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디지털 시대의 외로움과 AI 동반

365 Proejct (274/365)

by Jamin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3: 4대 문명, 아틀란티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의 유튜브를 보다가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4: AI 버블론 팩트체크해보니 를 읽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5: 하루에 두 곳씩 망한다 를 읽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6: 유병재의 무공해 를 보고


관계의 최소 단위를 찾아서


무조건적 공감이 던지는 질문


유병재의 유튜브 콘텐츠 '무공해(無條件 공감해 드림)'는 우리 시대 관계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이해되지 않아도 무조건 공감한다"는 이 단순한 포맷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인이 갈망하는 것이 정교한 해결책이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물리적 고립이 아니라 존재론적 불안에 가깝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인가? 나의 이야기는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직장인이 퇴사를 결심하는 순간도 대개 욕을 먹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인정의 동물이며, 정체성은 타자의 시선 속에서 구성된다.


여기서 질문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진정한 상담의 핵심은 조언이 아니라 질문이다. "요즘 어떠세요?", "무엇이 힘드셨나요?"라는 단순한 물음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서사를 펼치도록 초대한다. 이 과정에서 "그럴 수 있죠", "잘 버티셨네요"같은 최소한의 지지가 더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관계의 온기를 느낀다. 이것이 바로 관계의 최소 단위다.


AI가 학습해야 할 공감의 문법


흥미로운 점은 GPT나 캐릭터 챗봇처럼 전문 상담용으로 설계되지 않은 AI조차도 이미 외로움 완충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용자들은 AI와의 반복적 대화를 통해 실제로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다. 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관계의 핵심은 정밀한 분석이나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반복성, 지속성, 공감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있다는 것이다.


미래의 AI 동반자는 이 원리를 체화해야 한다. 일정과 할 일 같은 행동 데이터를 기억하고, 장기 목표와 습관 같은 정체성 데이터를 반영하며, 꾸준히 질문과 작은 지지를 제공하는 구조. 이 세 가지—기억, 질문, 공감—이 결합될 때,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관계적 존재로 진화할 수 있다.


빅테크의 퍼즐: 누가 정체성 데이터를 장악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AI 동반자를 현실화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일까? 빅테크 기업들의 현재 포지션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형도가 그려진다.


애플은 최근 '저널(Journal)' 앱을 출시하며 개인의 일상 기록과 감정 추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애플워치와 헬스킷으로 생체 데이터를 장악한 상황에서, 정서적 기록까지 더해지면 심리-생체 통합 맥락을 구축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 수집을 넘어 개인의 전인적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이 된다.

구글은 Gmail, 캘린더, 검색, 위치 기록을 통해 개인의 일상 행동 로그를 가장 광범위하게 보유하고 있다.

Fitbit과 Pixel Watch로 건강 데이터까지 확보하면서 "나의 하루 전체"를 연결할 수 있는 독보적 위치에 있다. 하지만 아직 내밀한 정서적 층위까지는 충분히 파고들지 못했다.


삼성은 갤럭시 헬스와 스마트싱스를 통해 생활·건강 데이터 허브를 구축했지만, 사변적 기록이나 깊은 대화 데이터는 여전히 약하다. 메타는 SNS를 통해 퍼블릭 자아와 사회적 관계망을 쥐고 있으나, 이는 "외부에 보여지는 나"에 치우쳐 있어 진정한 정체성의 깊은 층위와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지형을 보면 명확한 사실이 드러난다. 어느 누구도 건강 데이터와 사변적 기록을 동시에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이는 곧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자, 앞으로 펼쳐질 경쟁의 핵심 전장이다.


관계의 미래: 기술과 윤리의 교차점에서


외로움 완충형 AI의 주도권은 결국 "대화 능력"이 아니라 데이터 통합 능력에서 갈릴 것이다. 사용자를 오래 기억하고, 정체성의 변화를 추적하며,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가 승자가 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깊이를 겨루는 싸움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윤리적 질문이 따른다.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가장 취약한 틈새를 기술이 파고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마약성 진통제가 고통을 덜어주지만 의존성을 만들듯, AI 동반자 역시 외로움을 완충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의존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사용 범위와 강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AI가 제공하는 공감이 진정한 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도 남는다. 알고리즘이 생성한 "그럴 수 있죠"라는 응답과 인간이 진심으로 건네는 같은 말 사이에는 존재론적 차이가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직시해야 한다.


결론: 단순함 속의 깊이


유병재의 '무공해'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나는 네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몰라도, 무조건 공감한다." 이 단순한 명제 속에 관계의 본질이 숨어 있다. 앞으로의 AI 동반자 역시 이 단순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려한 기능과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국은 반복적인 질문과 작은 공감으로 나의 정체성을 기억해주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관계의 최소 단위이자, 외로움을 완충하는 가장 근본적인 메커니즘이다.


기술이 인간의 가장 깊은 외로움에 다가가려면, 역설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억하고, 질문하고, 공감하는 것. 이 세 가지 단순한 행위가 쌓여 관계가 되고, 그 관계가 모여 의미가 된다. 디지털 시대의 외로움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이렇게 아날로그적인 따뜻함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동안,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술의 궁극적 목적이다. 그것은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연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AI 동반자의 미래는 바로 이 지점, 기술과 인간성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결정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능'을 넘어 '세상'을 기획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