던
나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핑계로..
그리고 친구는 늘 다른 이들의 시시껄렁한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하는 게 아니야..
이혼하고 싶음 이혼해..
얘는 공부할 애가 아니야~ 포기해.
돈을 벌면 뭐해 다 세는데..
"
그리고 몇 년 동안 친구는 연락을 끊었다.
삶이 버거운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기에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고
친구와의 연락을 잠시 묻어뒀다.
1년에 한두 번 간간이 안부를 묻는 나의 문자에
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외롭지 않을까? 힘들지 않을까? 종종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늘 밝은 친구니까 잘 살아가겠지 하고 내심 나를 안심시켰다.
7년쯤일까? 8년쯤일까? 시간이 너무 흐르니
오랜 무소식에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연락에 친구가 드디어 답을 해왔다.
불안의 이유가 있었던 듯 친구는 안 좋았던 사실을
역시나 무덤덤하게 알려왔다.
어~그동안 좀 아팠어.. 항암치료를 받았거든..
별것 아냐~
알리면 시끄러울까 봐 그냥 안 알린 거야~
친구의 경쾌하고 밝은 목소리가
슬프게 가슴을 울렸다.
이제 운명이란 걸 믿지 않아 더 이상 사주를 보지 않는다는 친구에게
어떤 말도 위로가 돼주지 못한다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민서야! 슬플 땐 웃는 게 아니라 우는 거래!
늘 아무렇지 않게 웃는 친구에게 정말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운명이란 블랙홀을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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