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귀뚜라미 소리가 귓가에 찌릇찌릇 울려 퍼진다. 여러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가 우는 소리 같아 가을의 일렁거림이 유난히 심한 멀미를 일으킨다.
지나온 가을은
멋진 쟈켓을 꺼내 입을 설렘을 주고
따뜻한 커피 한잔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주고
뒹굴뒹굴 굴러가는 나뭇잎을 쫓아다니며 하하하 웃을 수 있는 기쁨을 주고
사각사각 메마른 나뭇잎을 밟으며 가을을 곱씹을 수 있는 낭만을 주었는데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 가을은 이상하리만큼
거리를 두고 마음에 들이고 싶지 않다.
이 가을은 잠시 한눈팔다 놓쳐버린 버스처럼 허망함을 안고 다가오기 때문이다.
정작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사각사각 밟히는 나뭇잎을 보게 되면
가을은 저만치 달아나 있겠지?
빨리 가을을 맞이할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