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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Oct 02. 2016

안녕, 2013

적당히 오래된 우울함을 꺼내어 고쳐 쓰다.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된 행위이다. 


내게 세상은 어려웠다. 거대한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어서, 그래서 그랬다. 무언가 거대한 기계장치 속에 버려져 있는 악몽. 기억력 나쁜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꿈이다. 사회를 만드는 어떤 공식이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더 어려웠다. 세상에서 내가 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던 어린 시절들. 내가 배운 것과 다른 모습들 사이에서의 방황. 지향점을 잃어버린 나그네처럼 살아왔다. 


지금은 그 공식이 개개인이 가진 '욕망'의 함수라고 믿고 있다. 세상에는 개인의 욕망이 중첩되어 보편적으로 합의된 ‘무언가’가 생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욕망은 본인들이 수동적으로 동의한 ‘무언가’에서 좌우로 조금씩 편향되어 있었다. 둘은 서로 배척하기 쉬운 가치이기 때문에, 원활한 모듬살이를 위해서 각자 자신의 욕망을 조금씩은 감추어야만 한다. 당연한 이야기. 그렇게 욕망이 중첩되기 때문에, 각자의 최선이 곧 모두의 최선이 되진 않았다. 반대도 마찬가지이고.




'모두'의 최선은 '각자'의 최선이 아니었고, 가끔은 모두에게 최악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욕망의 교집합으로 형성된 ‘무언가’가  유일한 진실이라고 믿기에는, 욕망의 교차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진보 보수, 좌우로 크게 나눌 수 없는 '합의'의 지점들. 수없이 많고 시시각각 그 값의 성격도 변하는 욕망이라는 변수들.


이 욕망은 무엇인가. 언젠가, 나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라고 감히 말했었다. 자기만족은 대체로 타인/객체를 변화시킴으로 달성되는 것처럼 보였었다. 물론, 자기 자신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역시도 ‘득도’라는 개념이 아닌 이상 변화된 자신과 타인/객체에 대한 관계의 변화를 통하여 자기만족을 얻는 것으로 여겼다. 결국 모두는 모두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감히 생각했었다.


고로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느끼는 만족이라는 감정은 과거의 자신에 대하여 변화된 자신을 긍정하는 모습인데, 긍정은 선택의 문제이다. 시간 축만 고려한다면 과거와 현재의 자신에 대한 비교로 끝나겠지만 사회적인 동물인 까닭에 결국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만족으로 결론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예외적인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고 나는 더욱 어려워했다.




도덕률이라는 것이 결국은 소망과 욕망의 경계를, 바람직한 미래상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것에 불과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 기준 역시 다양한 욕망이 중첩된 경우에 가장 최다의 사람이 그 자신의 욕망의 최선까지 실현시킬 수 있는 경우까지 그 기준이 결정된 것이라고 결론지어질 것이다. 그렇게 사회가 구성되어 있다고 하여도 현실적으로는 가진 사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가지지 않은 사람의 소망이 무시되는 경우가 굉장히 잦다. 


재미있는 점은 종종 가진 자의 소망이 평등이나 자유와도 같은 음식과 분변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으로 이뤄지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소위 '이상' 같은 것들. 물론 그 경우에는 기존의 도덕률을 뛰어넘는 새로운 도덕률을 창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인권이라는 것을 우리가 발명한 것처럼.


하지만 모두의 욕망이 다른데,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해서 연애를 하는 건가 연애를 해서 사랑하는 건가, 그런 소설책에서 나온 죽어있는 이야깃거리.  도대체가 생각할 거리가 없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느 연말처럼 할 일은 쌓여있고 공부할 것도 쌓여있고 속은 안 좋은데 굳이 음식과 분변 사이에서 이런 쓸데없는 글을 집어넣어야지 인생이 뭔가 의미 있는 것으로 인지될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동식물의 사체와 하수도관 사이에서 존재하는 나란 존재의 움직임이 부가적으로 생산해내는 각종 오염물질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자괴감이 차올라서 쓰기 시작한 순간 이미 난 져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기에 글을 쓰고, 올리고 공유한다.


2013년 연말, 정말로, 자기 긍정을 하고 싶어 지는 밤이다. 여러모로. 마치 내일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끝은, 대체로 우울했다. 사라질 것들을 창밖의 날씨처럼 바라볼 준비가 나는 되어있지 않다. 


초고: 2013.12.30

탈고: 201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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