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20세기를 살지 않았다.
*이 리뷰는 영화 <우리의 20세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답니다.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진행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2017.09.27 개봉 예정
감독: 마이크 밀스
주연: 아네트 베닝, 그레타 거윅, 엘르 페닝
누구도 20세기를 살 지 않았다.
영화에는 몇 명의 사람이 나온다. 그 사람들이 움직이는 주된 배경은 도로시의 집이다. 도로시의 집에는 총 4.5명이 살고 있다. 도로시와 제이미 모자. 자궁경부암 수술을 마친 애비. 히피 커뮤니티에 있다, 아내와 헤어진 정비사 윌리엄. 그리고 밤마다 제이미 옆에서 잠을 자는 제니.
도로시의 집은 20세기 초반에 지어져서,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 후반까지 서 있다. 도로시의 생일 파타에서 그 부분이 재미있다며 도로시는 손님에게 말한다. 대공황 시기부터 히피까지 살다 간 집이라며, 그 점이 재밌다고. 집은 그렇게 대공황 시대에 태어난 도로시와, 1960년대에 태어났을 애비와 제니를 품었다.
제이미와 윌리엄은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존재는 영화에서 '상대'로, '거울'으로만 기능할 뿐이다. 윌리엄은 자신과 관계를 맺길 원하는 애비가 원하는 대로 사진사가 되었다가, 도로시가 그리워하던 왼손잡이의 흉내를 낸다.
바보 같은 장난으로 목숨을 잃을 뻔 한 제이미에게, 자신과 다른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여긴 도로시가 선택한 것은 한지붕에 사는 뉴욕의 예술대학 출신의 애비와, 제이미와 친밀해 보이는 - 그리고 제이미가 짝사랑하는 것이 분명한 제니였다. 애비가 페미니즘 도서를 선물하자 제이미는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제니가 엄마 역할을 하며 상담사의 역할을 하자 제이미는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영화 전반적으로 제이미의 성장에 대한 포커스가 갈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지만, 생각보다 그 점이 부각되진 않았다. 적어도 내겐.
도로시
도로시는 노산으로 제이미를 낳았다. 그리고, 남편과는 이혼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녀가 레즈비언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직장 동료가 등장한다. 왜냐면 그녀는 누구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으니까. 집에서 파티를 열고, 호감 가는 남자에게 놀러 오라고 말하지만, 진짜로 원하는 남자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녀는 사랑할 필요가 있어서 사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제이미에게 털어놓는다.
또한, 제이미에게 에비와 제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랬다는 말을 한다. 포도밭에 제이미와 도로시가 서 있는 장면과 대사는 재밌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한 듯 보였고, 혼자서 운전을 하고, 혼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두 사람은 함께 - 그리고 달리 차를 몰로 스케이트 보드를 탄 채로 집으로 돌아갔지만 - 제이미의 내레이션에서는 그 이후 이런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영화의 백미라고 꼽고 싶다. 결국, 대공황과 이후 세대는 교감을 이루지 못했다. 지미 카터의 연설에 대한 반응처럼.
도로시의 내레이션에서, 그녀는 21세기를 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또 한편 죽기 전에 그녀가 본래 원하던 파일럿의 꿈을 부분적으로 이뤄냈음도 보여준다. 매일 같이 체크하던 그녀의 주식들은 - 1999년 혹은 지금까지 있다고 하면 꽤나 큰 가치였을 그 주식들을 제이미에게 분명하게 물려주지 못함도 내레이션과 화면으로 보여준다.
제도사를 하는 도로시는 매우 철두철미한 느낌이다. 나이와 다르게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파티에서 애비의 '생리' 언급을 싫어한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보았지만,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그녀의 20세기에는 그런 것은 없다. 요즘 음악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다가, 예술 병자(Art Fag)이라고 비난받은 아들 취향의 밴드에 대해서는 괜찮다는 평을 내리기도 한다. 어쩌면 페미니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발언한 것도 아들인 제이미가 그 이유로 두드려 맞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는 20세기를 살았다.
애비
애비는 산타 바바라를 떠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는 산타 바바라로 돌아갔다고, 영화 말미에 등장한다. 애비는 제이미에게 떠나라고, 제니에게도 그렇게 말했는데.
자궁경부암의 원인은 수 번 유산을 한 그녀의 어머니가 임신 보조제를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행히 치료에 성공했지만 - 그녀 역시 임신이 어려운 몸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도로시에게 제이미가 그렇게 큰 축복이었냐고 묻는다.
그녀가 그 이전에도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지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건강한 상태의 그녀는 아이를 전혀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사진이 아닌 자신의 소지품의 사진을 찍는 그녀는 주변 환경을 통해서 자아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아이를 갈망한 것은 아닐까?
그녀는 펑크에 대해 말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큰데, 기교가 없다. 그런데 기교가 없다는 부분이 차라리 중요하다. 지금에야 펑크 자체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또 연습을 많이 하겠지만, 어쨌든 처음 펑크의 정신은 그런 것이었다고 배웠었던 기억이 난다. 펑크는 그러니까, 기존의 락 음악계에 대한 반동이다. 그녀도 반동이었을까? 그녀는 그런 말을 하지만 실제로 반동이었던 것 같진 않다.
빨간 머리로 염색을 한다거나. 그녀는 남자를 어떻게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지 잘 알고 있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녀는 왜 바에서 싸웠는지 알 수가 없다. 빨간색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어쨌든 산타 바바라로 돌아갈 것이다.
그녀는 21세기를 살았을까?
제니
노란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면서 담배를 입에 문다. 심리상담사인 어머니 덕분에, 혹은 그 탓에 상처 입은 동년배를 많이 만났다.
많은 이야기가 지나갔다. 좋은 집안에 살던 그녀는 탈선을 시작한다. 많은 남자애들과 섹스를 한다. 하지만 그녀가 아끼고 - 어쩌면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제이미와는 그러지 않는다. 마음과 몸의 교감을 모두 나누면 끝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이미에게 말한다. 50%는 별로였다고, 하지만 50%는 괜찮았다고. 대학 가서 공부를 한 에비보다 어쩌면 더, 그녀는 삶을 빨리 깨우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투로 그려진다. 도로시에게도 쏘아붙이 말이 있는 당당한 아가씨. 제이미보다 2살여 많은 그녀는 애비에게 받은 조언으로, 나와 섹스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 여기 와서 자는 것도 안된다는 제이미에게 둘 만 떠나자고 말한다.
사실 제이미는 이 비슷한 말을 애비에게도 했으나, 애비는 너 제니를 좋아하잖아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제이미는 제니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매일 밤 자기 옆에 누워 자는 여자이기 때문에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차를 훔쳐 도착한 모텔에서도 제니는 잠자리를 거부한다. 제이미는 화를 내고 떠난다.
윌리엄까지 포함하여, 도로시 집에 사는 모두가 그를 찾아 오지만 - 그는 아침 녘에는 다시 돌아와 있다. 제니 옆에서 그는 반항아처럼 굴었지만, 반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물과 같다. 풀어놓은 색깔에 따라서 - 애비의 빨간색이건, 제니의 노란색이건 물들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물감을 풀어놓지 않는 무채색으로 보이는 도로시에게 화를 낸 것은 아닐까? 도로시는 합리적으로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남편에 대해 말한 것처럼 아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몰래 멀리 떠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잠 못 이루고, 고양이에게 혼잣말을 하는 모습도 그런 것은 아닐까.
제니에겐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일이다. 도로시가 모더니티이면, 제니는 포스트모더니티이다. 애비가 반동을 시도했다면, 제니는 그저 해체할 뿐이다. 10년도 채 안 되는 나이차이지만 제니와 애비도 다르다. 한 잠자리에서, 남자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임신의 가능성이 생긴 그녀에게, 제이미는 임신 테스트 기를 가져와준다. 그녀는 임신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을 했다고 그녀가 달라졌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녀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20세기를 살았다. 적어도 2000년 12월 31일까지 태어난 사람도, 하루는 살았으니까. 하지만 누구도 20세기를 살진 못했다. 1901년부터 2000년 12월 31일을 넘긴 사람도, 20세기를 살지 않았다. 재즈와 포크를 거쳐 초창기 락으로, 펑크와 메탈, 얼터너티브, 팝이나 블루스. 모두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만 모두의 팬일 수는 없다.
어쨌든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세대인 제니와 제이미도 이해를 못했고, 제이미와 그의 동급생도 음학적 견해차를 두고 말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어느 한 때에는 모두가 포도밭에 서 있을 수도 있겠다. 생에 단 한번 - 단 한 명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의 진심에 대해서 반항하거나, 반동하거나 해체하려 들지 않고 - 혹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누구도 20세기를 살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