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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Sep 17. 2017

<지능의 탄생> by 이대열

문제, 선택, 목적, 소망.



저자는 지능이란, 다양한 환경에서의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다. 복잡한은 수식어이니 차치하자. 의사결정의 문제. 결국 선택의 문제이다. 지능이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일까? 대체로 생존을 위한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지능이 활용되어 온 경로를 묘사한 책의 의견을 따르자면 답은 예스에 가깝다. 




그렇다면 선택에 집중해 보자. 선택은 곧 가치판단이다. 내가 헤드폰을 산다고 했을 때에, 단순히 가격만을 가지고 선택을 하진 않는다. 우선, 오버이어, 온이어 등 헤드폰의 형태와 내가 음악을 듣는 방식, 듣는 맥락을 비교하여 가장 적절한 것을 고르게 된다. 가격은 물론 내 가용 자산에 대비하여, 지금의 소비가 과연 '스뚜삣' 인지 '그뤠잇'인지 가치판단을 하기도 한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 색깔, 모양은 헤드폰 구매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다. 블루투스 지원 유무. 지원 블루투스 버전. APT-X는 있는지. 이런 것들은 내 머릿속에 쌓여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이 정보들은 결국 선택 대상의 '효용 값'을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계산한다. 더 현명한 선택을 위해 엑셀을 켜고 각 구매 결정 요소 별로 점수를 매겨서 비교를 할 수도 있겠지만 - 나는 그런 행위에는 가치를 두지 않으니 그냥 각 정보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할인 이벤트를 할 때, 잘 모르는 브랜드의 것을 4~6만 원 수준으로 구매했다. 이처럼 선택에 필요한 것은 정보이다. 효용 값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둘러싼 정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아이폰 7에 들어간 33억 개의 트랜지스터에 비해 인간의 뇌에는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이 3 만대쯤 많다고 저자는 써두었다. 그렇다면 아이폰 X의 경우에는 30% 정도의 계산능력 향상이 있었다고 가정하고, 2만 3천 배의 차이가 지금에 난다고 보면, 나는 아이폰 X 의 출고가 기준 120만 원 X 2만 3천 배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내 뇌에는. 대충 324억 수준인 것 같다. 의미 없다. 단순히 0/1 의 구분을 통해 계산을 할 수 있는 수치츨 가지고 비교하지는 않는다. 모바일 디바이스의 심장인 AP 직접회로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가 있냐가 핵심이 아니다. 매우 중요한 지점일 수는 있지만 삼성 폰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가 들어간다고 한들 애플 마니아들이 삼성 폰을 선택을 할 리는 없다. 


그러니까, 문제는 우리의 효용 함수에 들어가는 것들이 너무 복잡하단 부분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접어들어서 경제학은 - 자본주의는 '돈' '화폐'라는 환산하기 쉬운 기준의 위상을 높이는 데 성공하였지만, 여전히 한계는 이렇듯 분명 존재한다. 다시, 내가 산 헤드폰을 선택한 이유는 기존에 쌓인 여러 지식을 종합한 무의식의 연산과정이 있었지만 어떤 설문에서 답한다면 수초를 고민하고는 '그냥'이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분에서 수시간을 고민할 수 있다면, 아마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답에는 대체로 '나'에 대한 설명이 들어갈 것이다. '나'는 무채색 옷을 입다 보니 하얀색이 어울릴 것 같았고, 온이어 헤드폰은 있으니까 오버이어를 골랐으며, 음질에 있어서는 그렇게 민감하지 않으니 무슨 드라이버를 썼는지, 어떤 출력인지를 고려하지는 않았으며, 와이어리스에 대한 선호가 있다는 정보도. 


다시 - '헤드폰'을 산다는 것은 '나'의 '문제' 이기에 내가 나의 '지능'을 사용하여 '선택' 한다. 저자는 여기서 '나' 가 없다고, 그렇기에 강한 인공지능의 등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근시일 이내에는 말이다. 지능은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을 하는데, '욕망'이라는 것은 '나'를 인지하고 '세상'과 '나'를 구분지어서 사고할 수 있어야 하는 행위이다. 영화 <아이로봇>의 메인 빌런인 인공지능의 '목적' 도 결국은 사람이 집어넣은 목적이다. 그러니 <터미네이터> 수준으로 가거나, <오버 워치>와 같은 세상으로 가기에는 우리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 같다. 왜냐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만드는 것에 지난 세기 혹은 인류가 이 땅에 서온 내내 재주를 보이긴 했지만 - 자기 복제를 제외하고 욕망하는 -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소망하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것과 유사한 어떤 발전도, 기록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도 소망을 그만두기도 하는걸 뭘.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뇌'는 '유전자'의 '대리인'이다. 때문에 경제학의 '대리인 이론'을 사용하여 진화 과정 속에서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는다. 세부적인 대리인 이론은 기억이 안나니 때려치우고, 대리인 이론의 핵심적인 부분을 생각해보자. '뇌'와 '유전자'의 목적은 동일한가?


물론 '유전자'에 의식이 있어서 '선택'을 한다라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 하지만, 어쨌든 리처드 도킨스 아저씨의 표현대로 자기복제를 최우선 순위 - 혹은 유일한 가치로 본다고 보면 - '뇌'는 자신의 '유전자' 에게 반하는 행동을 종종하기도 한다. 어쨌든 근연도(자신과 유전자적으로 가까운 정도) 가 높은 동족을 살리기 위한 행동이라지만 - 자기희생이라는 개념은 '뇌'의 배신이라고 할 만큼 극적인 지능의 선택이다.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복제 가능성을 폐기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충분히 많이 보게 된다. 사회-집단의 심리 - 도덕률이 집단의 상상이며 또 하나의 복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핸 '대리인'이라고 가정한다고 하면 전자의 '집단'을 위한 '희생'은 의미를 가지지만, 자기 절망에 의한 자살의 경우에는 그러한 변명 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뇌는 - 아마도 우리 지능의 높은 부분을 차지한 이 녀석은 '자기복제' 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신경세포에 분비되는 어떤 쾌락 물질 등에게 지배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런 물질은 언제 분비되는가? 게임을 할 때? 섹스를 할 때? 어떤 미치광이에게는 살인을 할 때도 있겠다. 어쨌든 유전자에 남긴 정보가 모든 상황적인 정보를 복제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진 않는다. 상황적인 정보는 뇌, 혹은 사회에 '위임' 된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뇌라는 대리인을 통제하기 위해서 유전 정보 상에는 아마도 다양한 보상 - 처벌 체계가 있을 것이다. 여러 진화 과정을 통해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짜여 있을 이 보상체계는 판단 영역의 대부분을 '뇌'에 위임했을 것이니까 보다 '본능' 적이라고 유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마약으로 인한 쾌락의 영역이나, 자기 성취를 통한 쾌락의 영역이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게 뇌에 작용할 것이란 생각이 들진 않는다. 결과론적으로 다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말이다. 



인간이 사회적인 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인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유전자는 살인을 금지하라거나, 도둑질을 하면 안 된다는 정보를 전달하지는 못한다.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공동체의 기억이며, 도덕이라는 이름이나 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복제되어 왔다. 


이에 따라서 유전자에 남겨진 정보는 사회적인 지능이 일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몸을 복제해왔으며 (다만 여기에 무슨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라, 그러한 사람이 더 잘 살아남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뇌는 사회적인 정보를 처리할 수 있었고 그 기준을 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학습해왔다. 


우리가 메타인지 - 메타 선택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판단의 기준을 사람은 사회에게 일부 위임했으니까. 도덕률이라는 것이 '명문화' 되어 나타난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판단을 많은 부분을 '사회'에게 그러니까 '타인'에게 위임해 왔다. 소위 지식인들은 이걸 밥벌이로 삼아 스스로를 복제해왔다. 그 복제의 방식은 여러 형태가 있다. 일단 교육기관의 문턱을 높인다거나, 라이선스를 만든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문제는 당연히 여기서도 대리인 문제는 발생하고, 우리 사회 전체 - 그리고 개인을 위해 그들의 선택이 가장 올바른 것이라는 확신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우리의 유전자가 그러했듯, 우리는 그들을 보상과 처벌을 통해 제어한다. 


그러나 그 조차도 이제는 한계에 부딪힌 것처럼 보인다. 지식인은 존재하지만, 그들의 선택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통신 기술의 발전은 -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서 개인이 현재의 인터페이스를 통해서는 단번에 처리할 수 없는 량의 정보를 순식간에 전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시간과 노력을 충분히 들이는 사람들은 '지식인' 이 되거나, 그 정도는 되지 않더라도 '지식인'에 의문을 제기할 수준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정보를 취하기 시작했다. 대리인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


그 의심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대리인은 그 분야에서 원청보다 더 나은 능력이 있기에 그 행동을 위임받은 것이니까. 물론 거기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감시를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 그 신뢰관계의 붕괴가 의심하는 개인에 온전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 신뢰가 무너진 위임 관계 속에서 사회가 제대로 동작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아마 우리 '몸'의 진화보다는 우리 대리인 - 사회 - 의 진화가 더 빠르다. 아마도, 인공지능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일을 위임받아 행할 것이고 그들의 진화는 또 우리보다는 더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그들이 '사회' '사상' '도덕' 이 그러했듯 스스로를 복제하며 살아가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의 말처럼 그들이 스스로를 복제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와는 별개로 아무래도 우리는 우리의 신뢰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위를 세우는 것은 이제 통하지 않을 성싶다. 정보의 우위로 권력관계를 세우기에는 정보가 꽤나 평등한 사회가 되었으니까. 결국은 '권위자' 가 아닌 '타인'을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죄인의 딜레마 상황에 여러 맥락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것을 참고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떤 지식을 - 사상을 복제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은 일회성이 아니며, 우리는 계속해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할 것이다.


또한 그리고 - 우리의 '목적'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제라는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소망' 한다는 것이다. 그 '소망' 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론 소킨은 <뉴스룸> 시즌 1 파일럿 에피소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은 다시 말해 지금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 나는 더 나은 상황을 원한다는 '소망' 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 사회가 지금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현실 인식과 함께 사회는 이래야 한다는 열망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능은 문제 해결을 하는 능력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능력을 쓰기 위해서는 '효용 값'을 계산해야 한다. 왜냐면 문제 해결은 대체로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효용 값의 범위를 '나'로 두어야 할지 '가족'으로 '사회'로 두어야 할 지도 또 하나의 선택이다. 기준점에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정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떤 정보가 나에게 있느냐에 따라서 내 선택은 달라진다. 만약 내게 '알리익스프레스'라는 선택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 혹은 대다수의 중국 기업의 물건들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브랜드의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들의 제조 역량을 흡수했다는 정보가 없었다면 나는 조금 더 비싼 - 광고를 통해 알게 되는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욕망하고, 소망해야 한다. 내게 결여된 것을 구매한 것처럼. 사회 차원에 있어서도 사회에 결여된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 나와 사회에 대해서, 지금 어떤 상태인지 인지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상상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모로 지능이란 평생 학습을 해야 하는 녀석인 모양이다. 그래서 인생이란 원래 피곤한 것이구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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