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쌩날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in Aug 19. 2017

<더 테이블> by 김종관

테이블은 제자리에.

테이블에 꽃잎이 담긴 잔이 올라온다. 사람이 들어왔다. 이야기를 나누고, 떠난다. 테이블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 위에, 어떤 마실 것들이 올라왔는지, 무슨 대화가 있었는지 기억을 할까. 그저 그대로 서서 있다. 


영화 <더 테이블>을 보고 나서, 나는 몹시 외로워졌다. 대화가 고픈 느낌이었다. 왜일까. 영화는 달콤하지만은 않았는데. 나는 이 테이블 위에서 무엇을 마셨을지 고민하며, 전화번호부를 뒤졌던 것 같다. 시간은 10시를 넘어가고, 금요일 밤을 감안하면 부를만한 친구는 없었다. 취해있거나, 취해가고 있겠지 모두들.


어떤 날이 있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날. 어떤 대화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느낌.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기분. 카페에 오래 앉아 글을 쓰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던 때가 있다. 지금도 어느 카페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오늘 밤에도 외로움이 차오르겠거니 하며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공간. 테이블로 나뉜 공간은 관계를 전제로 한다. 대화는 관계이다. 영화는 그러나, 집요하게 한 사람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관계보다는 한 사람이 말하는 것에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평가하기 어렵게, 그저 흘러가는 대로 들려준다. 


영화에서 가장 진솔했을 대화는 결혼 사기를 행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오후 시간의 대화이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 두 잔. 누군가는 설탕을 넣어서, 누군가는 넣지 않은 채로. 거짓말을 맞춰나가는 두 사람의 대화는 진솔하다. 이렇게 해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오래전에 헤어졌던 연인을 찾아온 배우에게는, 어떤 그리움이 있었을까. 고집스럽게 쓴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고 만나고자 했던 옛 추억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 배우의 기대를 배신한 상대방 이상으로 본인의 기대 역시 억지였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배우를 둘러싼 찌라시를 궁금해하는 것도, 과거의 추억이 그대로이길 바라는 것도 욕심일 것이다. 본인이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하룻밤의 추억을 꼭 들추어내야만 했을까. 남자는. 하지만 그 추억이 이어지길 바랬지만 그는 여행길 내에 연락보다는 선물을 사며 그것을 지켜내어 갔다. 남자의 집으로 향하지만, 그 만남이 과연 오래 지속될까. 테이블은 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왜, 수개월간의 아니면 며칠간의 야속함을 이겨내고 카페에 들어와, 테이블과 이웃한 의자에 앉아서 마주 보기 힘든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영화의 시선 처리는 애매하다. 대화는 관계인데, 투 샷을 잡기보다는 인물들의 얼굴로 클로즈업한다. 그런데, 그 각도가 애매하다. 누군가를 정면으로 잡기도 하고, 사선으로 삐뚤게 바라보기도 한다. 누구의 시선인가, 우리의 시선일까? 글쎄, 어쨌든 소리로 대화는 전달된다. 남자는 자신이 변해가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고, 여자는 변해간 자신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자존감을 내비친다. 


이미 끝난 인연에 대해서. 무엇이 그 인연을 끝나게 했는지 영화는 - 대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테이블은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침에 올라온 꽃잎은 떨어져서 테이블에 떨어져 있다. 비가 온 후, 거리에 떨어진 꽃잎은 길바닥을 예쁘게 만들었지만, 테이블에 떨어진 꽃잎은 종이를 뜯어내는 신경질적인 남자의 심경을 대변하기만 한다. 결국, 카페에 불이 꺼지기 전 꽃잎은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영화는 평가를 거부하는 것 같다. 이런 만남, 이런 관계가 있고 그런 대화가 있었음을 보여줄 뿐. 그렇기에 영화의 제목은 <더 테이블> 이어야 한다. 그 위의 대화의 내용의 진위와, 그 관계의 변화에 대해서 영화는 '테이블' 이 고정되어 있는 공간 안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테이블 밖에서도 대화는 - 삶은 지속되지만 그것을 추적하지 않는다. 


테이블 위에 무엇이 올라와있더라도, 테이블은 테이블이다. 저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한다고 하여도, 나는 나이다.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향기는? 테이블은 테이블이지만 테이블이 서 있는 공간 위에 맥주의 홉이, 커피콩이 - 찻잎이 내는 향은 변한다. 오전에서 오후, 저녁시간과 밤까지. 햇살이 테이블을 비추는 곳들은 움직이다가, 이내 고개를 떨굴 것이다. 그러니 테이블은 테이블이다. 꽃잎이 떨어져도 테이블은 기억하겠지, 그대로 서 있으니까. 


삶은 삶일 것이고, 그렇게 여러 테이블 위에서 흐를 것 같다. 그래도, 삶은 그대로 삶이니까.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진행된 시사회 참여 후 작성된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착각하는 CEO> by 유정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