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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Sep 17. 2017

<어 퍼펙트 데이> by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 이 리뷰는 영화 <어 퍼펙트 데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 이 리뷰는 엄청나게 주관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7-c66mbzXA

오피셜 트레일러




의미부여


시사회로 본 것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장면 장면의 의미를 찾으려 애썼다. 뭐라도 써야 할 것 아냐? 하지만 사실 그러지 않았다면 영화를 훨씬 더 '의미 있게'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영화를 보며 내 뇌리에 남은 요소들은, '우물과 밧줄' '지프차와 길' '소와 할머니' 같은 것들이다. 기왕, 의미부여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일단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순식간에 떠오른 것들이다. 


우물과 밧줄


영화의 시작은 우물 속의 맘브루(베네치오 델 토로 분)로 부터이다. 그는, 국경 없는 원조회의 현장 '안전담당자'로, 인근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우물 중, 유일하게 지뢰 지대를 피해 있는 우물에 던져진 시체를 건지러 들어간다. 물에 관련한 전문가로 참여한 소피는 24시간 내로 꺼내지 않으면 이 우물을 당분간 쓰게 되지 못하리라 말한다. 24시간, 하루.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멋지게 이야기하려면 우리 몸의 몇 퍼센트가 물이다, 물을 3일 못 마시면 죽는다, 생명은 원래 물에서 기원한다 따위의 말을 예쁘게 해봐야 하겠지만 - 그런 건 별로 상관없어 보인다. 위험한 상황이지만 영화는 그다지 주목해 주지만은 않는다. 맘브루의 동료들만 걱정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닐 뿐이다. 우물은 중요한 건데, 맘브루 일행을 도와주는 것은 별로 없다. 영화 말미에는 다른 곳에서 물을 가져와 폭리를 취하며 파는 일당이 등장한다. 맘브루 일행은 그들이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이후 그들에게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우물 속의 시체는 매우 무겁다. 일단 살찐 체형의 사내이며, 물에 들어가 불었으니 그 형체가 기괴한 것만큼이나 무겁다. 처음 맘브루가 시체를 꺼내려고 했던 시도는 밧줄이 끊어지며 실패한다. 준비 부족? 아니 국경 없는 원조회 물품이 낡고, 공급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맘브루의 동료 'B'의 차량에도 밧줄은 없다. 


어떤 '보급창고'에 밧줄은 있었다.  하지만 그 밧줄은 사용할 수가 없다. 국기를 게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기를 내리면 그 창고지기는 죽을 거이라고 말한다. 물론, 우물물이 못쓰게 되면 마찬가지로 위험해지겠지만, 당장은 국기를 내릴 생각을 할 수 없다. 마을의 가게에는 밧줄이 있으나, 팔지 않는다. 종교적인 이유 - 도덕률 같은 것을 들먹인다. 글쎄, 그저 그 우물이 경쟁 국가, 단체의 지역에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팔지 않았다.


다음으로 찾은 밧줄은 맘브루가 자동차로 칠 뻔한 꼬마 '니콜라이'의 집에 묶여있는 개의 목줄이다. 하지만 개는 사납다. 개에게 마취제를 써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그러다 찾아낸 밧줄은 니콜라이의 집에서 발견한 시체 - 그/녀 가 목메단 줄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끝장내버린 이 줄이 이제 생명수를 되살릴 줄이 된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UN군이 등장해, 맘브루가 시체에 묶은 그 줄을 끊어 버린다. 정전 협정, 평화 협정 이후에 이런 분쟁 행위는 지역의 판사가 등장해야 한다나 뭐라나. 사람을 살리기 위한 제도가 사람을 옭아멘다.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맘브루는 거기에 저항하진 못했다. 다른 곳에 분풀이를 할 뿐. 


그러나 24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는 시점, 장대비가 내린다. 비는 내리고, 우물은 차오른다. 시체가 떠오르고, 마을 사람들은 시체 몸에 묶인 밧줄을 당겨 꺼낸다. 그렇게 영화는 막을 내린다. 


지프차와 길


이 영화는 로드 무비 같다. 사실 난 로드무비가 뭔지 모른다. 근데, 이 영화는 맘브루 일행이 타는 2대의 지프차와 길이 그 배경이다. 그러니 로드 무비가 맞는 것 같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물이 있는 마을에서 출발해서 밧줄을 구하러, 안전 브리핑에 참여하러, 또는 돌아가기 위해서 길을 달린다. B는 UN군의 행렬을 지나친다. 그들의 차량에는 'Do not tresspass'라고 적혀 있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B는 저런 큰 행렬이 있다면 표적이 되기 쉽다고 강변한다. 통역사는 질린다는 듯 쳐다본다. 


B는 지뢰가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는 소를 보고, 고민을 하다가 그냥 소를 밟은 채로 지나친다. 나중에 맘브루는 그 일로 화가 난 소피에게 사실 지뢰가 없단 것을 알게 되어서 그냥 넘은 것이라며 말한다. 차는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풀리는 것은 없고 갈수록 힘들어지기만 하는데 자주 서게 된다. 


맘브루의 차는 축구공을 가지고 다투는 니콜라와 그 보다 더 큰 소년들을 마주치고 서기도 했다. 한 번은 지역의 군인들이 포로로 보이는 사람들을 억류하는 과정을 보며 멈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공은. 소년들의 차지가 된다. 왜냐면 그 소년들은 총을 가지고 있었거든. 포로를 구한다거나, 그 길을 통과해서 차는 달리지 못한다. 지역의 군인들은 완강하다. 


그러나 달린다. 한 밤에 또다시 지뢰가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소의 시체를 만났을 때에는 멈추었지만. 새벽에 소를 따라 걷는 할머니를 만나자, 그를 따라 다시 달린다. 차가 달리는 동안에는 음악이 들린다. 익숙한 노래들.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다. 하지만 다시 -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어쨌든, 24시간 동안에, 바로 그 완벽한 하루 동안에는 말이다. 


소와 할머니


앞서 말한 것처럼. 소의 시체로 지뢰 함정을 만드는 것이 지역의 특색인 것 같다. 아까운 소고기를 낭비하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함정인데, 일단 적어도 맘브루와 B는 이게 함정일 가능성이 있음을 바로 알아본다는 점이다. 민간인 전문가가 알아볼 정도라면 살상용으로는 의미 있는 함정은 아니리라. 그게 아니라면 길을 막는 의미가 있을 것인데, 왜일까. 그 길을 막는 것은 누구일까 고민하게 된다. 이제 평화 협정이 진행 중이라는데 왜?


길을 막는 것은 소와 지뢰만 있는 것은 아니다. UN 군도 여러모로 길을 막는다. Do not trespass 도 어쨌든 길막이랑 다를 게 없기도 하고. 지역의 군인들도 길을 막는다. 어쨌든 달려가기만 하기에는 막는 것들이 너무 많다, 맘브루 일행에게. 신기하게도 크게 조급해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해 달리는 것이 인상 깊다. 


지뢰밭 때문에 막힌 길. 그곳을 둘러 지나가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소를 앞세워 걷는다. 지나치면 안 된다는 UN군의 말을 무시하며 소리친다. '집에 가야 한다고'. 길은 집으로 향해 있다. 돌아가는 길, 바로 가는 길 어쨌든 모든 길은 '집'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모두 여행을 하고 있고, 여행의 종착지는 언제나 그렇듯 집이다. 


맘브루는 고향에 있는 연인과 통화를 한다. 고향의 연인은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일로 긴급 연락을 해온다. 집을 꾸미는 일이다. 아니 이게 안중요한 일일까? 모를 일이다. 맘브루와 내연관계였을 카티야도 비슷한 일을 하였다는 식으로 말한다. 카티야는 맘브루 일행을 귀환시키기 위한 조사를 하러 나왔다고 말한다. B는 그럴 수 없다며 말한다. 여기 사람은 누가 도와줄 것이냐며. 그게 그의 진심일까, 아니면 그에게는 그저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일까. 소피와의 대화에서 맘브루가 귀환을 꿈꿨다는 점은 보인다. 


어쨌든 '우물과 밧줄'에 나온 할머니는. 바로 이 소를 앞세워 걷는 할머니인 것처럼 보인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없다. 먼 길을 돌아간 것인지, 아니면 매일 돌아다니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우물로 돌아오고, 비가 오고, 우물에 물이 차오르고 그걸 본 할머니가 소리쳐서 사람들이 나와서 시체를 꺼낼 수 있었다.


완벽한 하루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맘브루 일행은 그들을 괴롭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니콜라는 길을 떠나기 전까지, 도착하기 전까지 그의 부모님에게 변고가 닥쳤음을 알진 못할 것이다. 맘브루가 그에게 건네준 100불과 여태 모아 온 돈으로 길을 나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하루는 없다. 왜냐면 모든 하루가 완벽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떤 날이 더 좋고, 아니고를 선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길을 선택할 순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모두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저, 살아가는 것. 길을 달려서. 문제를 해결하려고자 하는 행동 모두가 모여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낸다. 그저, 그렇게 완벽한 하루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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