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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ture film Nov 26. 2020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8)

[영화적 순간 001]

<나무들 비탈에 서다>(최하원, 1968)

<오발탄>(유현목, 1961)을 시작으로 <안개>(김수용, 1967), <막차로 온 손님들>(유현목, 1967), <귀로>(이만희, 1967), <휴일>(이만희, 1968) 그리고 <나무들 비탈에 서다>(최하원, 1968)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걷는다. 그들의 걸음은 산책자로서 외부의 스펙터클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걷는 것 자체에 주목한다. 즉 그들의 걸음은 사색적이며 내면으로 침잠한다. 이들 영화에 내재한 한 인간을 짓누르는 무게는 그들의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 이때 화면은 비가시적인 내면의 불안과 복잡함을 드러내기 위해 변형된 이미지로 가득하다. 물론, 이러한 이미지 변형 자체가 카메라(의 기술적, 미학적 측면)를 드러내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 머문다면 구체성과 정당성의 결여된 기표만 남는다. 중요한 것은 동시대성의 획득이다. 왜 1967년, 1968년에 이 불안이 표현되고 있는가?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 팽배한 불안의 기저에는 한국전쟁이 있다. 그렇다면 왜 1967년, 1968년에 한국전쟁 이후 심리적 불안이 (대중적) 이미지로 생산되었는가이다. 한국 모더니즘 영화 담론장에서 기표로서 모더니즘 논의의 한계를 재고해야 한다.


+ 1960년대 후반 문예영화의 과잉적 나레이션은 이미지 생산의 한계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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