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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Mar 18. 2024

문제와 생산성 그리고 심리적 안정성과 소속감

매일 글쓰기 003


개인의 생산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꽤나 많이 읽었다. 목표를 정하고, 잘게 쪼개고 달성을 위한 규칙을 정하고. 미루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 예컨대 리스크를 먼저 생각하고 대응 원칙을 정해놓기. 삶의 원칙을 만들고, 작은 일들을 위임하고. 캘린더를 통하여 특정 시간을 확보하기라거나. 찬물로 샤워한다거나. 조금은 궤가 다르지만 일어나자마자 3페이지의 글을 적어 나가는 기록을 하는 것도 있었다. 목표를 나열한 뒤, 분류하고 집중할 목표를 선정하여 우선순위를 정하는 건 정말 유용한 팁이다. 많은 경우에 그러지 못하지만. 


생산성이란 결국 문제 해결에 영향을 받는 게 아닐까. 큰 문제, 잦은 문제들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보는 게 생산성이라면 참으로 수험 시절과 다를 게 없다. 주어진 시간은 짧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잘 풀 것인가? 수험시절만 놓고 보면 배경 지식을 쌓아두고, 어떠한 문제들은 반복적인 숙달을 통해 풀어버리는 게 필요하다. 숙고를 통한 풀이가 필요한 문제와 아닌 것을 나누고 빠르게 답을 풀어나가는 것. 그러기 위한 수단과 도구를 익히는 게, 어렵지 않지만 많은 문제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업무 자동화에 해당하는 영역이 이런 부분이겠지. 거의 반사적으로 풀어낼 수 있도록 기본적인 공리를 익히고, 이 풀이를 자동화하기. 


문제를 쪼개는 것도 필요하다. 예컨대, 영어, 국어 지문은 너무나 길기 때문에 우선 문제를 읽는 것. 문제를 읽어서 무엇을 풀어야 할지 정한 다음에 다시 글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되는 습관이다.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관계를 파악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시작하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문제를 잘 정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여 해결하라는 원칙과 유사하다. 이상적으로는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것이 더 나을 수 있겠지만, 한정된 자원인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접근방법을 달리 할 필요가 있었다. 


검산, 다시 확인하기는 늘 중요했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 제대로 풀고 나서도 OMR에 마킹을 잘못할 수도 있었고, 또 너무 뻔한 문제라고 생각한 것에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문제를 푸는 과정에 5~10%를 여기에 투자하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골프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좀 들었는데, 골프에서 드라이버샷 길게 치는 한 타와 매우 짧은 거리의 어프로치, 퍼팅도 같은 한 타로 치듯이. 수능의 문제 점수는 비중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수 분 생각해서 풀어할 4점짜리 문제만큼이나 2점짜리 문제 2개를 올바르게 푸는 게 중요했다. 


쓰다 보니 갑자기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훈련 방식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데. 근데 오늘의 주제는 사실 이게 아니다. 이건 '나' 그러니까 개인의 문제풀이와 생산성에 관한 것이니까. 이 훈련을 잘 받는 것은, 어쩌면 머리가 가장 잘 돌아가던 수험시절로 돌아가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소설이었고, 실재하는 문제는 사실 이것만으로 풀리지 않는다는 게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일단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거나, 해답을 정하기 전에는 모르는 것들, 가설과 실험의 반복 속에서만 학습 가능한 것들이 있다는 것. 더불어서 문제의 크기가 너무 커서 홀로는 도저히 풀 수 없다는 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다. 


뭐 사실 새로울 것은 없다. 개인의 생산성에 관한 문제는 마치 수능 문제와 같이 개인에 집중하여, 그때의 감각을 살리는 것만으로도 꽤나 해결되겠지만, 2인 이상이 엮인 문제가 과연 그렇던가. 연인 간의 이야기, 가족 안의 이야기들. 학급의 문제나 마을과 도시의 문제들. 그 똑똑하고 훌륭하다는 사람이 많다던 압구정 아파트의 재개발 현장에 걸린 현수막을 보면서 느낀다. 아이고, 문제 풀기 참 어렵다. 재개발이라는, 재건축이라는 큰 문제로 놓고 보면, 실제로 단지수가 클수록 이점이 있는 만큼,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게 많이 보여온 사실이다. 


합의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일의 크기나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어떠한 이론적인 돌파구를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현대의 많은 실험, 연구들은 '연구실' 단위로 이뤄지는 것도 맞다. 독일의 한 사회학자가 고안한 제텔카스텐이라는 기법을 계속 보다가 생각이 났는데, 어떤 훌륭한 개인은 수많은 정보를 체계화하고 체화하며, 이 안의 관계와 대립 속에서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겠지만, 이는 개인의 사고의 결과물이 곧 문제 해결의 증빙이 되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지 않은가. 결국 내가 아닌 남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책, 뉴스나 유튜브) 내 생각으로 바꾼 뒤 이것을 조합해서 다시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논문) 방식의 일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정보의 량이 매년 폭증하는 시대에 이게 개인이 꼭 할 수 있는 영역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AI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없진 않지만, 아직 그러한 AI를 보진 못했다. 


반대 측면에서 이 바닥에,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인도한 영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IDEO의 그 유명한 카트 디자인 사례.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M66ZU2PCIcM) 세계 최고의 디자인 컨설턴시였던 그들이 진행한 이 사례를 보면서 여러 가지 영감을 받았고. 그 길로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 내가 나갈 수 있는 부분은 어디인지, 혹은 내가 더 공부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저 방식에서 발전된 서비스 디자인은 영국의 엔진에서 더블 다이아몬드라는 방식을 내놓거나, IDEO 도 Human Centered Design이라는 방법을 내놓는 등, 방법론적인 진보가 계속 있어 왔는데. 


돌이켜보니 이게 제텔카스텐과 크게 다르지 않나 싶었다. 보면, 결국 확산과 수렴, 더 많이 생각하고 다시 이걸 좁혀서 정의하면서 문제를 풀고, 아이디어를 모으는데. 제텔카스텐에서도 확산 (카드의 생성) 그리고 나의 생각으로 만들고 연결함으로 수렴하지 않던가. 창의적인 사람으로 이끌기 위한 모닝페이지도 개인적 차원의 확산과 수렴의 과정으로 읽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많은 자기 검열이 없는 상태에서 쏟아내고, 수주 뒤에 그것을 다시 보면서 활용하는 방식, IDEO의 그것과 크게 다르진 않아 보인다. 차이는? 다시 혼자 하는가 같이 하는가. 


같이 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짧은 시간 안에 큰 문제, 깊은 문제를 풀어야 할 때는. 의사결정이란 타이밍이라고들 하는데, 이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는 문제 풀이의 순간이 마치 수능의 그것처럼 다시 굉장히 짧은 기간 안에 잦게 쏟아지게 된다. 그래서 같이 풀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혼자서 감당 가능한 일은 수년 전에 멸종한 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각설, 그러니까 같이 생산성을 올려나가기 위해서는 수능 풀이처럼 어떤 것은 분담하여 빠르게 처리하고, 어떤 문제는 문제를 잘 정의하여 다시 풀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같이 검토하여 문제를 잘 풀었는지 확인해야 하겠지. 작업을 쪼개서 하는 것 만으로 부족한 문제가 있다면 토론을,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걸 시도해 볼까?


이때 중요한 것이 심리적인 안정감이다. 문제를 같이 푸는 집단 간에서 의견 개진이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환경, 극단적으로는 이게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수 있는 의견도 내놓되,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수용할 수도 있는 환경. 틀린 의견을 내놓을 수 있고, 그것이 빠르게 정정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의견,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방향. 


문제가 크고, 어렵고 힘들수록 더 중요하다. 이미 답이 정해진 문제라면 구루 한 사람이, 멘토 한 사람이 가이드를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의 다양한 문제 혹은 많은 회사들이 풀고 있는 문제는 새롭고, 겪어본 적이 없고. 잘 정의되어 있지도 않다. 정의하는 방식도 다양한데, 그걸 증명할 방법도 많지는 않다. 때문에 더 많은 아이디어, 생각과 의견에서 시작해야 하고, 그래서 더 많이 참여하고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럼 다시 - 그러한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조건이 달성될 때, 예컨대 IDEO로 다시 돌아가면 세계 최고 수준의 엘리트들이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서 그들의 문화에 적응되었을 때 저 모습이 보이고 있을 터인데. 나의 조직, 내가 속할 조직에 안정감을 부여하여 혁신을 촉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찾고 있는 해답은 소속감이긴 하다. 구태한 방식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개인주의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서 회사가 성공해야 하고, 따라서 더더욱 이 소속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처럼 가족 같은 회사, 우리가 남이가 같은 소속감도, 가능하다면 사용할 수 있겠지만 다시 개인주의적인 시대. 미디어도 개인화되는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사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반발심을 가져올 가능성도 꽤 있고. 


소속감을 주는 방식이 역설적이게도 안정감이라는 내용을 다룬 책을 읽고 있었는데, 곱씹어보고 있다. 내가 안전지대에 있다는 감각을 씌워주어야 한다. 덧붙여서 같은 문제를 푸는 동료라는 느낌을 전달해 주기. 갑자기 <원피스>가 생각난다. 루피는 왜 선장인가?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꿈이었으니까. 풀기 어려울 만큼, 누군가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수준의 큰 꿈과 거기에 대한 열정. 그리고 소속원들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꿈을 비웃는 자를 경멸하는 모습. 그리고 그 꿈을 이뤄가는 모든 동료를 응원하고 돕는다. 만화적인 과장을 조금 거둬내 본다면, 이게 뭐 우리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이는데. 


누구였는지 기억 안 나는데, 헤밍웨이이었나, 배를 건조하고 싶을 때, 매뉴얼을 외우게 하는 것보다는 넓은 바다를 상상하게 하는 게 먼저라고 하였다. 공통의 목표나 꿈, 지향점을 만들어주는 것이 안정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함께 한다는 감정을 쑤셔 넣기 때문일 것이다. 힘든 문제풀이라는 과정을 함께하는 동료라는 생각을 넣을 수 있으려면, 같은 목표를 향해 똑같은 문제를 혹은 연관된 문제를 풀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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