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 006
할 일 목록을 관리하기
생산성에 관한 여러 가지 책들을 읽었다. 예닐곱 권은 될 것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그래도 인터넷에 있는 블로그나 기사글을 합치면 대략 10권은 되지 않을까. 생산성이 과연 나아졌는가, 글쎄, 적어도 10년 전의 나보다는 나아졌겠지. 하지만 그게 책 덕분일까? 최근에 모 신문의 칼럼에 글쓰기 책을 피하라는 조언이 적힌 것을 보고, 생산성에 관련된 책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돌고 돌아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책이나 다른 도움이 나쁠 것은 없지만 해낼 것이오, 마음에 없다면 그저 책은 좋은 경구를 모아둔 법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는 확실하게 되뇌는 생산성 원칙이 있긴 하다. 우선은 사회 초년생 즈음에 GTD를 알고 나서 생각한, 할 것이 있다면 2분 내로 처리할 것이 있다면 바로 하자! 물론 2분이라는 수치도 이상하고, 꼭 그런 일이 많이 있지도 않겠지만. 그럼에도 이게 개구리를 먼저 먹어라 (eat the frog first)와 같이 연결되었는데.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이 되면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해 버리는 것.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반복적이고 귀찮은 일이라면, 그게 말이 된다.
저 원칙을 체화한 문장으로 바꾸면 '귀찮다'라고 생각나버린 일은 해버리자. 이유는, 귀찮다는 것은 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고 얼마나 귀찮을지 인식했으니 할 방법도 아는 상태라는 것. 따라서 내 지난 10년이 귀찮다는 핑계를 거둬냈었더라면 어찌나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면 참 아찔하게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운동 가기 귀찮고, 책 읽기가 귀찮다. 물론 체력과 마음의 잔여량이 부족한 시점에도 비슷하게 말할 순 있지만, 그래도 잔여 에너지 아주 조금이라도 그런 행동에 투자했더라면? 돌이켜보는 게 참으로 부질없겠지만 그래도 꽤나 달라질 수 있었지 않을까.
그다음, 하나하나!라고 되뇌며 걷는 적이 꽤 있다. 두 가지 생산성 원칙이 붙었는데, 큰 일을 쪼개라는 것과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자는 의미이다. 왜 쪼개야 하는가? 너무 큰 일은 관리가 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정해진 시간과 무엇을 할지를 정해버린다면 메타 인지의 에너지가 당장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또한, 삶의 많은 순간들이 무엇을 할지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따라서 일을 가능한 쪼개서 하나하나 해내가면서 할 일 목록을 지워나가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물론 이 역시 귀찮은 일은 맞긴 하다. 적어 나가는 것.
한다! 는 마음을 먹고 일을 쪼개고 나면 그걸 적고, 선언하는 것은 꽤나 중요하다. 내가 오늘 무엇을 한다, 이번 주에는 무엇을 한다고 말해버리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팀원,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자극이 된다. 때문에 우선은 적어 내려가야 한다. 적자생존이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라고 이야기한 게, '트레바리' 어느 모임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래 뭐 재미있는 말이네!라고 했는데 많은 경우에는 이게 맞는 말 같다는 의미 없는 문장이 요즘은 계속 생각난다. 적어 내려가는 것.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서 나와야 한다. 너무 많은 인풋이 있는 바쁘다 바쁜 현대 사회 직장인은 아웃풋을 만들어내야 하고, 따라서 장기 기억 장치인 메모장, 노트 등에 할 일들을 쏟아내고 나서 당장에 할 일로 모드를 바꿀 수 있어야겠지.
최근에 스스로 깨닫고, 또 주위에서 나에게 조언해 주길 <원 씽>에 집중하라고 하는데. 해당 책을 읽기 위해 몇 번이고 도전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닌데, 논지는 아주 이해가 되고 있긴 하다. 결국 '멀티태스킹'은 사람이라는 구조적 한계상 - 우리는 GPU 같은 병렬 처리 기관이 아닌지라 안되고 하지만 '일석이조'는 가능하다는 것. 추가로 일론 머스크가 시스테믹 싱킹이라고 했나... 아인슈타인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제를 정의하는 데 99% 시간을 쏟는다고 했나.. 하여튼 그 문장들처럼 무엇이 이것을 야기하고 무엇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원 씽' 인지, 할 일들을 해체하고 문제들을 더 잘게 쪼개서 분류함으로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과학이 한문 그대로 분류를 통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역시 분류함으로 문제와 할 일을 쪼개고 내가 덤빌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게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꽤나 많은 생산성 조언들이, 개인에게 귀속된 방식이라는 것에 좀 회의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책에서는 회의를 잘하는 법을 , 어떤 곳에서는 꼭 필요할 때만 회의를 하라고 하고 창조성을 강조하는 책에서는 불합리해 보이고 시간 소모적이라고 느껴지더라도 어떤 회의는 꼭 해야 한다고 하는데. 틀린 말은 없지만 그것 만으로 함께 일하는 것이 달성되지는 않는 것 같다. 에자일 소프트웨어 선언에 딸려 나와서 스크럼이나 칸반을 통해서 함께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조금 겉핥기나마 보았는데, 혹은 팀장, 매니저로 살아가는 방법을 보면서도 익히긴 했는데. 글쎄 아직 아지랑이처럼 흔들거리기만 한다. 함께 생산성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 개개인의 최적화만이 답인가? 예컨대 내가 집중할 시간을 가지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급한 누군가의 요청을 해결함으로 회사의 속도가 올라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뭐 대충 이런 내용.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을 넘어선 일을 관리하는 방법에서도 이게 적용이 되는가 하는 점도 있었고.
각설,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혼자서 일해야만이 하는 분야도 있긴 하다. 각자가 모두 잘 혼자서 일해야 함께 일하는 때 - 예컨대 회의 - 모두의 각자 일한 결과물이 섞이며 시너지가 나는 것이겠지. 마치 아이디어가 발산과 수렴을 통해서, 마찰과 소음을. 통해서 빛이 나는 것처럼, 모두의 생각 역시도 이렇게 부딪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우선은 개개인이 집중할 수 있게 하고, 그 집중의 결과물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들, 그게 무엇이 되었건 고민을 해아 하지 않을까 싶다.
참으로 세상사 생각하다 보면 쉽지 않고, 결과물로 내놓는 문장이라는 것들이 뻔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생산성에 관한 책, 글쓰기에 관한 책 읽지 말라고 조언하게 되는 것일지도. 하지만 그러한 책이라도 읽고, 거인의 어깨 위에 선다는 느낌으로다가 이 방식에 대해서 스스로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으면, 해보지 않은 와중에 힘든 일을 시작할 수 없기에 시도도 하지 않고 그냥 안된다! 고 결정 내리게 되지 않을까. 특히 내 생산성을 신경을 써주는 것 같지 않은 조직에서는. 어쩌면 조직 차원에서는 개인의 생산성에 대해서 믿고, 신경을 써준다는 신호를 계속 발현해 주는 것 만이 의미를 가지는 한 가지 조언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