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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작업 Jun 25. 2021

ESSAY / 당연하지가 않아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 착각하게 하는 사람

모든 관계에는 마땅히 지불해야  대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받았으면, 등가로 책정될 수 없더라도 엇비슷한 수준의 답심(答心)을 준비하는 것. 상대와 내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채 동일한 농도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 우리의 감정이 같은 계절을 걷는 것. 흔히들 인간관계를 시소에 비유하곤 한다. 한 사람에게 너무 무거운 하중을 싣지 않고, 다른 한쪽은 가벼이 떠있지 않은 채로 수평을 이루는 관계가 안정적이라고들 하더라.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언제나 양측 다 발이 땅에 붙어있어야 하며, 한 쪽으로 쏠려선 안 된다. 상대와 나에게 모두 선택권을 주는 것, 우리는 언제나 평행임을 체감시켜 주는 것. 끈끈하면서도 홀연한 이 이중적 양상 위에서 우리는 평생을 흔들거려야 한다.



작년 12월부터 우리 회사는 기약 없는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이젠 정말 지겨운 관용표현이 된 것만 같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재택근무가 가능한 부서는 아주 바쁠 때를 제외하고는 가능한 각자의 영역에서 업무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업의 특성상 바쁠 때면 한없이 빼곡한 나날을 견뎌내야 하지만 지금처럼 급한 불을 얼추 끄고 난 후에는 자유로움이 허락된다. 그래, 딱 지금처럼. 약 3주 전, 몇 달간 우리를 괴롭히던 러시 기간을 매듭지었다. 막상 일상을 되찾으니 별 거 없더라. 일어나서 밥 먹고, 책 보고, 티브이를 달고 살며, 습관적 운동을 곁들인…그런 건조하지도 축축하지도 않은 하루들. 천성이 사람을 늘 곁에 둬야 하며 바깥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터라 그런 생활도 오래 끄니 흥미가 떨어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든 생각은 '엄마 보고 싶네'였다.


엄마의 등뼈김치찜

6월 초에 본가가 이사를 했다. 새 집의 컨디션이 궁금하기도 했고, 내려올 때도 되어서 잠깐 내려왔다 올라갔는데 서울로 복귀하고 채 3주도 되지 않아 갑작스레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이었다. 7월 초에도 내려오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너무 잦지 않나 싶기도 했고, 오고 가고 시간도 상당해 망설여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제약과 여건들을 다 제쳐두고, 그냥 엄마가 보고 싶었다. 전화를 했다. “나 또 내려가도 돼.” “당연하지, 그걸 왜 고민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엄마도, 빨리 와.” “알았어, 비행기 표좀 볼게.” 짧은 전화 속 내 다짐을 말한 직후부터 표를 끊는 순간까지 엄마는 거듭 물어왔다. 언제 올 거냐고, 뭐 먹고 싶냐고, 저번에 왔을 때 못 먹은 잔치국수 해주겠다고.



부산에 내려와서는 최대한 엄마와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중간중간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다른 본가 방문 때에 비하면 최소한의 일정이었다. 회사에선, 바깥에선 나름대로 똑 부러지고 제 몫 잘한다는 말을 들어왔던 난데, 이상하게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철부지가 되고야 만다. 엄마는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 가고 싶었던 곳, 하고 싶었던 대화에 단 한 번도 반기를 든 적이 없다. 두 딸의 독립 이후 새롭게 짜인 엄마의 일상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 정교함에 깜빡이 없이 침투한 나를 결코 내몰지 않았다. 나랑 있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했고, 내가 그 마음을 결코 의심할 수 없도록 늘 증명해 보여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엄마에게 나를 왜 좋아하냐 물었다. 나는 이 원론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 늘 궁금했다. 나는 완벽한 딸이 아닌데, 엄마는 어떻게 나에게 늘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딸이니까 당연히 좋지'였다. 하마터면 당연한 게 어딨냐고 되물을 뻔했다. 나는 아마도 평생, 삶이 다 할 때까지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당신은 불분명한 대가에 기꺼이 상당한 마음을 지불하는 것일 텐데 어떻게 그 앞에 '당연함'이라는 단어를 이리도 단단히 붙일 수가 있냐고. 엄마와 함께 올라탄 시소에서, 아마도 나는 한 번도 땅에 발을 붙여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막대히도 무거운 사랑의 체중이 매순간 무던히도 나를 지탱해왔고, 나는 덕분에 평생 구름 위에 떠있는 기분을 맛볼 수 있었으며, 장담컨대 그녀는 앞으로도 100%의 확률로 땅에서 발을 떼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실제로 잔치국수를 해주었다

나는 삶의 전반에 걸쳐 이 사랑을 의심할 예정이다. 사랑의 여부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사랑의 당위성에 대한 의심 말이다. 본인은 당연하다 말했지만 나는 그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겠다고. 내가 왜 좋냐는 물음을 영원히 되묻지 않는다면 이 과분한 사랑을 언젠가는 가벼이 여기는 딸이 될까 봐. 지금도 때때로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이 정도의 빈도는 불필요하다 여기는 순간이 있다. 조금 이따 받아야지. 나중에 다시 걸어야지. 내일 해야지. 그러나 엄마는 “지금은 좀 바빠, 나중에 전화해”라는 통보만 남기고 끊더라도 결코 나를 부재중으로 남기지 않았다. 당신에게 나는 늘 부재가 아닌 존재임을 인지시켜 주었다. 놓치고 있던 이런 것들을 깨달을 때마다 스스로를 재차 꾸짖었다. 너는 지금 말도 안 되는 사랑을 받고 있는 거라고. 이 사랑이 얼마나 맹목적인지를 엄마가 알게 해선 안 된다고. 이 사랑을 혼자 두지 말자고. 끊임없이 곱씹고, 반추해야만 한다.



내일은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날이다. 민망하게도 바로 다음 주에 다시 내려올 예정이다. 왕복 비행기 편은 이미 끊어 두었는데, 다시 올라갈 표를 취소하고 조금 더 머무를까 싶기도 하다. 어제 친구들과 오랜만에 과음을 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에게 결심을 말하고 곧바로 침대로 직행했다. 오늘 아침, 숙취에 허덕이며 깨어난 나에게 점심을 차려주며 이어진 말들. 어제 네가 그 말을 해주어 너무 고마웠다고. 며칠 더, 더 길게 부산에 있겠다고 해줘서 고맙고 행복했다고. 이토록 낯간지러운 문장들이 엄마의 입에선 묘하게도 담백하게 흘러나왔다. 그래, 언제 다시 바빠질지 모르는데 지금 이 시기에 최선을 다해 곁에 머무를게. 차마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문장들을 꾸역꾸역 삼킨 채 그저 알겠다고 대답하며 더없는 안온함을 느꼈다. 나는 이것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다운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정말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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