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춘천행 버스를 타기 위해 5시 반에 일어나서 후다닥 씻고 장비를 갖추고 간단하게 먹고 전원이 켜진 전자제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길을 나섰다. 약 10분 정도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으면서 강아지와 산책중인 여자, 편의점 알바생, 등산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을 마주쳤다. 아주 가끔 이렇게 새벽에 길을 나설 때가 있는데 기분이 좋다. 매번 먼 길을 떠나는 날이었으니 단지 설레서 일지도 모르지만, 난 밤만큼이나 새벽을 좋아한다.
이름은 전지훈련이지만 춘천이 고향인 친구와는 춘천여행겸 가는 것이다. 이 친구 덕분에 춘천을 굉장히 자주왔다. 얼마나 자주 왔냐면 <또간집> 춘천 편 한 장면 보고 어디인지 맞춤. 명예 춘천시민이라 할 수 있겠다. 졸려서 버스에서 내내 기절하듯 자면서 왔다. 코까지 골 정도로~~~~
오랜만에 간 춘천에서 먹은 갈비해장국. 난 고깃국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깍두기가 정말 맛있어서 싹싹 먹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사장님께 “맛있으니까~” 했는데 사장님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는 웃었다. 지민이가 플러팅 잘한다고 칭찬해줬다.
본격적으로 22km를 걷기 전에 편의점에서 초코렛을 샀다. 나는 초코볼을 좋아해서 아몬드 초코볼, 톡핑(아몬드), 킷캣을 샀고 나오자마자 킷캣을 조금 먹었다. 전지 훈련에서 먹는 초코렛도 이렇게 단데, 순례길에서는 얼마나 달고 맛있을까. 킷캣의 원산지가 아랍에미레이트라는 사실도 놀랍다.
출발지에 도착해서 양말과 발목보호대,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등산스틱까지 꺼냈다. 본격적으로 트레킹화를 포함한 장비들을 테스트할 시간이다. 햇빛 알러지를 막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리는 챙모자를 썼는데 말벌아저씨 같았다. 말벌도 두렵지 않은 비주얼이긴 했다.
말벌아저씨와 한 컷. 드디어 22km 순례길 첫번째 전지 훈련이 시작됐다. 신발은 맞춰 사서 신었기 때문에 트윈룩이라 할 수 있겠다. 춘천마라톤 코스와 동일하게 하프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기로 했다.
5km 걷고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서 들어간 스타벅스에서 눈물나게 맛있는 애플크럼블 케이크를 먹었다. 난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데 너무 맛있어서 많이 먹었다. 친구 말로는 스타벅스가 마스카포네를 잘한단다. 잠깐 걸었다고 식욕이 엄청나게 터져서 순례길 다녀와도 살빠지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다시 출발-
가는 길에 만난 표정. 난 이런 표정들이 매우 반갑다. 지금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이와 비슷한데 공통점이 있다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내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쩌다보니 이러고 있다. 그리고 난 그걸 약간 늦게 깨닫는다. 내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어…?’ 다. 그래서 이런 표정들이 참 좋다. 일단 무해하잖아~
반환점에 거의 도착해서 남긴 엄지척. 반환점 근처에 있는 피자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10km를 걷는 동안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새끼발가락이 약간 끼게 되었다는 느낌 뿐… 그런데 친구가 청천벽력같은 말을 했다. ‘발바닥이 뜨거워요.’ 어디서 많이 듣던 표현이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욕을 뱉었다.. 족저근막염에 걸렸던 친구가 하던 말이었다. 아니… 전지훈련에 벌써 족저근막염요?
모르겠고 피자먹었다. 치즈피자를 꿀에 찍어먹는 게 너무너무 맛있었다. 피자도 크게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맛있게 먹었다. 난 사실 다 크게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맛있다는 말이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사람에게도 똑같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일수도, 착한 사람일수도 있지만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돌아오는 길에 결국 카페에 들어가버렸다. 식당에 이어 친구는 이번에도 신발을 벗고 쉬었다. 발 안쪽, 아킬레스건까지 아픔이 옮았다. 족저근막염 원인을 찾다가 ‘평소보다 빨리 걷는 것’을 보고 우리는 무릎을 탁 쳤다. 나는 빨리 걷기로 소문났고 내 친구는 날 따라오느라 무리를 한 거다. 전에 나와 22km를 걸은 친구도 족저근막염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나니 내가 원인이구나 싶었다..
결국 오늘의 순례길 전지 훈련 첫 날은 16km에서 끝났다. 2만 2천보를 걸었다. 첫 훈련치고는 성공적이나 친구가 족저근막염이 아니길 바라고 또 걱정하면서 훈련이 마무리됐다.
찾아보니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세 번 족저근막염의 위험이 찾아오는 듯 하다. 가기 전에 걷기 연습을 하다가 한 번, 순례길에 가서 한 번, 다녀와서 한 번이다. 나는 안 걸릴 수 있을까? 두려워진다. 살로몬 트레킹화 대신 호카 러닝화를 신어야 할까?ㅠㅠ 그리고 오늘, 피아노 반주를 들으며 걷는 3시간 40분 동안 순례길을 걷는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난 왜, 걸으려는 걸까? 추측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순례길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