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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무인화는 분명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인건비 상승, 인력난, 24시간 운영이라는 구조적 압박 앞에서 점주는 더 이상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러나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무인 매장이 편의점의 미래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가?
무인화는 효율의 해법이지, 성장은 아니다. 일본의 세븐일레븐이 '국민 식당'으로 자리 잡은 배경은 계산대의 자동화가 아니라, 오니기리라는 생활 속 상품이었고, 그것을 둘러싼 신뢰와 경험이었다. 한국의 편의점도 마찬가지다. 심야에는 무인 운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겠지만, 낮 시간대에 소비자가 편의점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점원이 없어서가 아니다. 새로운 간편식을 발견하거나, 지역 한정 상품을 경험하거나, 이웃과 스치듯 만나는 그 공간적 경험 때문이다.
무인화의 진짜 문제는 편의점을 단순한 '상품 보관소'로 만든다는 점이다. 계산의 자동화는 거래를 빠르게 만들지만, 동시에 발견과 추천, 우연한 만남의 기회를 제거한다. 점원이 "이 신상품 괜찮던데요"라고 건네는 한마디, 단골손님과 나누는 날씨 이야기, 심지어 택배를 받으러 온 이웃과의 짧은 인사까지 모두 사라진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편의점의 정체성 자체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편의점의 핵심 가치는 명확했다. 접근성(가까움)과 즉시성(바로 해결). 하지만 이제 이 두 가치 모두 도전받고 있다.
접근성의 도전: 쿠팡, 마켓컬리 같은 새벽 배송 서비스가 편의점보다 더 가깝다. 집 앞까지 와주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우유가 없다고 편의점에 갈 이유가 줄어들었다. 전날 밤 주문하면 아침에 도착한다.
즉시성의 도전: 마트나 대형매장이 24시간 운영을 늘리고 있고, 온라인 주문 후 픽업 서비스도 확산되고 있다. 더 넓은 선택권과 더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면서도 편의점 수준의 빠른 구매가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편의점은 무엇으로 차별화해야 할까?
일본 편의점 성공의 핵심을 다시 들여다보자.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로손이 '국민 식당'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음식의 질과 다양성, 그리고 생활 서비스의 통합 때문이다.
오니기리는 단순한 간편식이 아니라 '집밥의 대안'이었다. 참치마요, 연어, 매실 등 다양한 맛과 계절 한정 상품으로 재방문을 유도했다. 가라아게(닭튀김), 가츠산도(돈까스샌드위치) 등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만들기는 번거롭지만 품질은 보장된 음식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더 중요한 건 생활 서비스의 허브 역할이다. 택배 발송과 수령, 공과금 납부, 티켓 예매, 사진 인화, ATM까지. 편의점은 단순한 소매점이 아니라 '생활 해결사'가 되었다. 이런 서비스들은 무인화로는 제공하기 어렵다. 사람의 판단과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다.
하지만 한국의 편의점은 다른 제약이 있다. 프랜차이즈 중심의 운영 구조가 그것이다. 일본처럼 본사에서 직접 상품을 개발하고 품질을 관리하기보다는, 기존 제조업체의 제품을 들여놓는 구조가 강하다. 이는 상품의 차별화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임대료와 인건비 압박이 심각하다. 일본 편의점은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과 충분한 인력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한국은 비용 압박으로 최소한의 공간과 인력만 유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인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는 건 무인화가 곧 서비스 품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계는 고장나고, 결제 오류가 생기고, 복잡한 상황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다. 고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함이 증가할 수 있다.
실제로 무인 편의점을 경험해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편한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만만치 않다:
기술적 문제들:
바코드 인식 오류로 인한 계산 지연
연령 확인이 필요한 상품 구매의 복잡함
기계 고장 시 완전히 이용 불가
현금 결제나 복잡한 상황 대응의 어려움
서비스 공백:
상품 문의나 추천을 받을 수 없음
택배나 기타 서비스 이용 제한
응급 상황이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 대응 불가
지역 정보나 소통의 단절
사회적 비용:
일자리 감소로 인한 지역 경제 위축
고령자나 디지털 소외계층의 접근성 악화
동네 사랑방 역할의 상실
그렇다면 편의점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까? 단순한 무인화가 아니라 '라이프 플랫폼'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1) 하이브리드 운영 모델 무인과 유인을 시간대별, 기능별로 분리하는 전략이다. 심야시간에는 무인 운영으로 비용을 절약하고, 주간에는 직원이 상주해 서비스 품질을 유지한다. 특히 아침 출근시간, 점심시간, 퇴근시간 같은 피크 타임에는 직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2) 지역 밀착형 서비스 확장 일본 편의점처럼 택배, 공과금 납부를 넘어 지역 특화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을 위한 안부 확인 서비스, 반려동물용품과 서비스, 소규모 회의실 대여 등 지역 니즈에 맞춘 차별화된 서비스 말이다.
3) 음식 품질의 획기적 개선 한국 편의점 음식의 품질을 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단순히 제조업체와의 계약을 넘어, 자체 제조 시설이나 전용 공급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 '집밥 대안'이 될 수 있는 음식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품질을 관리해야 한다.
4) 커뮤니티 허브로서의 역할 편의점을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이다. 소규모 이벤트 공간, 지역 정보 게시판, 이웃 간 소통 창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무인화로는 절대 제공할 수 없는 가치다.
5) 데이터 기반 개인화 서비스 고객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개인화된 추천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골 고객이 자주 사는 상품을 미리 준비하거나, 건강 상태나 선호도에 맞는 음식을 추천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사람의 따뜻한 서비스와 결합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편의점 생태계 전체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현재의 프랜차이즈 구조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본사의 역할 강화: 상품 개발, 품질 관리, 서비스 기획에서 본사의 주도적 역할이 커져야 한다. 단순히 부지를 임대해주고 상품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 전체의 고객 경험을 책임져야 한다.
점주의 전문성 강화: 점주와 직원들이 단순한 계산원이 아니라 '지역 생활 컨설턴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 상품 지식, 서비스 스킬, 지역 정보 등에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기술과 인간의 조화: 무인 기술을 도입하되, 그것이 인간 서비스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 기술로 효율성을 높이고, 사람으로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편의점의 미래는 무인화에 있지 않다. 무인화는 필요한 도구일 뿐, 목표가 아니다. 진짜 목표는 편의점을 지역 주민들의 라이프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깨달은 건, 기술의 편리함만큼이나 인간적 연결의 소중함이었다. 동네 편의점에서 점주와 나누는 짧은 대화, 새로운 상품에 대한 추천, 급할 때 받을 수 있는 도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편의점은 효율성과 인간미를 동시에 갖춘 공간이어야 한다. 기술로 비용을 절약하되, 그 절약한 자원으로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따뜻한 고객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무인화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편의점의 진짜 미래는 지역 주민들의 일상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라이프 플랫폼으로의 진화에 있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어야 한다.