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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Oct 16. 2016

<자백> by 최승호

세상은 그래도 러브 엔 피쓰 입니다. 

영화관에 날아온 기소장


HBO 의 드라마 <뉴스룸> 속의 앵커 '윌 맥어보이'가 떠올랐다. 최승호 PD와 닮아서 그렇... 다는 것은 아니고, 드라마 속에서 윌 맥어보이 캐릭터를 맥해일 맥킨지가 평가하는 장면이 떠올라서이다.


뉴스 데스크에 앉아서 정치인들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윌에게, 그가 저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누군가 묻는다. 맥킨지는 답한다. 그는 사람들을 위한 '검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라고. 


언론이 제 4 부라고 불릴 만한 곳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별칭이 나온 이유는, 그 힘이 막강해서가 아니라 그 책무가 막중해서라고 생각한다. 특히, 민족주의 국가로 성장, 발전한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에 대해 뻗댈 수 있는 국가 밖의 존재가 필요하다. 


영화에서 고 한준식 씨의 지인이 하는 말이 기억난다. '그분들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 ' 만약 그렇다면 거기에 합당한 법적 절차가 있어야 했고, 책임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 공문서가 있어야 하고, 국가 보안상의 이유로 당장 공개를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공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과연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전에, 이게 정말로 국가 안보에 필요한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나는 국가정보원이 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때문에 어떤 일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를 떠나서. 하지만 이번에 <자백> 속에서 보이는 모습들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기 충분한 것들이었다. 


그러니 최승호 피디, 아니 감독이 나서서 2시간여에 달하는 긴 기소장을 만든 것이 아닐까. 국가가 거짓 증인과 가짜 증거로 무고한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는 죄를 상세히 적은 '기소장'을.



잘못된 과녁


기소장이라면 그 안에 처벌에 대한 내용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영화는 국가의 책임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국가라면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이런 조치를 앞으로 취햐아지!라는 식의 발화는 영화 속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 영화의 관객이, 이 영화를 보는 것이 그들이 받는 벌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배심원이고, 판사인 것이다. 판결은 대체로 투표용지라거나, 댓글이라거나 어떤 형태로든 '여론'이나 '민심'이라는 형태로 이뤄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 내 판단에 따르면 기소장이 제대로 된 곳에 배송이 되었느냐 하면, 글쎄 잘 모르겠다. 드라마 <뉴스룸>의 장면을 다시 인용해보겠다. 미국의 방송 관련 법에서는 뉴스를 위한 시간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뉴스 회사들의 수익구조에 대해서 보장하지도 않았고, 뉴스 전후의 광고 판매에 대한 제한도 없었다고. 그래서 뉴스가 이런 꼴이 되었다며 비판하는 장면이다. 


왜 미국은 그런 방송 관련 법을 만들었을까. 다시, 뉴스는 견제받지 못한 권력에 기소장을 던질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으니까. 특히나, 국가 체제 밖에서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니까가 아닐까. 사람들에게 알려주고(inform) 혹은 계몽( Civilize)할 수 있는 도구이니까. 그래서 <뉴스룸> 시즌 1의 마지막에 왜 미국이 위대한 나라인지 묻는 인턴 기자에게 맥어보이는 '네가 그렇게 만들어봐(You do)'라고 답한다. 


영화를 후원한 사람들, 혹은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미 이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가끔은 영화를 좋아하는 애호가들도 있겠지만(그들은 개봉한 영화를 다 보지 않고서는 잠이 안 오는 성격이니까), 대체로는 정확하진 않더라도 유우성 씨 사건에 대해서 들어본 사람들일 것이다. 


최승호 감독은 겨냥을 바로 했지만 과녁이 잘못되었다. 이 기소장이 배달될 곳은, 영화관보다 더 큰 곳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사라진 공중파 뉴스의 공공성이 그립다. 


공정성은 죽었어. 더는 없어! 하지만 뉴스타파에! 국민TV에 하나되어.. 아 아닙니다.


주변인들과 빨대 사회 


최근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들은 이야기다. 아카기 토모히로라는 사람의 사고 실험. 일명 사토리 세대라도 불리는 세대와 유사한 세대인 걸로 보이는 그 사람은, 차라리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라는 식의 (과하게 요약을 하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피라미드가 흔들리면 아래층이 안전한 것일까.


자본주의 혹은 현대사회의 구조는 대체적으로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로 그려볼 수 있다. 물론 근대 중세 고대 쭉 가도 줄 세우기의 수단이 있는 한 이 구조는 변한 것이 없다. 때문에 이것을 부수기 위해서 흔들면 뭔가 기회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피라미드' 형태는 개념의 형상화의 결과물일 뿐이다. 실제로는 그 모습 속에 위에서 아래로 꼽혀 있는 '빨대' 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봤다. 


왜냐면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고위층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오히려 하부층이 먼저 붕괴하니까. 6.25 때 우리는 다리가 폭파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제거 작업에 투입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젊은이들이다. 


이런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떠든 것은 , 이 사건을 겪은 유오성, 유가려 씨의 국적적 특징을 알고 나서 든 생각 때문이다. 그들은 '화교'였다. 그리고 연이어 70년대의 조작 사건들을 보면, 재일교포들이 많았다. 재일교포야 '조총련'의 존재 때문에 더 노리기 쉬운 조작 대상이었을 수도 있지만, 문득 과연 그것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니까, 탈북을 해도 고위층이라면 저런 일이 일어나겠냐는 생각도 들었고. 국가 권력이 무언가 조작하거나 수탈을 하려고 하면 이런 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참으로 무섭고 짜증 나고 나한테 조금 편한 것을 주면서 큰 불편을 가리는 사회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보면 간첩 조작 사건들을 쭉 나열해 두는데 80년대 후반 이후 잠깐 그게 드문드문하다가 다시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이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어떤 작업이라면 지금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고 판단해도 되는 것일까? 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언젠가 이 책을 읽어 볼라꼬..


세상을 바꾸는 것은 


크레디트 끝에는 긴! 후원자의 명단이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살짝 났다. 아마, 한준식 씨의 죽음을 그의 딸에게 전달하는 최승호 피디의 목소리에 어설픈 담담함이 코끝을 찡하게 만들어서일 것이다. 그 감정이 쭉 지속되다가 여러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그 화면에서, 터져 나온 것이겠지.


재밌는 건, 1천만 원 이상 후원 단체들! 이라며 개인 후원자 다음에 배치한 것이다. 한국 영화가 투자사의 이름을 영화 젤 처음에 배치하는 것과는 달라 보여서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은 배경 속에 흰 글씨 사이사이에 보이는 특수문자였다. 그건, 하트 모양의 기호였다. 영화 스토리 펀딩 후원자들은 크레디트에 표시할 내용을 어느 정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러니 거기에 자기 입맛에 맞게 사람들이 적어 나갔으리라. 누구는 자신이 있는 단체 이름을 적었다. 누군가는 '정의는...' 이라며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크레디트 안 올려주셔도 돼요'라는 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검은 화면 속에 한 글자의 공간을 가득 흰색으로 채우는 하트 모양만큼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을 했냐면, 저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겠지. 저들 중 누군가는 이 영화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 두 사람이 나누어 펀딩을 했겠구나 참 보기 좋다는 생각. 같이 영화를 보러 오겠구나 부럽다 라는 생각. 뭐 별의별 생각이 드는 것과 함께, 역시 사랑은 무지하게 강력하구나 란 생각을 했다. 


얕은 생각이지만, 역시 이런 문제에는 모두의 연대와 관심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사랑해야 하겠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뭐, 절대 부러워서 마지막 내용을 이렇게 채운건, (안 부러운 것은 아니지만) 아니다. 진짜로, 그 긴 영화 크레디트을 끝까지 기다리며 자주 등장하는 하트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은 사랑과 기합이지! 아 그게 아닌가.. 



(자기 이름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던 부부? 커플이 있었는데 ㅈ 쯤에 나갔다. 사진을 찍고서는. ㅎ 성을 가진 친구들은, 그리고 영화 크레디트을 안 보던 사람은 괴롭겠구나 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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