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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프로덕트 매니저의 재탄생

365 Proejct (275/365)

by 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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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건축가: 인공지능 시대, 프로덕트 매니저의 재탄생


언젠가부터 프로덕트 매니저의 책상은 디지털의 소음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울리는 슬랙 알림과 끝없이 이어지는 Jira 티켓, 그리고 백로그라는 이름의 거대한 서랍 속에서 우리는 능숙하게 기능(Feature)을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며, 개발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우리는 '기능 공장'의 유능한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왔다. 하지만 문득, 이 모든 과정의 끝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창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바로 이 질문에 답을 하도록 등을 떠미는 거대한 시대적 전환일지도 모른다. 기획안의 초안을 순식간에 작성하고,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하며, 심지어 코드를 생성하기까지 하는 AI 앞에서, 인간 기획자의 고유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는 PM이라는 역할이 근본적으로 재탄생할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미래의 PM은 제품의 기능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Thought)' 자체를 설계하고 증강시키는 '사고의 건축가' 가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은 아마도 우리 자신의 지적 활동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될 것이다. 미래 PM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그가 경험한 프로젝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과 학습의 과정에 대해 얼마나 깊고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해석'했는가에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 회의 중 오갔던 격렬한 토론, 실패한 가설의 잔해들은 더 이상 휘발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개인화된 지식의 원석'이다. 이 원석들이 잘 정제되고 연결되어 있을 때, AI는 비로소 우리의 막연한 질문에 동문서답하는 앵무새가 아니라, 나의 맥락을 이해하는 지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잘 정리된 기록만으로는 부족하다. AI는 우리의 지식을 증폭시킬 수는 있지만, 우리 대신 생각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번째 변화의 축이 나타난다. 바로 자신의 직관적인 사고방식, 문제에 접근하는 특유의 **'틀'**을 명시적인 청사진으로 제시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시장을 분석하고, 사용자의 문제를 파고들며, 해결책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지금까지 암묵지에 머물렀던 이 사고의 프레임워크를 명문화하고 구조화할 때, AI는 비로소 우리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 실행을 자동화할 수 있는 강력한 대리인이 된다.


나는 미래의 PM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그의 머릿속에는 연주하고 싶은 음악(풀고 싶은 문제)이 있고, 그의 손에는 수십 년간 쌓아온 자신만의 악보(체계적인 기록)와 음악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사고의 틀)이 들려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AI라는 이름의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앉아있다. 지휘자가 명확한 악보와 해석을 바탕으로 지휘봉을 휘두를 때, 오케스트라는 비로소 혼돈의 소음이 아닌 장엄한 교향곡을 연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단순한 선순환을 넘어, 일종의 '지적 복리(intellectual compound interest)' 효과를 낳을 것이라 예상한다. 나의 사고 틀로 구조화된 기록은 AI를 통해 더 깊은 통찰을 낳고, 그 통찰은 다시 나의 사고 틀을 정교하게 다듬으며 기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학습과 실행의 경계가 흐려지고, 생각하는 것과 만들어내는 것 사이의 시간이 극적으로 단축되는 경험. 아마도 이것이 '증강된 PM'이 느끼는 일상의 감각일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지적 증강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은, 가장 본질적인 PM의 역할이다. 즉, 풀 가치가 있는 '왜(Why)'라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 데이터 너머의 인간을 이해하는 깊은 공감, 그리고 그 모든 결과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지는 자세다. AI가 압도적인 속도로 '어떻게(How)'의 문제를 해결해 줄수록, PM의 역할은 더욱더 이 근본적인 '뼈대'로 수렴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PM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툴을 배우는 열정 이전에, 자신의 생각을 세심하게 돌보고 가꾸는 정원사의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나의 기록을 관리하고, 나의 사고방식을 성찰하며, AI라는 거울을 통해 끊임없이 나 자신을 연마하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기능의 관리자를 넘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질문을 설계하고 그 답을 만들어가는 진정한 '사고의 건축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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