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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Apr 25. 2018

<넥스트 머니 비트코인> by 김진화

변할 것, 변하지 않는 것, 변하고 싶은 것

아마존 Amazon 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말했다. 10년 뒤에 변할 것에 집중하지 말고,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것에 주목해보라고.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는 예전에 비해 빨라졌고, 변화의 방향도 그 속도에 비례하여 다채로워졌다. 따라서, 변화할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기보다는 변하지 않을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변화 자체에 주목하지 말라는 말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저 발언은 결국, 수없이 변할 수 있는 것들 사이의 본질에 집중하라는 것이며, 그 본질이 - 변화하는 외피에 의해서 어떻게 구현될 지도 결국은 예측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마존은 '리테일'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되, 아마존고 같은 혁신에 과감할 수 있는 것이다. 본질은 물건을 어떻게 유통하여 더 편하게 소비자에게 전달할 것인가 이니까.


그렇다면 금융은, 화폐는 혹은 보다 더 거시적인 무언가는 어떨까. 


어떤 경우에는 예측이 아니라 선언이 혁명적인 움직임으로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다. 주로 사상이 그랬고, 이데올로기가 그랬다. 고대 중국 문명에서 백가쟁명에서 살아남은 유교가, 로마의 박해를 이겨낸 기독교가 그랬고 마르크스가 주창한 무언가가 그랬다. 


사토시 에 의해 시작된 블록체인 열풍, '비트코인' 이 지금이 수많은 ICO 들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은 다이내믹하다. 그 변화의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인지 짐작하기 쉽지가 않다. 우수한 엔지니어들은 '블록체인'이라는 아이디어 위에 자신들의 생각을 입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변화로 인해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 산업의 여러 가지가 변화할 수도 있다고 예측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바뀌는 것은 없다. 중개수수료가 더 낮아져서 더 나은 사회가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은 가능한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현재까지의 기술적 한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다양한 설계상의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보장된 것은 아니다. 


때문에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인하여 기관과 개인에게 주목받은 것 이상으로 '이노베이터'들에게 블록체인이, '비트코인'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기술 자체의 혁신성, 새로움은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하지만, 결국 '비트코인'의 핵심은 OSW(Occupy Wall Street)에서 계속 제기된 기존 금융 권력에 대한 불신과 정부에 대한 불신 - 중앙 집중된 형태의 해체에 대한 '탈집중화'의 사상 그 자체가 아닐까. 때문에 비트코인이, 이더리움이 혹은 다른 '블록체인'에서 파생된 기술들이 '탈집중화'를 할 수 있을까는 다른 문제이다. 우리에게 '탈집중화' 가 필요한가, 가능한가,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사상' 이 될 수 있을까가 오히려 더 큰 질문이지 않을까. 


통화란 가치의 척도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있지만, 그것은 다른 어떤 척도로도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일 가능성이 크다. 가치 평가의 기준이 - 그 권력은 국가가 형성되면서 '국가'라는 통치체제에 종속되는 형태로 존재해왔다. 미국의 연준이, 다른 중앙은행들이 국가에 예속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그들이 국가와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드무니까. 


민주 정이라는 형태의 지배체제는 일견 탈집중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함께 따라온 것들은 '자본주의' 이미, 현재까지는 인간의 본성을 잘 반영하는 체제이며 성공적인 것이 있다. 이 시스템 아래에서, '자본' 은 집중되는 경향성을 보인다. 그 자체가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바라보아도, 자본은 흐르며 퍼지는 것보다는 집중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가 되면서 자본은 국경을 허물고 뭉치기 시작했고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대변자들 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미디어도 자본이 필요하고, 혁명가에게도 빵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민주주의 정부의 씀씀이는 줄어들 수 없는 형태의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원성이라는 가치의 확장이라는 개념은 사상적으로 훌륭한 것이 되었지만, 국가의 통제권이 제한된 상태에서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게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이미 모여있는 자본'이다. 


과연 그 '모여있는 자본'들을 흩어 놓을 수 있을까. 무력을 통한 혁명 봉기가 성공한 곳에서도 그것이 모여있는 상태가 자본가에서 정부로 바뀐 케이스 외에, 정말로 평등하게 자본이 뿌려지는 형태의 사회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얼핏 그런 듯 보이는 사회도 천연자원 혹은 다른 우수한 자원들을 기반으로 다른 사회에 비해 보다 높은 '자본'을 쌓아두고 있기에 가능한 것들 뿐이다. 


또한, 설사 '탈집중화' 가 성공한다고 해도, - 국가나 다른 기관이 개입할 수 없는 자본주의 체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해결된다고 해도 - 그러한 사회에서 국가 시스템으 제대로 동장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과격하게 말하면 '탈집중화'의 끝은 아나키즘인데, 오히려 그것은 국가의 해체와 금권정치를 뛰어 넘어서 기업-국가의 탄생을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 가치 평가의 권력 그 자체가 분산된다고 한들, 사회 시스템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유토피아라고 볼 수 있진 않을 것 같다. 


때문에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한 '선언문' 으로의 '비트코인' '탈집중화된 화폐 체제'의 기술적인, 혹은 금융공학적인 성공 여부와 별개로 이 변화가 사회에 얼마만큼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직은 '탈집중화' 자체는 매우 기초적인 '개념'에 불과하니까, 이런 평은 조금은 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얕은 생각으로 어쨌든 이것은 '논의' 해야 할 이론의 하나에 머무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ICO 등 과열된 시장에 비 탈린 부테닉 같은 이가 반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는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메커니즘, 기술에 대해서 고민하되, 새로운 '메시지'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다시 -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무엇이 변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은 그에 비해서는 조금 편한 편이다. 세상은, 어떤 화폐 체제를 가져오더라도 어떤 가치 체계를 고안하더라도 지금의 '자본주의'의 폐해를 유의미한 수준으로 고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때문에 엔지니어들이 - 이노베이터가 던진 '블록체인' 파문에 대해서 우리는 이제 앞으로 '어떤 체제' 아래에서 살고 싶은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기술은 도구이다, 그리고 도구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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