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프로젝트 5) 서울 전지훈련

by 쑤빼씨


춘천 전지훈련을 끝내고 3주, 그동안 훈련을 안했냐고 하면 안했다. 기껏해야 1만 ~ 2만 보를 걷는 여행이나 했을 뿐. 방심한 건 맞고, 이제라도 정신 차렸다. 트레킹화 길들이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샌들을 길들일 차례. 킨 샌들을 구매하긴 했지만 날이 쉽게 풀리지 않는 바람에 평소에 신고 다니지를 못해서 걱정이 많았다. 친구가 평소에 가고 싶다는 곰탕집이 마침 서울이고 거리가 25km 정도 되어서 걸어가기로 했다. 출발 시간은 아침 7시로 정해졌는데 이유는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이 3시부터기 때문이었다. 7시부터 6시간 반 걸으면 13시 반~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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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만하게 걷기 시작, 오랜만에 걸으니까 더 안 힘든 느낌이었다. 나는 사실 힘든 걸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가방도 가볍고, 발은 더 가볍고, 날씨는 좋고, 두려운 건 오직 햇빛 알레르기뿐인 나는 선크림 겹겹이 바르고, 얼굴 가리개에다가 챙모자까지 쓰고 길을 나섰다. 순례길을 햇빛 알레르기로부터 안전하게 다녀올 방법은 오직 밤티뿐인 것이다. 그래도 언제 피었는지 몰랐던 벚꽃 구경을 실컷했다. 그런데 왜인지 나는 걸을 땐 전혀 안 힘들고 쉬면 힘들어지는 스타일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사진찍으려고 멈출 때마다 힘들었음. 순례길에서는 완전히 무시하고 갈길 가련다. 그래도 지하철 지나가는 타이밍 맞춰서 벚꽃 사진 찍은 건 기분이 좋았다. 히히. 일본 영화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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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에서 서울시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런 것도 있어서 신기해서 찍었다. 여러모로 버스타고 자주다니던 길을 걸어간 건 처음이었다. 차가 너무 많고, 쌩쌩 달리고, 횡단보도가 너무 많아서 순례길은 걷기 좀 여러모로 더 쉽고 평화롭겠지 생각했다. 적어도 여기서 걷는 것보다는 다른 생각을 하겠지…? 아침에 분명히 편의점가서 단백이랑 초코렛이랑 먹고 걷기 시작한건데도 9시가 되니까 배가 슬슬 고파진 동지가 스타벅스를 가자고 했다. 사실 친구는 단백이 안 먹긴 함. 눈앞에 보이는 스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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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신 스타벅스. 통창이 너무 예뻐서 동지랑 여기로 이사오자고 할 정도였다. 라떼 마시고 하마 초코렛 하나 더 먹고, 샌드위치 하나 사서 반 나눠먹고 화장실 갔다가 출발했다. 우리는 2시간 걷고 쉬는 루틴을 계속 가면 좋을 것 같다. 화장실도 두시간 정도면 한 번 가면 좋을 것 같고, 생각보다 걷는 과정에서 커피가 많이 생각나서 조금 걱정되긴 한다. 걷는 동안 처음에는 수다를 좀 떨다가 각자 시간을 갖고 걸었는데, 최근에 관심이 많아진 미국 현대사 유튜브를 들으면서 걸었다. 평화로운 걷는 시간 내내 내 귀에서는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이 차례로 무너지고, 봉쇄된 서독에 1년 동안 27만 번의 비행기가 생필품을 수송하고 있었다. 정말 재밌구나. 순례길에 가서는 무엇을 들으면 좋을지 벌써 고민 반 기대 반이다. 나는 음악 듣는 걸 그렇게 엄청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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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또 음식 사진이다. 이상할 건 없다. 2시간을 더 걸었고, 수색역에 도착했고, 올리브영이 보이길래 선크림을 사러 들어갔고, 선크림 할인을 안하길래 파스타칩만 사서 먹으면서 걸었고, 눈앞에 만두집이 보였고, 내 동지는 만두 킬러임. 심지어. 길만두. 이 친구는 길 걸어가면서 만두 먹는 사람임. 먹고 가려고 했는데 간장을 어디 뿌리지 고민하고 있었더니 사장님이 간장을 종지에 담아서 가져와주셨다. 게다가 요청하지 않은 찬물까지 종이컵에 담아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꼴이 아마 물이 필요한, 오래 걸어서 지친 나그네의 꼴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감격스러운 친절에 울면서(거짓말임) 만두를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사장님이 너무 친절해서요. 여기는 꼭 정보를 남기고 싶어요. 여러분 여기도 꼭 가세요. 만두 맛집. 친절 맛집.

너무 먹는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역시 너무 먹었다. 그래서 원래는 아래 지도처럼 25km를 걷는 여정이었는데. 18.6km 지점에서 만두집을 만난 것이었다. 그래서 만두를 먹고, 계산해보니 도저히 브레이크 타임 전에 곰탕집에 진입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먹기 위해 걷는 우리는 버스를 타겠다는 결심을 했고, 하필 운명적으로 바로 앞이 버스 정류장이었다. 버스를 40분 가량 타기로 했다. 나머지 7km는 돌아오는 길에 채우자는 결심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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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린 다음 식당까지 1.5km를 더 걸었으니 사실 20km를 걸은 것과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5km만 더 걸으면 되는 사람들인거다. 지친 상태로 서울곰탕에 들어섰다. 친구가 노래를 부르던 바로 그 서울곰탕이다. 식사 시간이 지나서 다행히 한산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들어갔고 당당하게 돼지곰탕 두 개를 시켰다. 근데 솔직히 누가봐도 맛집 간판 아닌가요? 이름도 맛집. 간판도 맛집. 맛집이면 저는 꼭 알리고 싶어지니까 다시 장소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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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에 들어있는 수육이요 정말 맛있어요. 저는 비계를 좋아해서 더더욱 맛있었습니다.수육을 안 시켜도 될 정도로 고기가 정말 많이 들어있어요. 갓김치도 맛있고, 깍두기도 맛있고, 고추도 맛있고, 마늘도 맛있고, 쌈장도 맛있고, 새우젓도 맛있다. 꼭 오세요 여러분 두번 오세요. 제가 살면서 먹은 곰탕 중에 제일 맛있어요. 그런데 국물은 좀 남겼다. 마지막에 살짝 느끼함이 올라오는데 소곰탕은 깔끔하다니 다음엔 소곰탕에 도전한다. 이 정도 고기 맛이면 조금 느끼해도 그러려니 싶잖아요.

여기부터는 차마 사진 올릴 수 없음. 왜냐면 커피 사진도 없고, 우연히(?) 양말을 벗었다가 물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도 물집 잡히는 사람이야????? 몇 가지 의심할 부분은 있다. 1. 길들지 않은 새 신발. 2. 10mm 크게 샀지만 딱 맞는 킨의 샌들 사이즈ㅡㅡ 3. 결국 답답함에 중간에 벗어버린 울양말 4. 울양말 벗고 헐거워지니까 신나서 다시 제대로 묶지 않고 걸었던 것. 하나같이 내 잘못이다. 그래도 징그러우니까 물집은 안 올릴게요. 그런데 순례길 기록부터는 물집 사진도 사정 없이 올릴 거니까, 비위 약하신 분은 순례길 준비까지만 보세요... 결국 물집을 발견한 즉시, 지하철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함. 그래도 첫 춘천 전지훈련은 16km 두번째 서울 전지훈련은 20km 다음주 세번째 전지훈련 24km 도전이다. 킨 샌들 다시 한번 마음을 맞춰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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