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사람입니다

사생일지2

by 숨ㅡsuum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김현아

이 책에서 간호사도 간호사이기 전에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코로나가 삼엄하고, 사망자와 확진자가 뉴스에 매일 보고되던 시기.


“200킬로가 넘는 환자가 음압에서 온데요!”라는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환자는 일상생활을 잘하던 분이었으나 코로나에 걸리면서 중증도가 매우 높아졌고, 컨디션이 악화면서 신장도 기능을 잃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젊었던 나이 덕에 환자는 빠르게 회복하였지만, 과중한 몸무게로 인해 2시간마다의 체위 변경에도 엉덩이 부위에 욕창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문제는 몸무게가 무겁기에 혼자 체위 변경을 해드릴 수가 없고, 매번 여러 명의 선생님들의 손을 빌려야 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불편했다. 호사로서 개인적 감정을 보여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환자를 보는 시간이 장기화가 될수록 늘 도움을 요청해야만 하는 상황에 눈치가 많이 보이고 스트레스가 쌓여갔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환자는 입원 기간이 길어지며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었고, 목에 구멍을 뚫어 호흡기를 연결하여 숨을 쉬고 있었기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의식이 명료하고 대화가 잘 되었기에 처음에는 애정을 가지고 환자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알아들을 때까지 입모양을 읽어주려 노력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차 나도 모르게 지쳐가고 있었다.


“ 죄송해요, 못 알아듣겠어요. “라는 말을 쉽사리 하게 되면서, 밀린 업무와 바쁜 중환자실 상황에 급한 의료적 처치를 먼저 해드리고 사적인 요구는 나중에 들어드리자 하며 스스로의 죄책감에 대한 합리화를 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몸무게로 인해 팔다리 하나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 답답할 것 같다는 것이 이해되었지만, 모든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시간이 나를 놀리듯 야속하게 빨리 달려가는 듯 느껴졌다.


나는 환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며 좀 더 애정을 가지고 간호하자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 시기에 환자의 부모님이 딸을 대하는 모습과 말에서 나는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환자는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오고 입원기간이 1년을 향해가고 있었고, 어마무시한 병원비를 걱정하는 환자에게 어머니는 환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연신 괜찮다며 웃어주었다.


“00아, 엄마아빠가 그렇게 돈 열심히 번거, 그거 다 00이 널 위해서니까 하나도 안 아깝다. 빨리 잘~ 나을 생각만 해라, 알겠제?"


그 말을 들으며 ‘정말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을 하던 시기, 청천벽력과 같이 환자의 엉덩이 욕창 수술이 잡혔다. 수술 이야기에 모두들 수술 후 자세나 수술 후 관리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수술부위를 띄우려면 직각으로 옆으로 눕는 자세를 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수술 후 대변으로 인한 수술부위 오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얼마나 오래 중환자실에 있을 것인가? 등등 의료진들 사이에서 많은 말들이 오갔다.


그렇게 수술당일이 찾아오고, 한국에서는 드문 200킬로의 환자의 수술이라 수술실에서도 어떻게 준비할지 막막했던 것 같다. 아침 7시, 인계를 다 받자마자 수술 준비를 하고, 수술실로 함께 출발했다. 환자는 두렵다며 울었고, 엄마는 옆에서 괜찮다며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수술이 정말 답일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수술실 앞에서 환자의 인계를 끝내고 걱정 중일 것 같은 환자분 어머니와 인사만 하고 부서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계신 환자의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 수술 잘 되길 바라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고요..” 하며 바로 돌아서려던 순간 보호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너무 고마운데...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가요”


근무 중이었던 터라 정중히 거절하고 가려던 나에게 어머니는 갑자기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엄마도 딸을 위해서 많이 참으면서 강한 척을 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 쟤가 저렇게 살고 있을 줄 알았으며 서울에 혼자 살게 안 보내는 건데…. 그냥 같이 살면서 행복하게만 살면 만족했을 텐데, 어쩌다가 저렇게까지 돼서는… 내가 잘못해서 쟤가 저렇게 된 것 같아서 죄책감이 너무 심하고… 쟤 앞에서 그런 이야기 안 하려 했는데, 병원비만 지금 어마어마한데… 나을 수만 있으면 뭐가 아깝냐만은… 그게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답답해 미치겠는 노릇이지…”


“…”


사실 거기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 무엇일까 아무리 고민을 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매우 장기화가 될 것 같은 환자에게 곧 퇴원하실 수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고문을 안겨드릴 수 없었고, 이미 벌어진 일 과거로 돌아가서 부모님 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지도 않은 상황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공감밖에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러게요.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따님도 힘들겠지만 어머님도 많이 힘드실 것 같아요…”


보호자들은 우리와 다르게 가족에 대해서는 늘 한결같은 진심일 수 있나 보다. 어머니의 눈시울에 맺힌 눈물이 그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욕창 수술 후에도 어머니, 아버지는 딸에게 사랑한다는 표현과 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금전적인 부분은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으로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런 부분을 티 내지 않고 딸에 대한 일념의 사랑으로 늘 긍정적인 이야기와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것은 죄책감의 눈물인지, 감동의 눈물인지, 반성의 눈물인지, 부러움의 눈물인지, 안도의 눈물인지… 어떤 눈물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내 딸이라면?’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을 때, 저 보호자 분들처럼 저 정도의 사랑을 주고,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매일 질문했던 것 같다.


“00아, 병이 나으려면 긍정적인 생각이 제일 중요한 거 알제? 아빠랑 동생이랑 엄마랑 늘 기도하고 있으니까 힘내서 나을 생각만 해라, 알겠제? 아빠가 00이 너에게 딱 하나 부탁이 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탁말씀에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순간 궁금증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무슨 부탁일까? 나중에 퇴원하면 어디 함께 가자는 그런 약속일까?라는 추측을 해보았던 것 같다.


“…00이 네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을 거라고 믿으면 그게 아빠가 유일하게 바라는 거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말 알고있제? 할 수 있겠나?”


순간 내가 생각에 잠겨버린 것 같다. 아버지의 유일한 부탁을 들으며, ‘부모님은 이토록 간절히 딸이 나아서 퇴원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나는 과연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백 번 수천번, 심지어 퇴근하고서까지 되뇌고 되풀이했던 것 같다.


나는 간호사인데… 환자를 포기하기보다 희망적으로 퇴원할 수 있게 몸과 마음으로 빌어줘야 하는데, 나는 제대로 된 간호를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중환자실에서 이런 경우의 환자를 이토록 오랜 기간동안 간호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그만큼 더 오랜 시간의 내적갈등에 시달려 온 것 같다.


‘내가 00님과 같은 상황이라면?’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끊임없이 해보며, ‘그럼 너무 힘들긴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생각의 결말이 지어지던 시기. ‘힘들 텐데 잘해줘야겠다’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환자를 보러 가지만, 쏟아지는 업무와 체위 변경을 위해 눈치를 보고 육체적 부담과 요구에 치이면서 다시금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속마음이 불쑥 튀어나와 또다시 나를 힘들게 만든다…이렇게 환자를 보는 동안 나의 내면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부산에 살고있던 보호자인 어머니는 딸을 위해 서울에 집을 얻어서 매일 딸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면회를 왔다.


“00아, 동생이 니 들려주라고 폰에 영상 촬영해왔다이가, 함 들어봐라”

구수하고도 정감 있는 경상도 사투리로 전하는 그 진심 어린 마음은 나에게까지 전달되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누나, 엄마도 아빠도 나도, 누나 절대 포기 안 한다. 지금 찾아보면, 우리가 그 욕창 해결하기 해 볼 수 있는 게 아직 많고, 요즘 개발이 많이 되어 있어가꼬 꼭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알겠제? 절대 누나가 먼저 포기하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누나 포기 안 하니까 누나도 힘내서 나아서 퇴원할 것만 생각해레이~!”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진심의 고백을 실제로 듣는 것이 두려웠다. 나 또한 가족과 같이 한결 같이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고 싶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너무 어렸는지도 모르겠다. 당장의 이 근무시간이 환자로 인해 너무 힘들고, 그 몸무게가 감당하기 버거웠던 만큼 나의 몸과 마음은 소진되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이런 말을 듣고 있으면, 내가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던 부분들이 내 내면으로부터 비집고 나와 가족을 생각하는 그 마음을 눈앞에 선명히 보여주었다.


간호사도 간호사이기전에 사람이라고…한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났다..

나도 아직까지는 어린 마음에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고, 누군가가 나 또한 돌보아 주길 바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간호사로서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 환자분을 간호하면서 더욱 깊고, 더욱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답을 구하고자 나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해답이 없는 이 질문에, 언젠가 내 나름의 답을 내릴 수 있을까?

그때는 나 또한 한 걸음 더 성장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환자를 보며 행복하고 즐겁고, 우울하고 낙담하고 또 힘을 얻고 했던 나에게, 00님은 정말 특별한 존재이다. 환자가 잘 회복할 수 있을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든다.


이런 갈등과 번뇌와 고민속에서 나는 또 내일 출근을 한다…


여름이 이미 성큼 다가와 있지만, 아직 남아있는 추위가 피부로 깊이 스며드는 새벽 출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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