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스터드웰의 <아시아의 힘>을 읽고
독서모임 플랫폼 <트레바리>에 중국을 읽는 모임이 생겼다. 사실, 이 모임의 파트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왜냐면 '중국'은 배워야 하고, 배우고 싶지만 너무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초콜릿 박스라고, 뭐가 나올지는 시즌 시작해봐야 아는 법. 어찌어찌하다 보니 나는 '중국'을 읽고, '중국'에 대해 쓰고, '중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심지어 '중국'을 매개로 친해지는 모임의 파트너가 되어 버렸다.
어쨌든 해야 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가능하면 잘 해야 하는 관계로 이번 시즌에는 모임 별로 후기를 남겨 보기로 했다. 아래가 지난 1월 트레바리 쯍쯍 모임에서 <아시아의 힘>을 읽고, 나눈 이야기에 대한 내 후기이다.
중국에 대해 모르는 나. 학부 시절에 들었던 수업 몇 가지밖에 없는 나. 그렇지만 새로이 생긴 독서모임의 파트너기에, 발제를 해야만 했다. 이 전에 <아시아의 힘>을 읽었다면 좀 수월했을지도 모르지만, 당연히 신경도 안 쓰고 있던 두꺼운 책이었고, 억지로 책을 읽으면서 발제를 준비해야만 했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중국'의 정치, 사회, 경제... 어쨌든 책은 '경제'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그중에도 경제를 위한 '정책'을 주로 이야기했다. 이걸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책 자체만 이야기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것이 아닌 '경제 정책'에 대한 이야기만 남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들었던 학부 수업 시절 <앵그리 차이나>, <대국굴기> 독후감을 꺼내어 들어보고 조금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책은 어차피 도구일 뿐, 어디로 갈지는 내 멋대로 한번 정해보자. 그러나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의 중국에 대한 이해도라거나, 관심사에 대해 알 수 없으니 어디 한번 넓게 발산하는 발제를 해보자! 다행히 지난 세월 동안 난 논리적으로 수렴하는 것보다는 마구잡이로 발산하는 것을 더 잘해왔으니 한번 난장을 부려보자!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발제문을 써 내려갔다.
몇 번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발산을 거듭하던 발제문이 조금 자리잡기는 시작했다. 여전히 아쉬운 발제이긴 했지만, 시간은 다가오기에 일단 이렇게 부딪혀 보자 하고 발행을 했다. 그러나 발제문을 쓰는 건 뼈대를 세우는 거고 독서 토론은 또 다른 이야기라, 첫 모임 날 2시간이나 일찍 모임 장소에 도착해 무슨 말을 할지 몇 번이나 곱씹어 보았다.
사람들은 나 보다 중국에 관심이 많고, 더 많이 알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살다 온 분들도 꽤 계셨다. 관심사는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었고. 그러나 하나 동일한 것은 나 보다 더 진지하게 '중국'을 읽겠다는 자세. 처음부터 나는 약간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준비된 발제를 잘 소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빈수레 전략을 써야겠단 생각을 했다. 어차피 내가 잘못 아는 것을 정정해줄 만한 내공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 한번 요란하게 아무 말이나 던져야겠다.라고. 또한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 10명 가까이 모여 있으니 누군가 한 명은 아무 대화 주제나 계속 던져보다 보면, 오늘의 모임에서 조금은 '집중' 된 대화가 부족하더라도 앞으로 더 나은 모임을 위한 방향을 알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대체로 사람들의 책 <아시아의 힘>에 대한 평가는 비슷했다. 부족한 번역. 미국 위주의 서술. 그들의 입장에선 대단한 발견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새로울 것이 있나 싶기도 하고. 한국의 토지 분배 정책의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점이 다르다는 것에서 그런 '온도차'를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저자에게 책 속의 공간은 '연구'의 대상이지만 우리에게는 '생활' 공간이기에 그런 차이가 나온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독일에서 일본 그리고 중국과 대만이나 한국에 이어진 '경제 성장의 공식' 은 '근대화'의 기본 공식이 아닐까. 물론 토지 분배를 통한 '배후 시장' 건설은 서구권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혁명적인 전환점이었지만 빠르게 그 흐름을 따라잡아야 하는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이념적인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혹은 경제 정책으로 'Top down'으로 이뤄진 것이 다른 지점이 아닐까. 여쩌면 이건 돌이켜 생각해보면 '민주주의' 혹은 그러한 경향의 사상이 도입되는 것과 유사하단 생각을 했다. '국가' 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뒤쳐졌기 때문이고, 그래서 Best Practice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정책이 유의미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금에 중국, 일본, 대만은 또 저 'How asia works' 모델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공감하는 편이었다. 그 단계는 벗어났으니까. 그렇다면 순서상 일본이 그랬고, 한국이 아마 그럴 것처럼 중국도 똑같은 잃어버린 세대를 만들어 낼 것인가? 아니면 책이 연구된 시절과는 다르게 Tech Giant 들을 만들어내는 중국은 다른 발전 곡선을 그릴 것인가? 또는 Great Firewall 과 함께, 갈라파고스처럼 자기 내수 시장을 만족시키는 형태로, 세계화가 아닌 방식으로 자신들의 경제를 완성해 나갈 것인가? 공산당이라는 특수성은 앞으로의 중국에 어떤 기회를, 혹은 위기를 가져올 것인가? 태자당은 독주를 할까, 지역 간 불균형은 해결할 수 있을까, 내륙에 건설되는 새로운 도시들을 중심으로 중국은 지난 100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Pax China를 이룩할 것인가?
그 사이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우선, 중국에 최근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분이 말씀하길 그 나라에는 가짜 'ATM '기가 설치되어 있고, 그것을 통해 현금을 인출하면 내 은행 계좌에서 돈은 빠져나가지만 나오는 건 '가짜 돈'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가짜 돈을 우린 구경했다!)
그런 국가다 보니, 가상 화폐가 발전하기 좋은 것이었다. 현금에 대한 '신뢰도' 가 떨어지니 오히려 '가상 화폐'를 믿을 수 있다는 것! 재미있는 접근이었는데, 이에 이어 심천에 방문했던 분이 그곳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이 '위챗'을 통해 돈을 받는 것을 봤다는 에피소드를 풀어 주셨다.
전자나, 후자나 우습게 보려고만 보면 '역시 대륙' 이라고만 말할 것 같지만, 이걸 보면서 중국이 더 궁금해지고,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우습게 보는 것은 그냥 지난 2~30년간 우리가 잠시 잠깐 중국을 앞서서 발전했기 때문일 뿐이고, 여의도 급의 신도시를 수십 개씩 지어 나가는 나라는 어쩌면 그 규모 만으로도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버리니까. 막말로 '메시'보다 축구 잘하는 사람이 저기 길림성 어느 산골 마을에서 물 길고 있을 수도 있단 게 아닌가, 1/13억이라는 확률은 말이다.
트레바리 크루 한 분이 트레바리 쯍쯍의 원래 명칭은 쯍얼쯍얼이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진짜 그럴 정도로 이번 모임에서 난 쯍얼대기 바빴다. 모르는 정보가 여기서 하나 저기서 둘 그러다 다시 뒤에서 열개씩 쏟아지니, 소화하기도 전에 새로운 이야기를 잡아내어야만 했고, 횡설수설을 안 하기 위해 노력하던 힘이 다한 후반 토론에서는 그냥 쯍얼대기만 한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앞으로 '중국'의 '드러난 모습' 이 아닌 중국의 근대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이 사람들의 사고와 사상, 그리고 그에 연관된 '중국'의 '현대'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견과 중국과 한국의 관계를 중심으로 책을 읽는 것도 재밌겠다는 의견 까지,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어쨌든, 첫 발제자로 공을 던졌고, 이제는 다음 발제자와 모임 구성원들이 그 공을 가지고 족구를 할지 축구를 할지 결정해야 하는 때가 오고 있고. 다음 책이 무엇이 되든, 발제를 누가 하든 첫 모임보다 더 나은 모임이 되겠단 확신을 얻기는 했다.
이제 파트너로 조금 더 중국에 대해 공부해서, 헛소리를 줄이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1개라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다짐을 하며 첫 모임의 후기를 마친다.
첫 모임의 마지막에 나온 말 하나가 계속 신경 쓰인다. 중국은 지금도 '개발 독재' 중인가? 그렇다고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공산당의 강령에 따라서 인민을 위한 정책을 시도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현재 시진핑이 '마오'라고 외신에게 비치는 모습은, 여전히 힘을 한 곳에 모아서 가는 노선은 '독재'에 기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오랜 이야깃거리. 더 훌륭한 독재자와 중우정치의 관계에 관하여. 다나카 요시키가 <은하 영웅 전설> 10여 권에서 계속 던진 질문. 만약 중국의 방식이 정말로, '개발 독재' '엘리트 정치' '귀족정'에 입각한 것이고 그 길이 심지어는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길이라면, 언젠가는 부패하여 혁명을 통해 축출해야만 하는 괴물이 될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경제 성장의 책임을 주고 나중에 그로 인한 잘못을 물어야만 하는 걸까. 그냥 처음부터 그것은 별개의 것이니 분리해서 생각하면 되는 걸까.
정리되진 않았지만 이런 생각이 여전히 남는 첫 모임이었다. 이건 트레바리 쯍쯍이 아닌 트레바리를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결론에 도달하겠지. 내겐 십수 년이 된 질문인데, 여전히 그 실마리를 못 찾고 있다가 다시 몇 년 만에 그 문제를 마주하니 스스로의 지난 세월의 공부에 회의감이 드는 모임이기도 했다.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 부족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