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1705 시즌을 마치고, 트레바리 1709 시즌을 시작하며
학부 2학년, 아니면 3학년인가 가물가물하다. 나는 내 전공이 싫었다. 경영학. 학문이라고 부르기에 깊이가 없어 보였다. 회계와 재무 수업을 나가지 않곤 했었다. 4학년이 되어서, 타과생들이 ‘기업’의 목적에 대해서 자신들의 생각을 답할 때, 당연히 이윤추구인데...라고 혀를 찬 기억이 있다. 경영학과생들이 대한민국의 공채 시장에서 조금 더 가치있게 여겨지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가 싶었다. 그리곤 더더욱 이 학문이 싫다 여겼었다.
그러나 삶은, 내 얕은 배움을 증명하곤 했다. 경영학에서, 그리고 경제학에서 배운 것들을. 학문적으로 틀린 부분이 있을 지언정. 세상은 내가 배운 바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것을 배웠구나 하는 생각으로 사회릃 헤쳐나가면서 나는 더욱더 냉소에 익숙해졌다. 내가 주는 냉소와 받는 냉소 사이에서 세상은 원래 이렇다라는 것을 체감해갔다.
남월당이 불타고 나서 나는 분노했었는데. 사회 새내기인 나는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 그 언론사의 추태를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화는 났지만, 표출하지 않았다. 뭘, 또 화를 내나, 늘 그래왔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유족에 대한 자극적인 언론의 표현에도 마찬가지. 사람 혹은 사회에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도 그 때에는 들지 않았다. 그 때엔, 그런 절망감도 사치였다. 사회 활동가들이 조금은 우스워 보였다.
유물론에 가까운 생각. 혹은 세상은 예산이 지배한다는 생각. 조금 완화해서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개인의 생각, 신념이 살아 있겠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오로지 경제적인 편익만이 세상을 움직일 거라는 것을 알았고, 그 원리를 조금 살펴본 후에는 도망쳤다. 그래서 개인의 노력이 우스워 보일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비웃음이 아닌, 해학적인 웃음. 우리는 또 실패하겠지, 미시 차원의 실패들이 쌓여서야 저 거대한 이익기계를 조금이나마 역행시킬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세상을 바꾸겠다라는 거창한 말 보다는, 내 주위를 바꾸자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물론 훌륭한 개인이 이 시대에도 나타나서 영웅으로 기능할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나는 적어도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씨앗을 심는 일. 한 명, 두 명을 바꾸고 - 그러기 위해서 내가 바뀌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일은 너무 외로웠었다. 활동가로 변모할 자신도 없고, 덜익은 머리와 얕은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은 그들에게 공감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 때에, 트레바리를 만났다.
트레바리(독서모임)을 시작한지 1년이 더 지났다. 처음에는 독서모임인데 돈을 왜 이렇게 많이 받지라는 생각에 궁금해서 갔었다. 트레바리 뇽이라는 독서모임에서 HCI, 디자인의 개념에 대해 다시 고민하며 8개월을 보내었다. 오랜만에 각잡고 하는 독서가, 거기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정말 힘들었고 즐거웠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일요일 밤을 보내고 나면, 월요일 출근길은 거칠어졌지만 마음은 따듯해졌었다.
'트레바리'가 내건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이 문구를 여러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래서 잠깐 회사를 휴직하고 트레바리에서 일하기도 했었다. 저 문장 자체는 예전부터 명확하진 않지만, 세상에 내가 바라는 바 중에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가 항상 의문이었다. 하지만, '서비스'를 구독하는 개인으로 '트레바리'를 반년간 보면서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 을 '할 수 있겠다' 싶단 생각이 들어서 휴직을 한 상태로 트레바리에서 잠깐 일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1년간 ‘파트너’ 로 트레바리의 독서모임 여럿을 전전하였다. 그리고 지난 5월부터는 경제학 도서를 읽는 이콘그린이라는 모임을 시작하면서 내가 도망쳐왔던 문제에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특히 경제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노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이해도 되지 않는데 세상은 원래 이러니까, 이런 정책이 필요해! 라는 외침들을 듣는 느낌이 들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더이상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응, 그래 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하지만 경제학의 대가들이 내놓는 대답은 서로 다르고, 정답은 없었다.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 인 경우도 많았고. 행동경제학 도서를 읽을 때에는 많은 경제학의 기본 가정도 믿을 게 안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세상은 원래 돌아가는 방식이 있는데, 그게 뭔지 나도 모르겠어! 하는 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학문이란, 본래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과학구조의 혁명 처럼 페러다임이 바뀌듯, 시대에 따라서 경제학적 지식들이 가진 가치가 변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약간 덧없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무력감은 마찬가지인데, 정해진 것도 없으니 알아갈 방도가 있을리가 없지 않나. 그러다 오랜만에 만난 재미난 소설에서 좋은 구절을 하나 찾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 문구는 대충 이런 내용이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라는 거랑,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라는 거랑은 완전 다른 거예요 이 나쁜새끼야,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그러세요?”
이 문장을 읽는데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쉬운 말이다. 널리 퍼진 인식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때쯤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는 무지와 패기로 외쳤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말이 이제 와서 다시 와닿을줄이야, 하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일개 개인으로 경제를 공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거시 경제의 흐름과 개인의 재태크에 관련된 부분? 정치적인 지향점을 찾기 위함? 키보드 배틀에서 승리하기 위해? 단순히 지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것? 혹은 경제학적 인간으로의 소양을 가다듬기 위해서?
경제학의 렌즈로 삶의 많은 부분을 살펴보는 책들은 - 한 때 유행한 <괴짜경제학> 같은 책들은 사람들이 쌓아온 관습적인 인식을 해체하여,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날카로운 도구를 쥐어주려 노력한다. 그 관점은 주로 너는 이렇게 상식적으로 생각하지만, 경제학적 진실은 네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라라는 식으로 전개가 된다. 행동경제학이나 다른 비주류 경제학파들에서도 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널리 퍼진 경제학적 상식에 대한 도전이거나, 대안적인 경제 체제의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서문이나, 후기에 나오는 것들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분들. 사실 다른 학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상에 대한 분석적인 시각은 그 곳에 머무는 것에도 가치가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이러한 생각을,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주관에 나는 찬사를 보내는 편이다. 학문을 한다면 위험한 행동일 수 있겠지만 사회에 속한 개별 구성원으로 나는 학문과 실제 세계의 접점이 그 곳에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밥벌이에 당장 도움이 되지 않을 것들을 읽고, 거기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우리 각자의 ‘철학’’에 밑거름이 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합리화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일 수도 있겠다. 약간의 차이점은 있다. 내가 이러이러하다고 믿는 것과, 이래야 한다고 믿는 것의 차이이다. 두개의 차이가 극심할 경우에는 자의식 과잉 등의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라는 지식과, 그에 따른 부수적인 결과물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며 그 조합들 사이에서 가치판단을 적극적으로 내려야 한다.
왜나하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라는 자명한 진실과, 이렇게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은 별개의 것이며,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것 처럼 사회의 대부분은 다수의 상상으로 유지되는 가상의 구조물이며 그 믿음 체계는 우리 유전자보다는 사회와 공동체의 기억에 기생하는 것이기에 - 어쩌면 개인들의 믿음으로 부터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바티칸의 교회 지배에 반기를 들었고, 노예제의 폐지는 결과적으로 경제학적인 판단에 의한 정치적 행위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외쳤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기술의 발전, 새로운 발견들. 그로 인해 사회는 변혁을 겪는다.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배척하며, 사회는 이래서는 안된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대체로 진보에 대한 반동이며, 구체제를 답습하기 위한 수구 세력의 논리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내가 말하는 ‘세상은 이래야 한다’ 라는 것은 지극히 좌파적이고 혁명적인 - 때로는 논쟁적인 주제에 관한 부분이다. 세상은 지금 이렇게 돌아가고 있지만, 이렇게 돌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지점.
지난 4개월간의 경제학, 경영학 도서를 읽은 후의 총체적인 감상은 결국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진짜 그래? 라고 하는 부분에 대한 답변은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이들의 몫으로 남기고, 나는 주어진 정보들 속에서 가치판단을 내리는 개인으로써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판단. 대체로 투표, 선거에서 내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함으로 그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쩌면 글을 쓰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것을 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는, 이제 차차 찾아볼 생각이다. 이제야 나는 내가 싫어했던 내 전공과 그 전공이 기원하는 학문과 그에 파생된 이야기와 지식들을 조금 더 파보고 싶어 졌으니까. 물론 - 아마 다시 절망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게 어렵기 때문에. 혹은 내가 생각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나쁘지 않다. 읽으면서, 독후감을 쓰면서 그리고 그것을 입밖으로 꺼내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나는 변화할 것이니까. 어쨌든 행동만이 나를 증명할 것이니까.
그러니 오늘은 글을 쓰고, 내일은 책을 읽을 것 같다, 앞으로 4개월은 더. 적어도.
트레바리 1709 시즌 (아직은) 절찬 모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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