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엄마는 자신도 그리 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면서 외모지상주의자다.
엄마는 친구들도 안 예쁜 친구는 친구도 하기 싫다고 표현했다.
자신의 결핍(자신의 외모 콤플렉스)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태어났을 때 자기가 생각하는 예쁜 외모의 딸이 아니어서 실망했고 마음을 주지 않았나 보다.
반면에 동생은 참 선하고 반듯하게 생겼다. 어쩌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외모여서 동생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외모지상주의자니까.
어릴 때 외출할 때면 나는 안 데려가고 동생만 데리고 갔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도 가고 싶은데 나를 떼놓고 갔다. 아빠한테 맡기든 외갓집에 맡기든 그렇게 나는 엄마 따라 외출하지 못했다.
외모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고 어릴 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외모가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어릴 때 나는 거울을 보며 나는 왜 바비인형처럼 예쁘게 생기지 않는 걸까? 나는 왜 천사소녀새로미, 캔디, 소공녀처럼 예쁘게 생기지 않는 걸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엄마한테 나는 왜 눈이 작냐고 묻기도 했었다. 동갑인 사촌은 참 예쁘다. 그래서 나는 왜 그 사촌처럼 예쁘지 않은지도 고민했었다. 엄마는 사촌과 비교하며 너 태어났을 때 내 기분은 어땠겠니?라고 했다. 내가 받을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답변이다. 엄마 닮은 얼굴인데 나보고 어쩌라고. 이 얼굴이 내 탓인가?!
내 외모콤플렉스는 엄마로 인해 생겼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난 내 얼굴을 무척 사랑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외모가 더 인간적이고 질리지 않는다고 합리화한다. 그리고 지금의 얼굴은 전생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이라는 말을 듣고 나도 누군가가 좋아해 주는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외모지상주의의 엄마는 내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게 사랑을 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엄마의 시선이 나를 정의할 수는 없다. 나는 나대로 개성 있고 아름답다. 처음에는 외모가 상대에 대한 정보가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성품이 외모를 뛰어넘는 정보가 된다.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난 지금의 내 얼굴도 좋아한다. 난 나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건강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