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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츠*> by 제이크 슈라이어

365 Proejct (268/365)

by Jamin


벨 에포크의 끝에서 찾은 새로운 영웅의 조건


"마블은 아직 죽지 않았다. 다만 성장했을 뿐이다."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우리 시대의 벨 에포크였다. 기술 발전에 대한 낙관과 개인의 의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선이 악을 이긴다"는 확고한 신념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팬데믹을 겸하며 우리는 개인의 영웅적 행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했다.


기후변화와 사회 분열, 경제 불평등 앞에서 "한 명의 영웅이 모든 걸 구원한다"는 서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버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썬더볼츠'가 등장한다. 이 영화는 우주적 재앙과 멀티버스라는 거대한 담론 대신, 결함투성이 인간들의 '작은 이야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거짓 긍정을 거부하는 용기


'썬더볼츠'의 혁신은 캐릭터들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당당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옐레나 벨로바의 "우리 모두 쓰레기야"라는 대사는 현대인들이 지쳐있는 거짓 긍정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다. "넌 특별해", "넌 할 수 있어" 같은 공허한 격려 대신, 이들은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솔직하게 마주한다.


왕년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레드 가디언과 몰락한 명예를 회복하려는 U.S. 에이전트의 이기적 욕망, 통제 불가능한 힘을 가졌지만 인간 '밥'으로 인정받고 싶은 센트리의 처절한 갈망은 모두 지극히 인간적이고 불완전하다. 하지만 바로 이 솔직함이 그들을 진짜 영웅으로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


연대의 새로운 문법


기존 어벤져스가 "각자의 장점을 합쳐서" 만든 팀이었다면, 썬더볼츠는 "각자의 망가진 부분을 인정하면서" 뭉친 집단이다. 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연대다.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임무에 뛰어든 옐레나와 버키, 인정을 갈망하는 다른 멤버들이 만나 이루는 화학작용은 기존의 영웅 서사와 차별화된다. 이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나도 쓰레기, 너도 쓰레기, 그럼 같이 쓰레기 해보자"는 솔직함 위에서 더 따뜻하고 지속가능한 유대를 형성한다.


패배자 서사의 미학


"늘 지기만 하던 동네 축구팀"이라는 팀명의 기원은 영화의 핵심 철학을 압축한다. 성공 중심 사회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은 이들에게 '패배자'라는 정체성조차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임무에 성공하지만 대중의 환호를 받는 영웅이 되지 못한다. 쓰러진 스파이더맨을 시민들이 감싸주던 고전적 영웅 신화와 달리, '썬더볼츠'는 영웅과 사회의 교감이 단절된 차가운 현실을 직시한다.


하지만 이 씁쓸한 결말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메시지다. 외부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런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이들과의 연대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액션에서도 드러나는 새로운 미학


이러한 주제 의식은 액션 시퀀스에서도 일관되게 구현된다. 센트리의 압도적인 힘 앞에 다른 팀원들이 처절하게 맞서는 장면들은 짜릿한 쾌감보다는 생존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화려한 스펙터클 대신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승리의 카타르시스 대신 함께 버텨내는 끈기를 그린다. 이는 놀란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가 보여준 현실주의적 접근과 맥을 같이 하지만, 절망 대신 연대를 통한 희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새로운 위로의 탄생


'썬더볼츠'는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구원하는 영웅"의 이야기에 지친 우리에게, 불완전한 인간들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걸어가는 이야기는 가장 현실적이고 필요한 위로가 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마블의 새로운 가능성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영웅상의 진화다. 거대한 신화를 내려놓고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 '썬더볼츠'는, 벨 에포크의 끝에서 찾아낸 새로운 희망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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