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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재 시대의 새로운 무대론

365 Proejct (264/365)

by Jamin

내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10: 확률론이 기반한 플라이휠에 이어서

내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11: Man In The Mirror 를 듣다가 에 이어서

내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12: 경험을 측정하고 만들어야 한다 에 이어서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2: 네안데르탈인에 관한 유튜브를 보다가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3: 4대 문명, 아틀란티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의 유튜브를 보다가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4: 국전은 어떻게 살아 남았나 유튜브 를 보다가



정보 비대칭성의 붕괴와 온라인의 압도적 편리함


치약이 떨어져서 쿠팡으로 주문했더니,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해 있었다. 굳이 치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다른 장 볼 것을 리스트에 담아두고 마트에 가서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무언가 정말로 필요한 목적이 발생했을 때에는 바로 핸드폰을 집어드는 습관이 생겼고, 이를 되돌리기는 참 어려울 것 같다.


한때 전자상가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무기로 삼았다. 소비자는 최저가를 알 길이 없었고, 특정 매장만이 가진 신제품 소식이나 수입 루트가 곧 장벽이자 이익이었다. 그러나 가격비교 사이트와 온라인 쇼핑몰, 스마트폰의 인터넷 연결이 일상화되면서 이 구조는 완전히 무너졌다. Amazon Dash에서 Alexa가 장착된 Amazon

Echo 장치에 이르기까지 '원클릭' 쇼핑 시스템은 일상 필수품의 목적 구매를 온라인으로 완전히 이전시켰다.


오프라인 공간은 더 이상 "싼 데서 살 수 있는 곳"이라는 명분으로는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의 소매점들이 도시 배송 허브나 창고로 전환될 가능성까지 시사한다. 편의점을 기반으로 택배를 송수신하는 B마트 같은 사례를 보면, 꼭 불가능한 미래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든 제품이 경험재가 된 시대


그러나 새로운 트렌드와 다양한 카테고리의 등장으로 인해 적절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예컨대, 알레르기 친화적인 세제와 같은 제품을 찾기 위해 소비자들은 여러 브랜드를 시도해 보며 최적의 제품을 찾으려고 한다. 온라인에서는 리뷰와 후기 블로그들을 뒤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광고인지 고민하며 유튜브에서 최근 영상들까지 찾아본다.


현대 소비자들은 단순한 제품 구매를 넘어서, 그 제품이 제공하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도 단순히 통화나 메시지 기능만이 아니라, 카메라 성능, 앱 생태계, 디자인 등 전체적인 사용자 경험을 중시한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 프로세스 공학을 넘어서 마케팅, 디자인과의 결합, 브랜딩을 통하여 이제는 '상징체계'로의 제품을 사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다. 갤럭시는 아재폰, 아이폰은 친구들과 쓰는 폰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복잡해진 제품들이 등장하고, 경제 발전으로 소비자가 선택이 가능한 수준의 구매력을 가진 현재, 모든 제품이 경험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브랜드 간의 치열한 경쟁을 초래하며, 기업들은 다양한 제품 옵션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제품을 경험해보지 않은 채로 구매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각 개인은 고유한 관점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른 소비자의 리뷰만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새로운 키보드를 구매할 때 리뷰어들이 좋은 선택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이 당신의 특정 요구에 적합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유튜브 리뷰 비디오로 타이핑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책상에 맞는 크기인지, 휴대하기에 가벼운지 등의 요소는 개별 소비자의 상황과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이 있다.


오프라인 공간의 새로운 정체성: 무대론


그렇다면 왜 어떤 상권은 사라지고, 어떤 곳은 여전히 살아남았을까? 국제전자상가, 이른바 '국전'의 사례는 중요한 힌트를 준다. 국전은 단순히 가격 경쟁으로 버티지 않았다. 오디오 매니아, 콘솔 게이머, 피규어 수집가 같은 버티컬 커뮤니티를 품은 공간으로 변모했다. 매장을 찾는 이유는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교류·정보·신뢰였다. 특히 국전은 '정품', '일가제', '비호객'이라는 신뢰 규범을 축적하면서 용산과 같은 경쟁 상권과 차별화했다.


결과적으로, 국전은 체험과 커뮤니티, 신뢰라는 세 가지 요소가 맞물려 살아남은 것이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 보고, 옆에 두고 비교해 보는 경험을 원한다. 이는 온라인 쇼핑이 제공할 수 없는 차별화된 경험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는 이유가 된다. 더현대 여의도나 신세계 강남 식품관의 새로운 디저트 공간을 방문하기 위해 수고스럽게 이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오프라인 매장이 고민하는 지점도 같다. 방문할 '이유'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몰링 전략으로 맛집을 입점시키거나 이벤트를 열어 일시적인 흥행을 노릴 수는 있다. 스트릿 브랜드처럼 하입을 만들어 한정판을 내세울 수도 있고, 나이키가 러닝 크루를 통해 커뮤니티를 기획하는 방식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전략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오프라인은 단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무대(Stage)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공간이 팔 수 있는 가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체험. 직접 만지고, 써보고, 확인하고, 튜닝하고, 수리하는 즉각적 경험이다. 둘째, 커뮤니티. 특정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활동하고, 돌아오게 만드는 힘이다. 셋째, 즉시성. 온라인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현장에서 바로 처리해주는 서비스다. 이 세 가지를 조합하지 못하면, 결국 오프라인은 가격경쟁에서 밀려 사라질 수밖에 없다.


데이터 기반 경험 관리의 필요성


제품이 다양화되고, 가치가 다원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한 소매업체들은 쇼핑 경험을 측정하고, 관리해야 한다. 소매업체들은 단순히 판매와 재고 수치를 넘어 소비자들이 특정 진열대를 방문하는지, 제품을 시도하는지, 매장에서 여러 제품을 고려하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오프라인 소매업체들은 경험을 측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고객 경험을 어떻게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만족스러웠나? 구매로 이어졌나? 불만족스러웠나?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이를 판단하기 위해 직원들만으로 충분할까?


여기서 중요한 건, 커뮤니티 기반 공간일수록 데이터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국전이 '정품-일가제-비호객'이라는 신뢰 규범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장기간의 데이터 축적 덕분이다. 어떤 매장이 진짜 정품을 취급하는지, 가격이 일관되는지, 호객 행위 없이 운영되는지를 커뮤니티가 검증하고 평가한 결과다.


다만 데이터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

기존 오프라인: 매출, 재고회전율, 평방미터당 수익 같은 거래 데이터

커뮤니티 기반 오프라인: 재방문율, 체류시간, 커뮤니티 참여도, 추천/입소문 지수 같은 관계 데이터


판촉 기간 동안 밀레니얼 세대의 방문자 수, 팝업과의 상호 작용, 인스토어 광고에 대한 반응 데이터는 실행 가능한 통찰력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버티컬 커뮤니티라는 건 결국 측정 가능한 충성고객층을 만드는 것이므로, 오히려 경험을 더 정교하게 추적하고 최적화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고객 행동 데이터가 GDPR과 같은 법규를 준수하여 수집되는지,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식인지, 웹에서 있었던 다크패턴이 오프라인으로 넘어오는 것은 아닌지도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의 운영 원칙


앞으로의 운영 원칙은 분명하다. 매장을 버티컬하게 설계해 취향 공동체를 집중시키고, 단발 이벤트 대신 주간·분기 단위의 프로그램을 고정 운영하며, 방문자에게 즉각적인 해결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뢰를 쌓아야 한다.


불투명한 가격이나 호객 행위는 이제 전체 상권의 수명을 갉아먹는 독과도 같다.


중요한 것은 오프라인이 수십 년째 도전을 맞이하고 있고, 살아남고 있지만, 그다음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라인이 수십 년째 해온 일 - 보다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오프라인 공간이 살아남는 방법은 온라인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철저하게 파고드는 데 있다. '싸다'가 아니라, '여기서만 가능하다'라는 이유. 국전은 이미 그 답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남은 건 각자가 어떤 버티컬을 선택하고, 어떤 커뮤니티와 체험을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오프라인 공간은 이제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를 운영하는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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