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추억과 정으로 대치된다.
오랜 기간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던 환자가 9개월간의 중환자실 치료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킬로라는 압도하는 몸무게에 모두가 지쳐 갔었고, 함께한 시간만큼 정도 많이 들었던,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 준 환자였다.
때는 이 교대 나이트를 출근한 날이었다. 최근 장이 터졌다는 의심과 함께 환자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었고, 몸무게로 인해 수술해도, 안 해도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에 수술은 보류되었다. 현재 컨디션도 패혈증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큰 수술을 한하는 것 자체가 수술 후에도 상태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왜 잃고 나서야 못해준 것들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할까... '있을 때 잘해라'는 속담이 이런 이유에서 생겨났나 보다.
길어진 치료에 보호자였던 어머니도 매우 예민해져 갔고.. 그만큼 우리도 환자와 예민해진 보호자를 매일 마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못했었다.
지나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예민함은 딸에 대한 걱정과 관심이 많았던 것일 뿐, 의료진에 대한 원망과 비난은 없었을지 모른다. 아니, 오히려 늘 감사의 표시를 못하게 막았던 김영란법을 원망했다면 원망하는 모습이었다.
"그 김영란 법이 뭐라고, **이도 나도 감사의 표시를 할 줄 아는 사람인데.. 그 얼마 된다고 그것도 못하게 하고.. 속상하지..."
혹여라도 **님을 담당하는 날에는 면회시간마다 많은 것을 요청하는 보호자에게 늘 곤란함을 느꼈다. 드레싱을 다시 해달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저 혼자는 무게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나중에 샘들 다 같이 불러서 같이 해드릴게요" 했던 내 지난날...
면회시간마다 어머니는 딸이 다친 부분을 보기 마음이 아팠는지 매일 '여기 다쳤다. 저기 다쳤다.' 하며 개인적으로 챙겨 온 성분을 알 수 없는 여러 연고를 발랐다.
"처방 없이 개인적으로 들고 온 연고를 바르면 안돼요".
"바쁜가 싶어서... 내가 해도 되니까 그리 했지. 미안합니다."
또 어느 날들은 어머니가 방청소에 모든 면회시간을 다 보내고 계셔서 가끔은 곤란함으로 응대를 하기도 했다. "청소를 위해 면회시간을 길게 드린 것이 아니에요. 청소는 담당해 주시는 분이 따로 계시니 걱정하지 마시고 환자랑 더 있어주세요."
매번 면회를 오실 때면 스탠드 티비를 좀 설치해도 되는지, 수천만원 하는 욕창 침대를 미국에서 직접 직수입해도 될지 등등... 상상해보지 못한 요청을 매번 하였고, 절차상 어려움이 많아 어느 정도 선에서 늘 타협하여 들어드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중환자실의 한쪽 격리방은 **님을 위한 호텔방처럼 변해갔다.
예민한 보호자라는 호칭을 달며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딸을 위해 3시간씩 곁을 지키며 늘 당당히 뭔가를 요구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9개월에 걸쳐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 되어 눈에 선명했다.
그토록 강인해 보였던 어머니의 임종 전날 밤 자유면회를 위해 들어올 때 모습은 너무나 다른 사람과 같이 느껴졌다. 어머니의 발걸음은 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보폭이 작고 힘이 없었으며, 뒷모습으로 보이던 앞으로 말려 축 처진 어깨는 어머니를 더 작게 보이게 하면서 슬픔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렇게 00님 곁으로 가서 어머니는 한없이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눈물 머금은 눈빛으로 딸의 손을 꼭 잡고 지긋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담긴 그 마음이 내가 아직 깊이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이며.. 생각만 하면 눈물만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다음날 저녁, 히터를 틀고 출근 중이었음에도 출근길에 문득 추위를 느꼈다. 왠지 출근하면 그 환자분이 안 계실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그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터져 엉엉 소리를 내며 나도 모르게 울었다. 소리를 내어 울어본 적은 최근에 없었는데...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인지, 미안함의 눈물인지, 자책의 눈물인지, 상실의 눈물인지... 어떤 눈물이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인 감정이 나의 내면에 뒤섞여 나 또한 내 감정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근무복으로 환복하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자마자 그 환자의 격리방으로 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호텔과 같았던 번잡했던 격리방이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아 사늘함마저 느껴졌다. 그 순간 과거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쯪쯪쯪"
목을 뚫어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던 **님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에 늘 아프거나 부를 때 "쯪쯪" 하며 소리를 내었다. 강아지를 부르는 듯 의료진을 불렀던 그 소리는 당시에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지만, **님에게는 아주 간절한 도움 요청의 소리이자 호소였음을 환자가 잃고서야 생각했다. 그 마음을 이 순간 깨달은 나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미안함에 의지와 무관하게 눈물에 섞여 끊임없이 흘러나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소리를 죽였지만 끄흐흑.. 새어 나오는 소리와 함께 눈물이 흘렀다.
사람들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할 때는 안 될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최선을 다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는 서편제의 흔적이라는 노래만이 맴돌았다.
기억하나 내게 남긴 흔적
기억하나 그날 진한 흔적
너는 그냥 스친 손길이라 생각했겠지
넌 그날 무얼 남겼는지 모르고 있지
그건 너의 흔적이야
내게 남긴 너의 흔적
기억은 희미해져 가는데
모든 건 추억이 되는데
뭔가 그냥 가만두질 않고 날 붙잡는 건
뭔가 그저 흘러가질 않고 돌아보는 건
그건 너의 흔적이야
내게 남긴 너의 흔적
너에게도 남은 거니 그 흔적
내게만 남은 거니 그 흔적
마치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많은 정이 많이 쌓였던 환자의 상실은
그 후로도 몇 년간을 망망대해 위에서 홀로 돛단배를 탄 듯 방향과 길을 잃어 헤어 나오기 어렵게 만들었다. 스스로 유난이라 다그치면서도 헤맬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은 마치 내 삶에서 잠시 사라진 기간과 같이 검은색으로 공허하게 남아있다.
처음 느껴보았던 감정에 나 스스로를 포기하는 된 몇 년간의 시간과 과정을 이제는 글로 다듬어 조각해 나가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