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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Jun 04. 2018

<호밀밭의 파수꾼> by J.D 샐린저

찌질함에 관하여


찌질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찌질할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짧은 팔로 멀리 떨어진 것을, 다리도 움직이지 않고 잡으려 하다 실패하곤 성질을 냈었다. 말이 앞서는 경우, 생각만 많은 경우에도 그랬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해야 한다는 생각만 앞섰던 적이 많다. 철이 든 시점 이후로는 항상 그래 왔다. 이런 자세는 대체로 상대방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지 않으려면, 한 가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찌질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어설픈 감수성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싶어 하고, 그러지 못한다고 좌절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생각과 기운을 남들에게 무작정 투사하게 된다면, 그건 일종의 폭력이겠지. 그러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찌질하면서도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사람의 일기를 본다면 답답하고 짜증 나겠지만.


 홀든은 찌질한 사람인가. 그렇다. 왜 그런가? 말과 생각만 앞서고 행동으로 이뤄내는 것이 거의 없으니까. 앞보다는 뒤를 보는 때가 많으니까. 혹은 용기가 없으니까. 홀든만큼이나 내 인생의 찌질함의 대명사로 잡은 아카리 신지(에반게리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건, 어쩌면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홀든이 사립학교(정확한 것은 기억이 안 난다)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것처럼 신지도 에반게리온을 타기 싫어한다(동급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U5FnY0_QsRk

잔혹한 천사의 테제나 듣자.


 다만, 홀든과 신지가 다른 이유는 (인류 최후의 결전 병기에 타야 한다거나...혹은 인류보완계획 이런 것은 아니고) 신지 주위에는 더 부서진 사람(아야나미 레이)이나, 부서지면서도 파이팅 넘치는(아스카) 사람이나... 여러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지가 결국에는 안 찌질했는가? 에반게리온을 깊게 안 봐서 잘은 모르지만, 그냥 계속 찌질했던 것 같다. (에바에 좀 타라 신지!)


찌질함을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니,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에반게리온>으로 넘어가 버렸다. 뭐 생각해보면, 인류의 마지막 파수꾼이 에반게리온이니 뭐 그냥 연결고리가 좀 있는 것도 같다. 그러다 보니, 같은 회사에서 나온 다른 작품 <천원돌파 그렌라간>이 떠오른다. 왜냐? 이 작품에도 지질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하니까. 작중 주인공 시몬은 땅굴만 팔 줄 아는 찌질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친구가 (물론 소년 만화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전개와 같이) 마지막에는 개쩌는 간지 캐릭터가 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형님을 자처하는 캐릭터인 카미나는 그의 죽음을 앞두고 찌질하기 그지없는 시몬에게 '너를 믿는 너를 믿어'라는 캐 오글거리는 문장을 말해주고 떠난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가끔 이 장면만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각성!


https://www.youtube.com/watch?v=FtcbQXEk69c

너를 믿는 너를 믿어!!


그런데, 그게 사실 시몬이라는 캐릭터도 주위 사람의 좋은 영향 만으로 찌질함을 탈출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원래 무언가 하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하는 간지 캐릭터였는데, 그냥 주위에서 그것을 받아들여 주지 않으니까, 남들의 시선에 맞지 않으니까 자신 안에 갇히고 자기 일만 계속 몰두하면서 고립되어 찌질해진 것 같다. 그걸 꺼내 주는 역할만 카미나라는 캐릭터가 담당했고. 그러니까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 사람을 찌질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냥 그것도 그대로 멋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알아봐만 준다면.


그니까, 우리가 홀든이 작중에서 모지리 취급을 받으면서 방황하는 와중에도 오리와, 아이들을 걱정하고 파수꾼의 이야기를 내뱉는 모습에서, 오 멋진 걸 하는 건 좀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서 우리는 홀든의 그런 생각을 끄집어 곱씹을 수 있으니까.(물론 그 조차도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이건 그냥 모지리끼리 통하는 느낌적인 느낌일 수는 있겠다) 홀든에게 부족한 것은 자존감, 자존심 뭐 이런 것들. 자기 신뢰이고 이걸 처음에 구축해주는 것은 외부인데, 이걸 못 받으니 이렇게 자라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니까, 말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말을 하지 말자가 아니라 마음껏 그리워하고 가서 안아주자. 이야기를 들어주자. 졸라 찌질해 보이지만 사실 그 사람이 세상을 구원할 인류보완계획의 핵심 요소일 수도 있다. 아니라면 또 어떤가. 그리움의 종착지가 즐거움이 되면 되는 거지 뭐.


사족으로 풀어내는 다른 작품 이야기들

찌질함 하니까 또 허니와 클로버의 주인공이 떠오른다.(난 이 작품을 좋아하는데, 왜 주인공 이름이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을까) 그의 극복은 짝사랑과 자아 찾기 여행을 통해 이뤄졌다. 내가 더 나아지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풀어헤치고 모두 비워내는 상태로 갔을 때, 찌질함을 버리고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w-03oX91j7U

그런김에 영화판 <허니와 클로버> 트레일러를 투척해봅니다. 


 <GTO(국내 발행명 반항하지마)>에서 모 캐릭터가 0이 되는 용기를 가지고 나서야, 남에게 나를 투사하여 자아를 구축하지 않는 캐릭터가 되었던 것이 떠오른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주먹과 손바닥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뭐, 무슨 상관이야 그게.


사족을 빙자한 진짜 메시지


 사실 무언갈 간절히 원하면, 찌질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게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지질함이 밖으로 표출될 때? 돈이거나, 명예 거나 혹은 사랑이거나. 홀든은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초고?: 2016.06.03

퇴고?: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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