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자
비도 감정이 있을까. 한 번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멈출생각이 없다.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면서, 속에 품어둔 울분을 토한다. 땅에 떨어진 비는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여 슬픈 소리까지 들려준다. '쏴아아 아, 쏴아아 아' 떨어지는 빗소리는 나의 마음을 대변해 준다. 어디선가 올라오는 흙냄새마저 마음을 위로해 준다.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쌓였던 울분들이 내려앉는다.
며칠 전, 회의시간이었다. 회의시간에는 각자 맡은 업무에 대해 기획 보고 및 통계 발표를 해야 한다.
보고를 하고 나면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말이 있다.
"이건 어떻게 됐어?"
"네?"
"저번에 말했던 거 있잖아."
"그게 뭐예요..?"
"인마. ㅇㅇ상품 어떻게 됐냐고!!!"
직장 상사는 물어볼 때마다 주어를 빼는 습관이 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혹스럽다. 주어를 적절히 섞어서 물어보셨다면 바로 대답을 해드렸을 텐데. 주어를 빼고 물어보시니 억까를 당하는 느낌이다.
"주어를 붙여서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미세한 반항을 해도 돌아오는 답은 똑같다.
"네가 그러면 윗사람 해!"
살다 보면 말 못 할 사연 하나쯤은 갖고 있다. '직장상사와의 트러블, 가족문제, 과거 잊지 못할 사건, 나만 알고 있는 아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시원하게 외칠 수 있는 나만의 대나무 숲이 있으면 좋으련만. 나에게는 없다. 차라리 직장상사가 당나귀 귀였으면 좋겠다.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직원들과 대동단결 할 수 있으니.
울분을 토해낸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이 걷히고, 해가 방긋 맞이해주고 있다.
해를 보니 알게 됐다. 해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 자리에 떠있다는 걸. 상사분도 어떤 요청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우직하게 버티고 있을 거라는 걸. 내가 변해야 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센스쟁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