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육자들의 후손이다. 당신의 선조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타고 타고 올라가면 우리 종이 이 땅을 지배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졌는가. 여기에 대해서 도덕적인 판단은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라는 책을 통해 우리 종의 역사를 '빅 히스토리'로 묶에서 설명하는 과정은 이런 식이다. 우리의 규범, 가치보다는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면서도 불편할 수 있는 사실을 담담하게 그려서 설득시킨다. 어쨌든 그것은 사실이니까, 혹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증거가 훨씬 많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피엔스라는 종이 150명 이상 뭉쳐서 협동할 수 있는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공통의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더 나은 미래를 함께 상상해서,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었다. 신화가 집단의 규범체계를 구성한 사례를 들 수 있겠다.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면서 같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다. 종의 진화라기보다는 집단의, 사회의 진화 과정이 이랬을 것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여기에 있다. 그 진화, 변화가 항상 우리를 위해 좋은 길이었을까? 농업 혁명이 큰 사기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100% 확신은 못하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은 진보하고, 체계는 구체화되는데 우리는 과연 행복해졌는가? 물론 개인적으로는 기술을 통해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으로 바로 연결되어 오지는 않았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농업혁명이라는 사기극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과학혁명을 타고 올 미래가, 모두에게 행복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아닐까?
엑스맨 아포칼립스를 보았다. 엑스맨의 프리퀄 트릴로지에서는 극 중 자비에르 교수님이 머리가 벗어지기 전, 즉 비교적 덜 현명한 시절에 쓴 논문이 반복 인용된다. 논문의 내용은 네안데르탄인을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시켰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이어져서 신생 인류에 가까운 뮤턴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펼쳐 나간다. 극 중 소수자의 형태를 하는 돌연변이들은 이러한 생각에 따라 현생 인류에게 경원시당한다. 여기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인류와의 공존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비에르 교수의 영재스쿨 및 엑스맨과, 신인류라는 자각을 한 후, 현생 인류를 멸절 혹은 지배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는 매그니토의 ‘브라더 후드’ 들.
이 빅 히스토리를 읽고 나서 드는 생각과 엑스맨의 이야기와 결이 비슷한 지점이 많이 있었다. 조금 더 덕후스럽게 이야기하면, 사피엔스는 인류 보완계획(에반게리온) 의 첫 장과 같은 서술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인류는 이렇게 살아왔다’는 식의 담담한 서술. 상술한 것 처럼 거기에는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가 들어갈 구멍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사피엔스>의 마지막 장에서 인류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물론 호르몬, 화학작용에 대한 언급을 하지만, 뭔가 조심스럽게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저자의 다음 저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머리 속의 퍼즐이 맞아떨어져 갔다. 이건, You can (not) advance 의 내용이구나! (농담입니다)
현생 인류의 빅 히스토리를 다루면서,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을 언급하며 지금의 인류가 선 자리에 대해서 저자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혁명 가운데서 호모 사피엔스는 계속하여 호모 사피엔스였다. 무엇이 인간을 규정하는가? 호모 사피엔스의 물질적, 유기물에 대한 특성으로의 정의는 확정적이지만, 우리가 치켜세우듯 '갓'을 붙이고, 와 사람도 아니네 라고 욕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인간'에 대한 정의를 나름대로 가지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이것을 '상상'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이래야 해~라는 규범들은 모두 오랜 기간 동안 학습되어온 이야기들의 집합일 뿐, 그것 자체가 호모 사피엔스를 규정짓지는 못한다.
사람이라면 응당 사람을 죽이면 안되지라거나, 우리가 어릴 적 강요당한 '충', '효' 같은 사상들. 남녀간의 사랑이라거나, 아니면 지금 여러 착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환경 보호 이런 것들. 이게 '천부적' 으로 만들어진 권리라거나, 해야하는 의무라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마음 먹었기에 그렇게 된 것들이다. 애초에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러니 사피엔스가 다른 종들을 학살하고 살아남아 이 땅에 오롯한 인류로 자리잡은 것이 아니겠는가. 대체로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은 광합성이라거나, 쪼그라들기(죽음을 각오하고 외부의 화학용품의 힘을 빌리면 가능은 하겠다) 아니면 스스로 빛을 발하기(형광물질을 합성해서 유전자 조작을 하면 그땐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 종은 이미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지 않을까?) 같은 게 아니겠는가.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사람답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학습하고 깨달은, 내가 생존하기에 다른 이들이 그랬으면 하는 형태의 '사람다움' 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존을 위해 '이야기'를 진화시키는 동안 사피엔스에게는 실제로 진화할 시간이 없었다. 개체로의 진화보다는 집단으로의 체제를 ‘상상’을 통해 ‘이야기’ 로 완성시킨 것이다. 제국, 자본주의, 종교… 책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사피엔스는 더 이상 진화하기 힘들 것 같다는 저자의 선언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기계와 함께하는 인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유전자 조작은 정말로 우리를 엑스맨의 시대로 이끌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변화는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는 지난 개체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넘어오던 시기와는 다르게, 말 그대로 ‘지적 설계’에 기반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유기물 개체가 진화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물질적 특성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변화를, 진화를 체감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그것이 꽤 빠른 속도라고 하여도, 한 호모 사피엔스의 일생 안에 이뤄지지 않으며, 세대 간에 격차가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과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우리 자신의 속도보다 빠른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우리는 아직까지 토미노 감독의 [건담] 시리즈에 등장하는 '뉴타입'으로의 각성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우주세기 건담 한정이지만, 뉴타입과 유사한 설정은 계속 우려먹으니 건담 시리즈 전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인류 보완계획(안도 히데키, 에반게리온) 도 없다. 그러나, 난자와 난자 만으로 수정을 시키는 실험이나, 인공 자궁에 대한 이론 혹은 실험들은 지속되면서 인간성에 대해 물질적인 부분으로 정의된 것들이 모두 날아가고 있다. 비교적 남아 있는 부분은 자아, 의식, 뇌 영역인데 이게 정복될 날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는 그동안 절멸시켜온 다른 종들과 함께 우리 스스로를 멸절시킬 무기들을 가지게 되었다.
인류가 서로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긴장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며 체제를 지속하기에는, 기술의 발전은 무섭도록 빠르다. UAV 나, 금번 시제품 시연에 성공한 레일건 같이, 비대칭적 무기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MAD 상황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은 종국에는 모두에게 미치게 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 단체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
샤를리 엡도 테러와 얼마 안 있어 일어난 파리 테러의 비용이라는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세계적인 충격을 자아낸 그 사건은 실제 수천여만 원 수준의 공작금으로 진행이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살상의 가격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한 경제적 개념에서의 전쟁의 비효율성이 다른 형태의 파괴로 무너질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연합뉴스에도 비슷한 기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아니, 사실 모든 유기물 개체는 끊임없이 지난 개체보다 더 나은 개체가 되기 위한 진화의 과정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단축시켜야만 한다. 여기서 문제는, '어떻게'이다.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닌 형태를 취한 진화 과정의 과도기는 어쩌면 엑스맨의 세계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브라더후드의 방향으로. 자본을 가진 사람은 더 빨리 진화하여 그보다 못한 기존의 호모 사피엔스를 지배하는 형태로. 어쩌면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가 정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라면 말이다. 진화의 방향과 속도가 우리의 손아귀에 있다면, 우리는 함께 진화할 수 있을까? 모두가 함께 조금 더 완전성의 길로 나갈 수 있을까? 남겨진 사람 없이 나갈까 우리가?
정의. 인류애, 인성. 모두 다 상상의 산물은 맞다. 유일신의 체계에서 정말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창조되었다는 가정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도덕률은 지금의 체계를 위한 것이다. 인식의 지평 너머의 신세계의 도덕률을 우리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더 나은 살육 방법을 자행하면서 진화해야만 하는 이유도 딱히 없다. 다만,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뿐 아닐까? 이대로라면 인지 혁명, 농업혁명 그리고 과학 혁명처럼 ‘빅 히스토리’ 로 인류는 움직일 것이다.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각 유기물 개체들은 (그러니까 너, 나 우리) 낙오되고, 도태되어 버릴 것이다. 이미 그러고 있지 않은가? 모바일 퍼스트 시대의 인류와 현생 인류의 차이는 비교적 분명하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집단으로써는 경쟁이 안된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계와 이미 인류는 결합하고 있다. 지금은 신체의 입출력 기관과 기계의 입출력 기관이 물리적인 결함을 통해서 소통하고 있을 뿐, 근 미래에는 화학물질이나 전기 신호로 소통하게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끔찍하다는 말은 사치이다. 그 개체들은 더 우월한 ‘호모 사피엔스’를 뛰어넘어서 새로운 ‘종’ 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인류의 미래는 프로토스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 진행자 umc/uw 가 언젠가 했던 말이다. 왜 테란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우주를 진출하는 시점에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는 더 이상 예전의 종족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 확률이 크다. 심지어 그것이 '유기물'이라는 제약을 던져버릴 수도 있다는 점 까지도, 우리는 생각해볼 시점이 되었다. 종의 최종적인 목표라는 것이 있을까. 철학적인 개념으로는 우리는 완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 종의 진화하는 방식은 살아 남기 위한 것이니까, 모든 조건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그리고 다시 새로운 후손을 남기는 것은 완전성의 획득이겠지. 그리고 나면, 더 이상 진화는 없고 정체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화해야 한다. 진보해야 한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상황과, 전쟁의 비용 대비 효과성 관련 논증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총구만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상황을 유발 하라리는 설명했다. 그리고, 조만간 더 위험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에서 발표한 레일건 같은 무기가 전력화가 될 경우, 사드, 스타워즈 프로젝트 재시작이라던가, 이런 과학적인 진보로 인한 위험은 충분히 존재한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의 '상상된' 체계를 가지고 싸우는 상황에서는 테러라는 매우 ROI가 높은, 전쟁과 유사한 살상을 이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걱정한다.
다가올 미래는 인간에게 암울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필요 없어질 것이다. 지금의 체계로만 놓고 보면. 많은 부분이 이미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때문에 유발 하라리는 지적설계론을 들고 나온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설계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개인적으로 과학의 진보의 속도에, 유기물의 진화가 좇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기계를 디자인하면서 걱정하고, 제약을 건다.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다만, 우리가 포기해야 할 인간성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지평선 밖으로 가져가야 할 것과 남길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후손을 '살인을 못하는 존재' 로 디자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과연 올바른 일일지, 효과적인 일일지 논의해야 하는 순간이 어쩌면 지금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숙제일 수도 있다. 우리의 진화의 방향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곳에 있을 것이다.
완독: 2016년 06월 01일
초고: 2016년 06월 06일
탈고: 2016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