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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Nov 18. 2017

<기생수>
by 이와아키 히토시

우리는 어떻게 되어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유전자 편집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다. 크리스퍼 뭐시기. 공부가 부족해 잘은 모르지만 막, 형광 토끼 같은 게 나온다. 무서운 세상이다. 하지만 인류의 '진화'를 '인류' 가 디자인할 정도까지는 택도 없으며, 아마 도달 불가능할 수도 있단 말도 있다. 하지만 인류라는 '생명'의 유전적 진화가 아니더라도 공동의 상상 체계 - 사회 - 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단 것은 사실이며, 과거와 다르게 우리는 그 방향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설정하고 있기는 하다. 자연스럽게 농노-영주가 되어 간 것에 대비 헤서 지금은 가능한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노예'를 해방하고 '여성 참정권'을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응, 우리는 진화하고 있으며, 그 방향을 우리가 설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영도는 판타지 문학작품에서 '비인간' 이 등장할 때에는 '인간'과 대화를 시도한다고 말한다. 또한, 인간을 비추는 거울로는 기능하기 힘들지만, 오목거울, 볼록거울처럼 비틀어 반사하는 존재로 기능한다고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도구적'으로 소비되거나, '인간'이지만 외형만 그럴듯하게 비튼 존재로의 '비인간' 이 아닌 그 자체로의 '비인간' 적 존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기생수'들은 그런 '비인간'으로 기능하고 있을까. 어쨌든 '오른손이'와 기타 '기생수'들의 사고방식은 인간과 다르다. 어떤 '사람' 에게서는 기생수들의 사고와 유사한 형태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우리는 기생수의 외형뿐만이 아니라 '내면'을 바라보면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나와 유사한 듯 하지만 '다르다'.


 한편으로 세상에 떨어진 '기생수' 들은 빠르게 자아를 형성하거나, 몸의 일부를 변형하여 전혀 새로운 운동기관으로 활동하는 등, 인간에 비해서 '생존'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기생수> (이하 책)의 첫 장면에서 말한 그대로, 갑자기 발생하여 떨어진 채로 이기에 '사회' 적인 배경은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의 것을 배워서, 모방한다. '기생수' 사이에서의 일들은 매우 인간적이지 않지만 - 인간의 것을 모방한 형태로 그려진다. '기생수'는 '비인간' 으로의 사회를 구축하기도 전에 '인간 사회'를 마주하게 되었고, 인간사회는 '질병'처럼 '기생수'를 대한다. '기생수' 자체도 지구를 위한 '백혈구'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기에, 특별하게 부당하단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 그렇게 스스로의 '사회' '개성'을 구축해나가는 '기생수'와 '인간'의 접점 - 교차점이 발생하여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주인공 신이치와, 신이치와 대척점에 있던 기생수 집단에서 인간의 교미-임신-출산을 테스트하던 개체의 경우가 그렇다. 기생수는 전술한 '비인간'으로 예술 작품에 기능하기에는 힘든 지점이 - 매우 변화/진화가 빠르고, 자유로운 존재라는 점이 있다. 개체로의 특이함이 크기에, 전체로의 특성을 규정짓기 어렵달까. 게다가, '존재' 자체가 이제 시작했기에 스스로도 스스로를 정의 내릴 수 없는 지적 생명체이다. 다만 신체적-물리적으로는 '인간' 에게 대항할 수단을 지녔지만 - 과격하게 비틀어 이야기하면 이념적으로 인간 사회에 대항할 만한 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들의 논리는 인간의 자기 보호 논리 속의 비논리를 비틀어 내는 형태인 경우가 많다. 살인을 하는 자신들을 비난하는 '신이치'를 본 '오른손이'는 - '우리는 사람만 먹는다, 인간은 인간 외 모든 것을 먹지 않는가'라는 논리로 격파한다. 그러나 이것은 개체들, 혹은 '기생수'라는 종이 만들어낸 생존 논리라기보다는 인류의 비논리에 대한 대응논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대척점에 서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저자가 책의 처음 쓴 - 상술한 - 인류를 줄여야 한다라는 식의 서술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 교집합을 형성해낸 제3의 종들은 다르다. 오른손이는 '신이치'와 부정교합 (뇌가 아닌 손에 기생) 하는 바람에 사람의 따라 하는 형태로 (다른 기생수는 숙주를 먹어치워서, 숙주의 행세를 해야만 한다) 살아가지 않고 자기 독자적인 개체로 성장해야 했으며, 신이치는 자신의 심정지를 치유하기 위한 오른손이 의 기생 범위 확장으로 기생수에게 뇌를 먹혀 '인간' 적인 부분을 상실하지 않은 채로, '기생수'의 신체적 특성을 받아들인다. 단순히 '형광 토끼'처럼, 유전형질의 변화가 외형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사고' 자체가 '기생수'처럼 변해간다. 그러나 이 사고는 '기생수'라는 집단의 것이라기보다는, 책과 미디어를 통해 학습한 '오른손이'의 인간사회의 논리와 - 인간이 아니기에 유사한 유전적 형질을 보유한 개체에 대해 가지는 '공감' 능력의 상실이 결합한 것이다. 이 결과물은 '신이치'를 혼란스럽게 하고, 인간 사회에 섞이기 어렵게 만들다가 이내 - 종장에 이르러서는 두 개체의 집단, 인류와 기생수의 공생에 대해서 기존의 고등학생 수준의 '인간 최고' 사고를 벗어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반대로 오른손이 의 경우에는 자아를 지닌 존재 '신이치'와 공생해야 하는 물리적인 제약을 통해서 종의 기원인 '인류를 먹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며, 따라서 - 창조주 (저자)의 제 1 명령 - 사람을 죽여라는 기존의 자신을 '설계'한 '원리'를 혁파하여 공생을 위한 개체로 진화한다. 상술한 인간의 '임신 메커니즘'을 실험하던 개체는 인간의 몸으로 인류의 재생산 방식의 체험 과정을 통해서 유사한 형태로 변화를 해나간다. '함께 살 방법은 없을까?'


 인류는 어쨌든 일반적인 - 대중적인 시선으로는 지구 생태계의 정점이 이르렀으며, 타 종들을 착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고, 사람은 늑대까지 사냥한다.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하고, 우리가 더 즐거울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완벽한 설계도는 없으며, 우리는 과거로 인해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만큼이나, 우리의 목표를 향해 쏟아져 나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룩한 '영광스러운' 인간의 길을 거부하고, '공존'으로 가는 것은 개인의 도덕적 우월감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생존에 있어서는 불리한 형태이다. 그럼에도 공장제 축산업을 인류가 개발해낸 논리로 '비난'하고 있다. 가치 판다는 별개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 하고 싶은 방향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과학을, 사회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그 변화는 모두의 것이어야 하기에 매우 느리고, 번거롭고 힘들겠지만.


 현실 세계에는 기생수도, 오른손 이도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와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 쉬는 존재들을 가지는 존재이다. 그들이 '비인간'으로 기능하여 우리와 대화하고, 우리가 세계와 더 긴밀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순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살아 있을 동안 - 혹은 인류가 생존하는 한 '비인간'으로 인류와 대등해질 수 있는 '종' 은 보이지 않는다. <혹성탈출>의 경우에도 지극히 '인간적인' 주인공 '시저' 가 나올 뿐. 때문에 두 종족은 싸우게 될 것이고, 서로의 상호공존, 호혜 공영을 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자기 종족의 결합을 위한 외부의 적으로 서로를 계속 겨냥할 뿐이겠지.


  그래서 우리는  <기생수> 같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오른손이 가 기생수 안에서의 '아웃라이어' 였던 것처럼, 누군가는 우리가 공유하는 일반적인 가치체계를 뛰어넘는 생각을 하고 - 누군가는 그것을 이어받아 정리하고 사상으로 만들어내며 누군가는 그것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렇다면 일반인으로 나는 내 특권을 사용하여 그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여, 타당성을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읽어 보아야겠다, 기생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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