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은 유독 길다. 덥고 안 덥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길다. 최근의 내 여름들은 그랬다. 더위를 먹었다고 그냥 넘어왔지만, 돌이켜보면 너무 큰 감정에 몸을 맡겼던 것 같다. 여름은 지난 2년간 내게 큰 흔적을 남겼다.
보통은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길을 걷는다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주제를 잊고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붙잡아 버리는 것이다. 그게 뭐가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견딜 수 없는 일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무리한 다이어트를 계획하는 거랑 같은 거다. '더 나은 나'라는 점에서는 아예 같기도 하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은 충분히 했다고 했는데, 더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바닥이 아니라는 점에선 놀라기도 한다. 여하튼, 그 여름 내내 예전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덜 더워했다. 난 내 기분에 취해 있었으니까, 덥다고 느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고, 흐르는 땀을 닦지 않은 채 잠드는 밤들이 있었다.
무더움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약간 불가의 고행 같은 느낌을 준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찾아오는 고양감이 나를 취하게 만든 것일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날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이었을까. 내 판단을 믿지 않고 감정대로 행동하게만 만든 그 기분들. 이제 와서 기억을 하는 것은, 힘들기도 하지만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그 기분을 찾다 잠들 것 같다.
가을이 왔지만 가을 이불속에는 아직 여름이 갇혀 있다. 창문을 열면 가을을 밀치고 겨울이 찾아오고, 마른기침 속에서 깨기도 하지만 이불속의 여름이 너무 싫다. 끈적함 속에서 되돌아오는 기억들, 그 틈에 묻어 나오는 감정들이 기분 나쁜 꿈으로 나를 이끈다.
오늘은 선풍기라도 틀어야겠다.
2016.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