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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Jan 16. 2017

<마왕> by  이사카 코타로

'생각해, 생각해 맥가이버'

Intro : 재밌게 읽은 구절.

인상 깊은 구절이 아님을 앞서 밝힌다. 재독을 하면서 다시 살펴본 문장들이다.


정면에 앉은 부인이 조간신문을 펼치고 있다. 일면 기사 제목을 보니 '여론 조사, 여당 지지율 하락'이라고 쓰여 있었다. 옆에는 '실업률 사상 최고치 경신'이라는 기사도 있다.

한때 불경기도 바닥을 쳤다는 말이 있었지만 요즘 다시 악화되고 있다. 중동에서 일어난 분쟁이 길어지면서 원유 가격이 뛰어오른 것도 원인 중 하나지만, 수입하고 있는 농산물에서 정체불명의 병원균이 발견되었고 또 그 때문에 식품업계와 외식사업이 큰 타격을 받은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안전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부가 분명히 말했지만 수출하고 있는 상대 국가는, 즉 미국과 중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거 없는 수입제한을 하면 톡톡히 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모양이었다.

pp. 19-20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더니 지배인이 다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예를 들어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아니 모두가 아니라 반이라도 좋아. 수천만 명의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광장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고 치자."

 "어디까지나 예죠?"

 "물론, 그 수천만 명이 각자 시간을 쪼개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며 촛불을 들었다고 쳐."

 "그 촛불은 평화나 염원하는 감정 같은 것을 빗대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상관없어. 꽃다발로 바꿔도 되고." 지배인은 곧장 대답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예?"

 "인구의 반 이상이 자신 이외의 무언가를 위해 초에 불을 밝히고, 꽃다발을 드는 의식만 있다면 틀림없이 세상은 평화로워질 거야"

 "거꾸로 말하면 무관심이 세상을 망치고 있다는 뜻인가요?" 마더 테레사의 "사랑의 적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라고 한 그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pp. 133-134


진하게, 굵게, 혹은 더 큰 폰트로, 내가 관심이 갔던 문장을 강조하려 했지만, 이미 발췌하는 순간에 저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필자에게 납치당한 문장들이 조금이나마 더 싱싱한 상태로 읽는 이에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러한 의도적 조작은 가하지 않았다. 그냥 시국에 대한 내 관심이 투영되어서 저 문장들이 기억에 남은 것에 불과하다. 


생각해, 생각해 맥가이버.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결말이 보인다. 그 허무했던 첫 경험과는 다르게, 두 번째 만남은 조금 찐득하게 이루어졌다. 7월 중순의 햇살과 공기 속 수분의 콤비네이션과 같이 끈적하게. 아마도 나 역시나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겠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부족하다는 점은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ㅡ 그건 차차 해결할 문제일 따름이다. 스스로 비하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나를 연마할 따름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한 번쯤은 백지 위에 단칼에 적어나갈 날카로움을 지닐 수 있겠지. 그렇게 위안을 할 따름이다.


생각해 생각해 맥가이버, 세상과 맞서 싸워.


어찌 보면 이능력 배틀 물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두 형제의 초능력과 두체 지배인(으로 짐작되는) 이누카이 쪽 보스와의 싸움, 복화술[과 유사한 상대의 30보 거리 내의 원격 의식 조작을 통한 성대와 기타 소리 발현 기관 조종술]과 적당한 운[으로 보이는 1/10의 확률을 1/1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능력, 예를 들어 선택지의 문항수가 1/10이면 자신의 의도한 대로 이길 수가 있다. 확률적 문제이긴 하지만] 그리고 뇌일혈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두체 지배인[이라고 추정되는]. 아... 이 작가 뭔가 확실한 것이 없다. 물론, 그게 또 매력이다. 왜냐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그 안에서 나온 사회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의 능력은 현실적인 것으로 대체했어도 무방했으리라.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저자의 말이 맞다면, 그의 시선에서 바라본 일본 정치의 풍경이 참 기이하다. 똑똑한 식자층이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 그가 본 정치판의 무서움. 역사 속에서 있었던 무서웠던 일들. 그런 가운데서 성인으로 투표권을 가진 개인이 소설가라는 직업을 통해 그려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하나의 답변. 지금 내 앞 단상의 저 정치인은 무솔리니가 될 것인가 처칠이 될 것인가. 


작가가 말한 바와 같이, 역자가 말한 바와 같이, 


"미래가 화창한 파란 하늘이 될지 황야가 될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다."


평생을 미리 산 이가 아닌 이상 지금의 선택이 평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선택할 수밖에 없잖아. 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초고: 2008년 7월 14일

탈고: 2017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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