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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Jan 22. 2017

<How Asia Works> by 조 스터드웰

아시아를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중국으로 마무리되는 책.

아시아. 


최초에 아시아는, 그곳에 있는 사람이 '규정한' 개념은 아니다. 


 아시아는 대체로 '유럽' 이 아닌 '타자'로 대상회 된 개념이었다. 오리엔탈리즘. 사실 책은 뭉뚱그려서 '아시아'라고 했지만 여러 관점에서 '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무시'하고 있기도 하다. 중동은 '아랍권'으로 묶을 수 있다고 친다고 하더라도, 인도나 파키스탄 혹은 몽골과 같은 내륙국가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책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의 제목은 'How East-Asia Works' 정도가 아닐까. 어쨌든 지금도 '아시아'는 '아시아' 가 아닌 곳에서 '규정' 되고 있다. 물론 '나'는 '너'를 통해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긴 하지만... 조금은 엄밀하지 못한 이름 짓기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편의상 '동북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극동아시아 등등'으로 이름을 짓는다고 해도, 우리는 그 사이에 차별점을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 여행지에 가서 그 사람이 유창한 영어를 쓰고 있다고 해도 대체로 한, 중, 일 혹은 그 외 나라이겠거니, 마음속으로 우리는 구분을 한다. (그것도 꽤나 폭력적일 순 있는 일이지만) 그만큼 이 '아시아' 안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책에서 묶은 나라들을 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실제로 그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가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대체로 황하 문명을 기반으로 퍼져나간 중국의 역사에서 비롯된 사상일 것이다. 나라를 구성하는 방법,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모든 것이 유럽이나 다른 곳에서 퍼진 것과는 그 결이 다르다. 아프리카도, 아랍권도 모두 교류를 하면서 발전시켜왔지만 어쨌든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 국가가 가진 세계관은 유사한 지점이 많다. 물론 일본의 경우 섬나라로의 특수성, 한국의 경우에도 독립정부를 수립하였기에 가져온 역사적 차별점은 분명히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들도 그러할 것이다. 하다 못해 국민당 정부의 정통을 계승한 대만의 경우에는 지배계층의 구성원이 민족적으로 '동일' 하다고 하더라도 중국과는 큰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족성을 뛰어넘은 이데올로기는 아닌 것 같기도 한 게, 그럼에도 그들은 화교라는 커뮤니티 안에서는 다르지만 또 함께 가는 것 같단 생각도 든다. 애초에 중국 그 큰 땅떵어리 안에 사는 사람이 공유하는 민족의식은 꽤나 합중국적인 것이 아닐까란 의심도 들고. 쓰촨 성 사람과 헤이룽장성 사람들은, 그 인종이 같다고 하더라도 같은 의식을 공유하기엔 너무 물리적으로 거리가 머니까. 현대 사회에 들어서는 통신 수단이 그 물리적 거리를 0으로 만들고는 있지만. 한국에서도, 정치적 의도로 인한 분열이란 필터를 제외하고 봐도 지리적 차이에 인한 사람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생각해보니 근대 중국 이전으로만 가도. 그리고 지금도 광둥어와 북경어는 소통하기에는 너무 다른 말이니까.)


때문에 그들이 이룩한 근대의 역사도 일견 비슷해 보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특히 대만, 한국, 중국 등은 식민 제국주의 시대에서 피수 탈자로 남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룩된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새롭게 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에는 섬나라라는 특성과 빠르게 서구 문물을 도입했다는 점으로 특별한 모습을 '초기'에 가졌고, 그게 지금까지도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의 큰 차이를 만들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의 나라의 발전 궤적의 큰 흐름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에서는 중국, 한국 등이 일본의 모델을 참조했다는 가능성을 크게 말하지만, 나라 간의 역할이 달라졌어도 상황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중국.


그중 가장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은 10억 이상의 인민으로 구성된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수치적으로 세계의 리더의 위치를 지난 100년 외에는 내려놓아본 적이 없는 대국. 그들의 식단이 바뀌는 것 만으로 세계의 환경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는 전 세계 식자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 관점에서는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술한 '10억'이라는 숫자만 가지고 중국이 왜 이렇게 화두이냐는 거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발명' 된 이후로 국가와 사회는, 그리고 그 안의 개인은 '경제' 주체로의 존재를 통해서 본인의 사상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어쨌든 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철학이건 정치건 논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니까. 때문에 이 책은 비록 정치 사회적 함의를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했으나, 그것과 경제의 연결고리를 규명하면서 장기적으로 중국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을 그어 준다. 


그렇다면 그 중국의 지금과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그 주변의 국가를 보는 것이 의미 있을까? 저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문화적 유사성, 역사적인 흐름에서의 동일성과 별개로 근대 시절 침탈자인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이 유사한 경제 발전의 흐름을 보여주었으니까. '큰 흐름'에서는 같은 궤도를 보인다는 저자의 말에 대체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것이 유럽, 미국, 남아메리카 등 다른 지역과는 차이를 보인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10년 전이 한국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국의 10년 전이 중국이라고 본다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디테일하게 보면 현재 양탄(원자,수소폭탄)을 쏘아 올린 중국의 기술력과 한국의 기술력을 10년 주기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G2로 성정 한 중국의 경제가, 알리바바를 만들어낸 그들의 인프라가 한국보다 10년 뒤쳐졌다고만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1인당 GDP를 놓고 분석하는 것은 단순화를 통해서 이론을 도출해내는 것은 유리할지 모르나 의외로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국가가 보낸 10년, 20년을 보면서 중국의 행보를 가늠하는 것은 잘못되기만 한 일은 아니다. 왜냐면 '다른 부분'들을 가려내면서도 그 큰 흐름에 있어서 '인류' 가, '아시아'로 묶인 이들이 나가야 하는 혹은 가고 싶어 하는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중국이 '대국굴기'를 외치는 것이 일본, 한국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다만 그들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 것이 차이일 순 있겠지만. 


중국을 배운다는 것


중국을 배운다는 것은 세상을 아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10억 명이 넘는 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힘은 지구의 1/7 이상이 움직인다는 이야기니까. 인류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난 '역사' 속에서 세계의 리더 자리를 놓친 것이 겨우 100년여 밖에 되지 않는다. 서로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던 시절에도, 사료로만 판단했을 때 수치적인 '파워'는 혹은 어쩌면 문화적인 '헤게모니' 까지도 중국은 놓쳐 본 적이 별로 없다. 물론 그것을 유지하는 주체는 한족, 몽골, 만주족 등 변화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대다수는 한족에게 결국 문화적, 사회적으로 흡수되었고). 지난 2,300년간 그 힘은 유럽을 걸쳐서 미국으로 갔지만,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중국이 그 자리를 다시 차지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중국이 지금 이렇게 '열심히' 사람을 갈아 넣으면서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에는 그런 역사적 자산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또, 지금 한국 사회가 중국을 비웃는 것들의 다수는 2,30년을 돌아보면 우리가 하던 짓이다. 짝퉁? 우리는 안 심했나? 이상한 음식들? 10년여만 가도 우리는 쓰레기 만두라고 욕하고 있었다. (물론 그 사건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견해도 있지만 / 지금의 중국처럼 신기한 '짝퉁'이나 위험한 '짝퉁'을 만들지 않은 것은 우리의 국민성이 나아서일까, 아니면 그만한 기술이 없어서일까...) 그리고 중국은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았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중국은 우리를 따라잡고, 미국을 따라잡고 있다. 많은 면에서. 그런 지점에 있어서 이 책의 지적이 재미있었지만 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우리가 중국을 대상으로써, 거래의 상대방으로 알아볼 때는 이 책이 가진 함의는 크다. 경제사적으로 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 사상 그리고 그것이 이룩한 사회에 대해서는 당연히 살펴보지 않았기에 이 책이 가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성, 혹은 민족성이라는 말이 가진 폭력성에는 반대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재료로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금의 시대가 바라는 방향으로 경제가 흘러가는 것으로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게 과연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또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한 편으로는 명목상으로나마 마르크스, 레닌 혹은 트로츠키까지. 인터내셔널 꼬뮨의 정통에서 어쩌면 러시아보다 더 그 적통을 이은. 그렇게 비약하지 않더라도 시대를 풍미한 독재자, 학살자 그리고 사상가 마오이즘이 아직도 살아 숨 쉴 수밖에 없는 중국은. 그리고 그 사상에서 단절되었지만 지금의 중국을 살아가야만 하는 현대 중국의 젊은이들이 이룩하는 것들은 단순히 경제개발의 모형만으로는 알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중국이라는 나라를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알아보기 위해 시작하기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서 한국을 다시 돌아보고 그럴 가지고 중국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현대를 혹은 아마도 미래까지 지배하는 '돈'. 실물경제 그리고 금융까지도 돌아보면서 가니까. 저자는 충분히 다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질문이 들기도 한다. 


중국의 '환상 문학'의 전통. 혹은 홍콩 누아르에서도 나오는 그 정신. 어쩌면 서구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통. '의협심' 그 종주국 중국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혹은 그 영향을 받은 나라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이 책은 마키아벨리즘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건조하게 서술한다. 후술로 덧붙여 하지만 이들은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고 그것은 후대의 짐이 될 것이다라고만 말하는 것은 조금은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신으로부터 천부인권을 받았다는 것의 전제는 신이 있다는 것. 하지만 나는 신의 존재를 불가지론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가야만 하는 방향을 신이 아닌 우리의 총의로 결정하는 것인데. 책은 긍정하지는 않지만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개발 독재의 시대가 '필요했다'라는 뉘앙스를 남긴다.


물론 그게 돌이켜보았을 때, 혹은 크게 보았을 때 필요하였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생각이건 그의 측근의 생각이건 한국의 박정희 정부가 한국의 이 세대에 남겨준 유산은 크다. 그 자신이 아닌 그 시대가. 그 수많은 나쁜 일들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이 남겨준 유산도 분명히 중국에는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담담하게 말해야만 하는 것인가. 어쩌면 그럴 수 있었기에 서구 문명은 과학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지금의 문명의 중심에 섰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매해 물질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항상 더 나은 사회를 만들면서도 피폐해져 가는 정신세계의 원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르다는 것. 중국인들이 백가쟁명의 시대에, 문화 대혁명 시기의 잘못된 바람이 불 때에도 '바르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왔는데, 그걸 그대로 묻어 두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PC 함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었다. 정의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꽤나 정치적이고, 어쩌면 대다수에게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그 본 의미에 반하게 말이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굉장히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건조함을 유지한 그 분석에서 삿된 정의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의 분석에 대해서는 나는 구할 이상 동의하는 편이다. 이 사회가, 한국과 일본이 대만이 혹은 중국이 지나온 '독재적'인 그리고 '비인간' 적인 발전사는 분명히 나쁜 것이지만 객관적으로 다른 독재에 비해서 더 나은 결론을 가져왔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나는 묘사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이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궁형을 당하면서도 바른 역사에 대해 고민한 사람의 자손들이니까. 제자의 죽음 앞에서도 바른말을 하던 사람의 자손들이니까. 그 집안이 아직도 남아서 한 마을을 이루는 나라니까. 나는 중국에게 더 심한 잣대를 들이대고, 그들에게 다시 한번 정말로 대국굴기 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아쉬운 점도 남겼고. 그러나 다시,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잊고 지냈지만 꿈꾸었던 삼국지의 인물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나에게는.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책에서 말한 경제정책에 더불어 사회와 조직, 국가에 대해서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 이상의 다원적인 생각을 해야만 할 것이다. 한편으로 끔찍한 것은 그런 사상적인 논쟁이 지속되어야만이 '인간다울 수 있는'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비판하는 삶 속에 놓여야만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우리를 더 존귀하게 만들 수 있는 수많은 길을 다시금 더 넓히고, 그것을 중지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로 가고 있다.


책은, 그래서 그의 과거에 대한 분석이 매우 옳지만, 우리는 그 보다는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해야겠다는 마음을 내게 남겼다. 중국을  위해서도 한국을 위해서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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