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 관하여
1. 과장된 이야기. 낚시꾼이 물고기의 크기를 과장하는 데에서 비롯함.
2. 그대로 번역하면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
3. 일본의 소설가 이사카 코타로의 단편 소설
4. 하지만 이 글은 그냥 글쓴이의 일기장
짝사랑은 구차하다. 그래서 난 20대의 7할을 남들 보다 더 찌질하게 살았다. 그 시간 동안 다른 누군가를 만나보려고도 했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끝은 그 사람이었다.
스물한 살의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 사람을 처음 보았다.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이 눈부셨다고 느꼈다. 7년이 지난 지금, 내 감정이 꽤나 다른 기억들에 덧칠해진 것이라 걱정해서, 지난 일기장도 뒤져 보았다. 답은 비슷했다. 나는 첫 만남의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 끌리고 있었다.
7년이 지나, 처음의 설렜던 감정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그 사람을 만나면 주체할 수 없는 내 행동은 무엇인가. 어쩔 줄 몰라하며 다른 약속을 뒤로하고 그 사람을 만나러 나는 몇 번을 끌려 다녔다. 혹은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나를 이용하는 것일까? 적정한 선을 두고 나를 어장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도 해 보았다. 내가 어장관리를 할 정도로 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싶었다. 전화하고 싶은 밤이 꽤나 많았고, 썼다 지운 편지가 전해지지 않아 다행이라 여긴 아침이 있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을 잊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안정감을 얻으면 잊힐 사람일까? 내 7년간의 고생은 고작 그 정도였을까? 질문이 계속되었다. 속으로 그 사람을 욕한 밤은 그리워한 밤 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리워한 밤만큼은, 그 사람을 욕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냥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밤도 있었다. 잊기 편하게. 떠나 버리면 아프겠지만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처음 만났을 때 난 사람 관계에 실패하여, 지쳐 있었다. 그때, 내가 사랑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았다면, 달랐을까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아니었을 것이다. 도망치는 와중에 마주친 그 사람은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다. 다른 상황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만, 가까이 그 사람이 있는 것이 좋았다. 물리적으로 멀어진 시간 동안에, 그 사람을 잘 만나기 어려웠지만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겐 높은 벽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벽 너머 다가가면 부서질 것 같은 무언가가 보였다.
다시 같은 공간에 선 이후에도, 그 사람을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곧 또 해외로 떠났다. 한동안 연락도 제대로 닿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리워만 했다. 어쩌면 그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게 아닐까? 가끔 마음 아파하며 시간이 흘렀다.
그 사람이 한국에 돌아온 이후, 나는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그 사람과 약속을 잡고 만나, 그래도 조금은 더 가까워졌었다. 그 사람은 그즈음, 나에게, 한 모임에서 자신에게 마음을 표현한 사람 때문에 힘들어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마음이 아팠다. 나도 다가가면, 이렇게 싫어할까?
이미 알았지만, 이 무렵 친구의 입에서 똑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의 감정은, 감추려고 했던 것을 들킨 아이 같았다.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내 마음을 그 사람은 읽었을까? 슬픔은, 내가 아는 것이 그 사람에 비해 없다고 느껴질 때, 슬며시 다가왔다. 내가 노력해 온 것을 알까. 알 수 없는 것들은 매력적인 것일까? 사실 나는 그 사람을 오랫동안 그리워하면서 알고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 기억을 못 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내게, 이 사랑은, 알지 못하기에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것일까.
시간이 나면 그 사람을 만나 보려고 노력했다. 그 사람을 위한 선물을 샀다. 받아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선물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생일 선물을 고르며 기뻐했고, 생일에 만나지 못하면 어떨까, 이래서 타이밍도 이상하게 선물을 주었다. 한 번은, 그 사람이 내 생일을 기억해주지 못하여 지나갔을 때, 아 진짜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포기하려 했었다.
그래도 난 다시, 그리워했다. 한 번은 그 사람이 하는 핸드폰 게임을, 따라 하기도 하였다. 그 사람과 말할 수 있는 공통 영역을 만들고 싶었고, 하트를 보내고 싶었으니까. 그 사람이 생일이 한참 지나서, 내 생일 선물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 왔을 때는,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 분명. 하지만 그런 기대도 수일이 지나서 연락이 닿지 않거나, 약속이 잡히지 않아 보이지 않으면 이내 사그라들었다.
반대로, 매력적인 이유는 그 사람은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사람은 그대로, 신비롭게 서 있고 나는 그리워하며 나를 그 사람에 맞춰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내려고 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로 노력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려 해 보았다. 그 사람이 변하지 않을 것, 예상하면서도. 어쩌면 내가 가진 게 없어서, 내가 부족해서 라는 마음가짐으로. 내 노력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것은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감정이기에 그 사람을 원망하고 증오하면서도 더 사랑하게 된다. 나도 그렇게 그 사람에게 빠져들었었다.
어장이라는 것이, 나 스스로 만든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면, 이제 그건 말라버린 것이 아닐까. 내 감정은 더 헤엄칠 곳이 없는 상태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물속으로 빠지지 않는 이상, 이대로 굳어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메말라버렸고, 힘을 잃었고, 그대로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고, 떠오를 생각 조차 하지 않고, 그저 파닥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장처럼 감정도 모두 의문형으로만 남는 건 아닐까. 끝내 후회라는 감정조차도 잊어버린 채로 굳어 버린 것은, 아닐까.
잠을 설치지만 꿈을 기억하진 못하는 편이다. 보통 기억나는 것은 비몽사몽 간, 잠들기 직전의 혼란한 머릿속에서,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시뮬레이션이다. 그럴 때 그 사람에 대한 생각도 당연히 새어 나온다. 이랬으면 달랐을까, 저랬으면 괜찮았을까 하는 잡념들. 가볍고, 낮은 수준이지만 더 순수한 갈망의 감정들.
그 사람을 보내고 나서 홀로 돌아오는 길은 처량하다. 가끔은 처절했다. 그 사람이 변화하는 것을 기대한 날일 수록 더더욱. 난 안되는 걸까? 어린 시절부터 가진 콤플렉스들을 다시 마주했다. 내가 키가 작아서? 못생겨서? 목소리 탓인가? 돈이 많으면 될까?
사소함들이 모여서 세상은 흘러간다. 어쩌면 내 사소한 배려들과 사랑들이 모여, 충분히 그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상상해본다. 듣고 있을까, 기억하고 있을까, 생각은 할까. 난 그냥 아무것도 아니겠지로 이어지는 침상의 생각은 끝난 적 없이, 얕은 잠에 빠져 버리곤 한다.
이뤄지지 않은 모든 사랑은 짝사랑이다. 한쪽이 조금 더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게, 그 차이가 좀 크더라도, 아니 그 기간이 조금 더 길다고 하여도 잘못은 없다. 바다에 어울리는 물고기도 있지만, 어항에 머물며 한 자리를 맴도는 것이 더 기쁜 물고기도 있다. 다만, 가끔 밤에 잠을 못 이룰 뿐이다. 그러나 그런, 피곤한 밤에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건 꽤나, 즐거울 수 있었다.
여전히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자취방 침대에 누워 생각하는 것은 주로 그 사람보다는 다가올 집안일과 회사일, 걱정거리들이다. 다만, 복잡한 생각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가끔, 천장을 바라보다가 7년이나 봐온 그 사람의 얼굴이 흐릿해져 몇 장 가지지 못한 사진을 찾아보고는 잠든 밤이 아주 가끔 있었을 뿐이다. 조금 더 지나면 약간 더 메말라서, 나도 내 감정도, 다 썩어 없어지진 않을까, 기대한다.
사족 1.(2015년 작성)
다른 블로그에 공개를 했으나, 누구에게도 읽혀주지 않았던 글일 두어 달이 지나 이글루에 공개할 수 있게 된 까닭은, 이제는 확실하진 않아도 꽤나 많이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다른 아픔이 찾아왔지만, 그것도 뭐 웃으면서 아파할 수 있는 단계는 된 것 같다. 조금 더 지나면 그냥 웃겠지.
사족 2.
정말로 이제는 만나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너 좋아했었다고. 부끄럽다면 그건 사랑 보다는 쪽팔림 때문일거라고 생각한다. 참, 글이란 신기하다. 그리고 아마, 이 글을 다시 꺼낼 때는 또 다른 아픔이 있기에 꺼내 들겠지.
초고: 2015년 9월 28일
탈고: 2016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