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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May 27. 2018

<인플레이션> 독후감:
허리가 중요하다

by 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만

<인플레이션>을 읽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찾아보게 되었다. 석유 매장량 1위 국가의 몰락에 가까운 경제상황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저자들의 주장처럼, 인플레이션은 위험하고 마약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양적양화를 통한 경기부양책이 일반인들에게 어떤 효과를 주는지 역사적인 논거들을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는 책이었다.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는 나도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딱히 장기적인 미래를 고민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막연한 두려움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베네수엘라 상황처럼, 개인이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은 어쩌면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이니까. 수많은 경제주체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만들어내는 거시경제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사람이 다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순이니까. 모두가 이겨낼 수 있다면, 모르겠으나 개인이 흐름에 역행하는 - 주식에서 말하는 시장을 이겨내는 승리를 거뒀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 차원의 일일 뿐이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의 돈의 미래 부분이 조금 더 가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고 있었고, '비트코인'에서 시작된 작금의 흐름은 큰 변동성을 가진 이야깃거리이기에, 책에서 다루긴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책에서 '분산화'를 한다고 한들,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진 않다는 정도의 느낌은 받았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동의하게 되었다. 




돈은 숫자이다. 숫자는 권력이다. 왜냐면 숫자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척도는 무엇인가를 측정하는 기준이다. 측정은 결괏값에 대해 가치중립적인 데이터를 내뱉는 행위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값은 결국 비교대상이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들이고, 따라서 비교 속에서 격차가 발생하는 순간 모든 것은 권력으로 치환하여 생각할 수 있는 대상들이 된다. 


물론 숫자가, 기준점이 없다고 해서 처음 보는 두 사람이 키가 작다, 크다 구분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비교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고, 또 하나는 숫자가 생기면서 '숫자' 자체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력' 이 여기 저이에 부여된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키가 170cm 이면 작은가 큰가? 가치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기준점이 사회에 내린 닻은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은가. 이상은 xsfm 의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256b. 팟캐문학관:코에이 삼국지(2/2) – 수치를 정하는 권력 /이경혁을 들으며 생각한 것들이다. 


다시, 때문에 돈은 애초에 권력의 도구이다. 가치에 모두가 공감한다고 착각을 하게 만들 수 있는 척도를 부여함으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그런데,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개인이 너무도 크게 착취를 당한다. 책 <인플레이션>에서는 초인플레이션 상황들이 아니더라도 경제정책에서 파생되는 인플레이션이 개인의 노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치를 어떻게 무가치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지점들이 많이 있었다. 

 



어찌해야 하나, 라는 생각과 함께 최근의 나를 둘러싼 상황이 떠오르며 군 생활 시절 한 간부가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그때에 내가 딱 일병인지 상병인지 소대에서 '허리'의 위치에 있을 때였던 것 같다. "허리가 중요해" 간부가 말했다. 그래야 소대 분위기도 그렇고, 일도 잘할 수 있고 운운. 그때는 뭐 그렇지, 일을 제일 많이 할 때니까 하는 수준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허리. 몸에서도 안중요한 부분이 뭐 얼마나 있겠냐면, 대체로 '허리가 중요하지'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해부학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허리가 지탱하기에 직립보행도 하고, 손도 쓸 수 있고 걸을 수도 있고 참 중요한 부분이긴 하다. 많은 운동에서도 힘을 싣기 위해서는 손발, 다리만 쓰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허리를 쓰라고. 허리는 연결점이고, 지탱점이다. 


조직에서도 그래서 '허리' 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결점. '배달의 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 형제들' 이 내건 업무수칙 같은 10개 조에서 당신은 업무의 시작이나 끝이 아니라 '중간'에 있단 것을 명심하라는 말이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중간에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소통이 원활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조직에서는. 기획자로 개발과 사업 사이에서 소통의 역할을 담당할 때도 그랬고, 사업 부문에서도 마찬가지. 신입사원 딱지를 떼고 나서는 팀장님과 새로이 들어온 신입사원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으니까. '허리'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군 생활 때 내게 이 말을 해준 간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었을까 싶다. '허리'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버텨' 야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허리는 몸에서도 '버텨' 주는 일을 많이 한다. 팔/다리가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하는 것은 허리가 버텨주기 때문이니까.


조직에서도, 허리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버텨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중간자에 있기 때문에. 일종의 게이트키퍼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위에서 발생하는 불만들, 아래에서 생겨나는 불평들을 적절히 걸러내야만 한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니까, 생길 수 있는 불평들을 감내하게 되는 것이 허리가 아닐까.


때문에 한편으로는 100% 수평적인 조직이 아니라면 허리는 변화의 중추가 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생기게 된다. 아래에서 느꼈던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이 조직 내에서 내 위치가 변하게 되면 더 이상 '내 문제' 가 아니게 되는 지점이 생긴다. 그 문제들에 대해서 외면할 수 있고, 예전에 받았던 것들을 그대로 내려보낼 수도 있다. 그것은 '허리'의 선택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계약관계에서 갑 을 병  이 있을 때에, 갑의 요구사항을 '을' 이 해결해내지 못하면 '병'까지도 힘들어지는 부분이 생기는 것처럼. 그래서 허리가 튼튼하면 - 허리가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역량이 뛰어나면 - 조직이 튼튼해지는 것은 물론, 변화의 실마리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뜬금없는 이야기를 갑자기 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난 위의 내용들이 책의 '인플레이션' 언급 내용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나의 포트폴리오만 잘 세우면 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최규석 화백의 <송곳>의 대사.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 기생수 속의 오른손이 의 대사 '결국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점에 가깝지' 등. 연대와 화합은 좋은 말이지만, 같은 깃발을 세워서 대항할 수 있진 않다. 상황이 다르니까. 절대악과 같은 안타고니스트를 만들거나 - 그게 안된다면 서로를 감내하면서 버텨내야 한다. 그것이 허리의 역할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허리는 무엇인가. 중산층이라고 하면 너무 쉬운 답변일까. 세대적으로는 또 중년층이 될 수 있겠다.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두 집단이 사회의 허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 또한 할 수 있느냐가 사회의 건강함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편이다. 


다시 - 인플레이션의 발생 요인은 거시적인 경제적인 불균형 상태 등을 해소하기 위해 화폐를 추가로 찍어내는 정치적인 행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빠르게 좋은 처방이니까. 이에 추가로 상위층의 돈을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 그 조차도 힘에 부칠 때가 많다. 화폐를 많이 안 찍고 사회에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예산이 더 필요하다. 상위층의 재산을 몰수하는 수준의 세율을 적요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사회 합의가 더 필요하겠지. 그러나 그것 만으로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단발성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시간은 흐르고, 다음 회계연도도 다가오니까.


결국은 돈을 낼 수 있는 다수가 돈을 내야 하는 구조가 된다. 모두가 내 파이를 내놓을 수 있을 때에 - 그리고 그 다수가 결국은 중간 계층일 확률이 높다. 우리도 내놓으니 상류층에게 내놓아라 이것들아 라고 외치는 것들도 그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나이브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었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중산층에서, 기꺼이 세율 인상에 찬성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는 조금이 아니라 더 많이 고민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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