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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Jun 10. 2018

행복한 삶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목적지를 지향하는 것과 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대다수가 전자를 강조한다. 이렇게 살아야지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거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들은 재무, 부동산 관련 강좌에서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일단 빚을 최대한 져서라도 집값이 적어도 떨어지지 않을 지역에 살며 돈을 아끼는 것이라고 하였다. 


매년 하와이니, 유럽이니 놀러 가며 살아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은행 빚에 어쩔 수 없이 아끼는 것이 어쩌면 현명한 방법이라 조언해주었다. 물론, 방법론에 있어서는 동의한다. 내 절약 정책은 선 지름 후 절약이었다, 항상. 먼저 사버리고 나면 돈이 없으면 알아서 절약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물건들을 하나 둘 사고, 밥을 줄여 가며 살아온 시절도 있었다. 여기에 전제는 물론, 그 물건을 사면서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지름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만족할 수는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입이 있기에, 크게 낭비하지는 못하여도 원하는 물건을 나름대로 사고서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에 이런 방식은 내 행복의 절대적인 수치를 꽤나 올려주고 있다. 하지만 집은 또 어떨까 생각해보니, 아닐 것 같다는 답이 나온다. 집을 가져서 행복할 수 있는 부분은 엄청 많을 것이다. 큰 집을 가지고, 거기에 장난감이나, DVD 니 채워 넣고 싶은 마음도 크다. 가정일 꾸려서 직장 동료들처럼, 아이를 보고 싶은 생각도 가끔은 한다. 밤에 잠들고 아침에 눈 뜰 때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도 있다. 위의 삶은, 근대를 거쳐 현대로 넘어오며 보편화된 핵가족 중심의 문화와 행복이며,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방식의 행복이다. 그게, 현시점에서 나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를 다시 생각해보면, 어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금의 연봉(개인으로는 만족하는 편이지만)으로는 가족을 풍족하게 꾸릴 자신이 없다. 물질적 풍요 없이 가족의 존재 자체로 행복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사실 이런 류의 행복은 그 순간순간의 행복의 중첩 값으로 느껴진다.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순간의 중첩에 의미를 두기에, 기쁘지 않은 순간들을 기쁘기 위한 순간의 준비물처럼 여기는 것은 마시멜로 이야기의 도입부에 나오는 10분 뒤의 더 많은 마쉬멜로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본다. 뭐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최종적인 보상을 위해 현재의 작은 보상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은 꽤 공감이 가긴 한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의 전부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 이를테면 보지도 않을 DVD를 사는 심리와 비슷하다. 나는, 이 영상물을 너무도 좋아하니까, 차후에 다시 볼 계획이 얼마나 될지도 모른 채 나는 구매를 하였다. VOD 도 비슷하고, 책도 그렇다. 


소유욕, 특정 순간이 너무 좋아 그것을 평생 간직하고자 나는 내 돈을 소비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대체로 옳지 않은 결정일 때가 많았다. 세상은 변하고, 드라마의 다음 시즌은 꼭 나온다. 특별히 까다롭지 않다면 본방만 챙겨 보면서도 행복할 수가 있다.(물론 덕질의 대상의 경우에는 이 논의에서 제외하도록 하자.) 그러니까, 순간보다는 그 행복의 감정을 간직하고자 사람들은 불필요할 수도 있는 소비를 한다. 미래에도 지금 순간의 행복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삶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나는 말하였다. 행복이라는 종착지를 찾아가는 여정과(물론, 이 과정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는 점을 꼭 말해두고 싶다) 삶의 궤적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는 글귀가 있다. 금과옥조로 여겨도 좋을 만큼, 훌륭한 문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적을 위해 내 삶의 방향을 디자인해서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지금 행복한 일을 하며, 그 궤적이 모여, 마치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한 것 마냥 점을 잇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애플이 되거나, 장난감 컬랙션이 되거나, 그건 상관없다. 적어도 나는 그 궤적을 잇는 순간순간 최대한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결말이,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가 되어 거리에서 쓸쓸히 늙어 죽는다고 하여도 - 아직까지는 -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차피 이미 내 삶에 후회의 순간은 차고 넘친다.


 당장 오늘 아침에서도 왜 나는 10분 일찍 일어나지 않았는가, 빵이 아니라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할걸 하는 순간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미련은 없다. 내 인생 충분히 살아남았고, 즐겼다.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진 않아도, 미련이 남진 않을 것 같다. 나는 최선을 다해 행복하고자 노력해 왔으니까. 얼마 전 부모님이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 계획이 뭐니. 불효자의 답변. 내년에도 2년 뒤에도 5년 뒤에도, 행복해볼 계획입니다. 그때 내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불행한 순간은 필연적으로 찾아오겠지만, 나는 앞으로 저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사족. 혹시나 내가 삶의 목적을 지향하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 것처럼 보였다면, 죄송하다. 절대 그런 의미는 없다. 그 삶은 굉장히 숭고하고, 멋있다. 


다만, 내가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할 뿐이다. 나는 일제시대에는 일제의 앞잡이가 되서라도, 군부독재시대에서는 온갖 뇌물을 가져다 바쳐서라도 내 행복을 추구할만한 사람이기에, 그런 숭고한 목적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을 뿐이다. 물론, 그럼에도 가능한 원칙을 지키고자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아서 큰일이긴 하다. 여하튼 오늘도 내일도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읽느라 수고하신 여러분도 꼭, 오늘도 내일도 행복하고 돌아보면 청춘이고 추억인 나날들로 지금을 가득 채우시길 기원한다. 


초고 2016.01.27

퇴고 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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