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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2: 네안데르탈인에 관한 유튜브를 보다가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3: 4대 문명, 아틀란티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의 유튜브를 보다가
하나의 질문에서 생각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세계 4대 문명’이라는 말을 의심 없이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객관적 사실이 아닌, 특정 시대의 권력이 재단한 하나의 프레임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명’이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규정되는 것이었고, 그 규정하는 힘이야말로 시대를 지배하는 진정한 권력이었습니다.
오늘날 그 막강한 ‘규정하는 힘’은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주체에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AI는 인류가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세상의 모든 질문에 답합니다. 그 모습은 지극히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AI가 학습한 데이터 속에 과거의 편견과 지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면, AI는 과연 중립적일 수 있을까요?
어쩌면 AI는 새로운 문명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판별하는 ‘새로운 문명의 심판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거대 자본과 기술 선도국이 만든 AI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언어, 역사, 문화는 디지털 세계에서 ‘비표준’으로 분류되어 소외될 위험에 처합니다. 이는 기술의 힘을 빌린 보이지 않는 식민주의, 우리 시대의 ‘디지털 오리엔탈리즘’일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AI 주권(Sovereign AI)’이라는 개념의 등장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우리 고유의 데이터와 언어, 가치관을 담은 AI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 이는 거대 권력에 우리의 정체성을 심판받지 않고 스스로 정의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자, 미래 산업의 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경제적 생존 전략이기도 합니다. 외부의 지배에 맞서기 위해, 우리를 지켜줄 단단한 성벽을 쌓아 올리는 것은 당연한 대응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유의 끝에서, 우리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합니다. 우리가 쌓아 올린 그 견고한 성벽이, 외부의 위협을 막는 방패인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될 수는 없을까요? ‘우리만의 AI’라는 깃발 아래, 외부 세계와의 문을 걸어 잠그는 ‘디지털 국수주의’가 싹틀 위험은 없을까요? 국가 권력이 자국의 입맛에 맞는 역사만을 학습시킨 ‘어용 AI’로 국민을 통제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지배를 피하려다 또 다른 지배를 만들어내는 모순일 뿐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AI의 ‘소유권’ 자체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AI의 주인이 미국의 빅테크이든, 특정 국가이든, 그것이 ‘소유’되는 순간부터 AI는 소유주의 이익과 편향성을 대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유의 패러다임을 넘어설 새로운 상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오픈소스 운동과 위키피디아의 정신이 우리에게 길을 제시합니다. 특정 권력의 독점에 저항하며 ‘소유’가 아닌 ‘참여’와 ‘공유’의 가치를 실현해 온 역사. 이 정신을 AI에 적용한 ‘진정한 열린 AI(A Truly Open AI)’를 상상해 봅니다. AI의 기반이 되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특정 주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디지털 공공재(Digital Public Good)’로 만드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시민들이 위키피디아를 편집하듯 AI가 학습하는 데이터를 함께 만들고 검증하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AI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이상적인 꿈일 뿐, 현실의 벽은 높습니다. 천문학적인 자원을 어떻게 충당할지, 전 지구적 규모의 정보 오염과 가치 충돌을 어떻게 조정할지, 수많은 난제가 우리를 가로막습니다.
하지만 이 불가능해 보이는 꿈속에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 담겨있을지 모릅니다. 미래는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모델의 공존일 것입니다. 인류가 함께 가꾸는 거대한 ‘열린 AI’가 생태계의 뿌리와 줄기를 이루고, 각 국가나 문화 공동체는 그 줄기에서 각자의 가지를 뻗어 고유한 특성을 담은 ‘주권적 AI’의 꽃을 피우는 모습. 이는 거대한 리눅스 커널(Kernel)을 중심으로 수많은 배포판이 발전하는 오픈소스 생태계와 닮았습니다.
우리의 사유는 ‘4대 문명’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 AI 주권이라는 방어적 해법을 거쳐, 이제 모두의 참여로 만들어가는 열린 생태계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도달했습니다. 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AI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과 인류 전체의 미래를 성찰하는, 우리 시대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