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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Aug 19. 2017

<트레바리> by 트레바리 크루

독서모임 서비스 '트레바리' 사용 후기

나의 내일로 너의 내일을 사고 싶어.


이영도가 쓴 <그림자 자국>에서 예언자는 자신의 침소에서 화가의 등에 이렇게 쓰며, 고백을 했었다. 


'나이키의 적은 닌텐도.라는 느낌의 카피인지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이 시사한 바는 여럿 있겠지만 ‘시간'이라는 자원을 기준으로 두었을 때, 경쟁의 경계선이 사라진다는 점이 내게는 가장 크게 와 닿았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우리의 시간을 보낸다. 이영도가 마찬가지로 쓴 <퓨쳐 워커> 에서 '챙'은 '미'에게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보내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축대 위에 삶을 쌓아가고, 그것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보통은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된다.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모두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냥 어떤 장소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는 것은, 그 장소와 그 느낌을 좋아하는 것이니까. 


요즘 내 시간을 꽤나 잡아먹은 한 모임이 있다. <트레바리>라는 독서 토론 클럽이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 모임은 내가 들은 것만 해도, 적지 않은 수가 있었다. 하지만 트레바리는 그것들과 가장 큰 차이가 있었다. ‘참가비'를 받는다, 그것도 사람에 따라 꽤 큰 액수로.


그러니까 이 모임에 내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가격을 지불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내가 이 모임을 조금 사랑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트레바리 안에는 다양한 독서클럽들이 있고, 몇몇 클럽들은 모임을 리딩 하는 ‘클럽장'을 중심으로 특정 주제를 파고드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신청한 것은 그중,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라는 주제를 표방하는 곳이었다. 내 비록 지금은 좀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대학원을 3초 가까이 고민하게 만든 그 주제라서, 그래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신청했다.(내가 원래 뭔갈 구매할 때는 보통 별 생각이 없다. 일단, 트레바리 경우에는 너무나 신기해서 결제했던 것 같다. 네까짓 게 돈을 받아? 라며)


'하늘을 불사르던 용의 노여움도 잊히고' 라는 문장으로 <눈물을 마시는 새> (이영도 저)는 시작한다. 작중 이야기가 전개되기 이전 세상은, 멈춰져 있었다. 예전의 신화들은 잠들어 버렸다. 많은 영웅 서사의 시작은, 고난으로 시작했는데, 이 책은 '정체'에서 시작했다. '정체',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단어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밀려서 1시간이라도 더 늦게 도착해본 사람은 그 끔찍함을 잘 알 것이다. 


최근의 내 삶도 꽤나 그랬다. 돌파구는 찾으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끈기 문제일 수도 있고, 능력 문제일 수도 있고, 맘 편하게 환경 탓을 할 수는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어느 정도는 나도 내가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삶의 쳇바퀴에 갇혀 있었다. 


얼마 전 <왕좌의 게임>을 보다 보니, '티리온 라니스터'와 '조라 모르몬트'가 ‘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다시 꿈을 꾸게 된다는 골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시즌 5 6,7편가량인 것 같다.) 삶에 그런 순간들이 있다. 용이 아니더라도. 내게는 <드래곤 라자> 가,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수업이,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이어진 네트워크가 그런 역할을 했었다.


이렇게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트레바리>에서, HCI를 다룬 모임을 하면서, 그 플랫폼 자체를 보면서 나는 또 하나의 ‘용'을 보았기 때문이다. 언급한 <눈물을 마시는 새>라는 작품은 용을 가능성이라고 묘사한다. 사실, 신화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생물은 다 그렇다. <기동전사 건담:UC>에서는 유니콘을 그렇게 부른다. 미지의 것에서 새로움이 탄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트레바리>라는 모임을 하면서 나는, 아직까지는 새롭고,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정보들이 많기에 즐거웠다.


이 글은, 수개월간 십수권의 책을 읽고 가진 십수번의 토론과 수차례 벌어진 ‘모임'들에 대한 내 감상문이다. <트레바리>이라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나는, 엄청나게 강렬하지 않지만 대신 지속적인 지적 자극과 도전 의식이 되살아났다. 솔직히 말하면 시작부터 ‘사이즈'를 재기 시작하는 회사원의 모습이 아닌, 야 이거 재밌겠는데 하고 덤비던 창업하던 시절의 일이나, 학점 X 까라던 대학생 때의 모습이 조금은 되살아 난 것 같았다.


어쩌면 다른 곳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여기서 나눌 수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여기 모인 사람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글쎄, 사실 이 글의 시작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시작한 이유가 여기 있다. 세부적으로 따져서 좋은 건 좋은 거고, 나는 지금은 이 모임이 꽤 좋고, 사랑하는 것 같다. X발 사랑하는데 이유가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해. 그냥 그렇다는 느낌이 있는 거지. 그 증거는, 내가 무리해서라도 이 모임을 위해서 내 시간을 온전히 보내고 있다는 거고. 


하지만 또한 이 글은, 내 회사원들인 지인들에게 회사를 벗어난 활동을 권유하는 글이기에, 몇 마디만 더 붙여 본다. 트레바리 대표님껜 죄송하지만 <트레바리> 가 아니어도 좋다. 지적인 활동을 향유할 수 있는 ‘회사' 외 모임을 하나 만들기를 조금 세게 권유한다. 사실 A 하면 A` 가 나오는 그룹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와 A를 이야기했는데 D에서 ‘가' 나 알파, 오메가쯤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에서 얻을 수 있는 자극은 꽤 다르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갈수록 A-A` 관계 위주의 행동을, 그리고 그것이 사고로 이어지는 사람을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거의 모든 회사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를 원하지만 대체로 저 구조를 벗어나는 조직은 몇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회사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회사에 스스로의 시간을 온전히 보내는 것은, 뭐 그 자체로도 괜찮은 전략일 수 있지만, 포트폴리오는 항상 나눠야 하고, 멈춰있을 때 뒤쳐질 수 있는 사회라는 점 정도는 깨닫고 움직였으면 한다, 내 친구들은. 그래야 성공해서 나 거지되면 더 맛있는 밥을 사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야근+맥주의 조합으로, 예상보다 더 감상적인 글이 되어 스스로 조금 실망이지만, 어차피 지금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글 같다. 여하튼 언제나처럼, 다들 오늘도 내일도 행복하시라. 


초고: 2016.04.26. 

탈고: 2017.08.19.


트레바리 1709 시즌 (아직은) 절찬 모집 중!

http://trevari.co.kr/club_app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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