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11의 단상 + 190720의 사족
올해 생일 선물을 받으면서 생각한 일이다. 이거 다 빚이다. 축의금도 그랬다. 다 빚이다. 되돌려 줘야 한다. 그래서, 축의금을 받은 측은 답례품을 돌리기도 한다. 이게 다 무슨 요식행위란 말인가. 이 사회는 보답을 너무 기계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말을 건네면서도, 내심 생일 선물이 기뻤던 기억이 난다.
보답은, 결국 되돌려 주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은혜나 감사한 일에 대한 보답은 조금 다른 게 - 생각보다 그 규모가 양의 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감사한 마음은 보답이 왔다 갔다 하면서 커지기도 하니까. 또한, 그런 마음을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이니까.
물론, <빅뱅 이론>의 캐릭터 쉘든은, 그 가치를 '금전적 가치'로 해석한다. 내가 이 정도 가치의 물건을 받았으니까, 그에 상응하는 선물을 보답해야 한다는 식. 이 것은 대체로 쉬운 방식이다. 보답의 영역에서. 하지만, 자본주의 공통의 가치인 금액이 절대적인 기준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핵심 요소인 '거래'가 발생하지 않겠지.
거래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인지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가치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예전에 유행한 농담. 빌 게이츠의 입장에서는 무료로 100불을 주는 곳이 있어서 1시간을 가야 한다고 하면, 그것을 움직이는 것이 손해일 수 있다고 한다. 1시간에 버는 돈이 1000불을 훨씬 상회하니까. 물론 이 논리가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가치 차이로 인해 거래가 발생한다는 좋은 예시가 된다.
이 가치 차이로 인해, 보답하는 관계는 좋은 윈윈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특히, 갖고 싶지만 내가 사기에는 뭐한 물건들의 시장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들은 상품권 시장의 근거가 된다. 가치 차를 통한 윈윈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관계에서는 기존의 금전적 가치를 그대로 액면가, 교환가치로 지니는 상품권이 제격이다.
그리고 이 보답 거래 관계에서는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만 이전되는 것이 아니다. 선물을, 보답을 하는 사람이 나의 이전 호의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달된다. 이는 사회를 구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복수보다는 최소한의 보답 관계에 알맞은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근대화 과정의 악습일 뿐인 축의. 조의도 마냥 상조회사 같이 서비스로 대체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느슨한 계모임의 관계가, 그렇다고 썩 나쁘다고 볼 건 무엇인가. 지금처럼 되다 만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불편할 수 있지만 좀 더 고도화된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괜찮은 결론을 가져올지 누가 아는가.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계산을 자제하며 보답해보자. 마음에 우러나서 하는 보답을 해 보자. 남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그것을 되돌려주어 보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